“안 간다니까 왜 물어보냐.”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콘텐츠 가운데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식당’편의 도입부다. 박막례 할머니는 키오스크(무인 판매기) 기계가 있는 햄버거 가게에 가자는 손녀의 말에 화를 낸다. “(그런 가게는) 바로 나와부러. 안 들어가. 너는 거기 가서 먹고 나는 (주문을 받는) 사람 있는 데 가서 먹으면 안 되냐. (기계 조작이)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자존심 상하잖어.”

가게에 입장한 박막례 할머니는 한참을 헤맨다. ‘불고기 버거’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수 많은 메뉴 가운데서 찾지 못한 채 시간이 초과해 여러번 다시 도전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메뉴를 선택했지만 카드 투입구를 찾지 못한다. 

▲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콘텐츠. 키오스크 기기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담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편.
▲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콘텐츠. 키오스크 기기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담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편.

 

디지털 시대, 소외되는 노인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8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4대 정보 취약계층 가운데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3.1%로 취약계층 가운데서도 가장 낮았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디지털정보화 접근 수준은 90.1%에 달했지만 디지털정보를 이용하는 역량 및 활용 수준은 각각 50.0%와 62.8%에 그쳤다. 접근은 하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삶의 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지 못해 키오스크 기기가 있는 식당을 피한다. 명절 때는 기차표를 예매하러 이른 새벽에 일어나 역에 달려가 줄을 선다. 인터넷으로 공문서를 다운로드하지 못해 일일이 공공기관을 찾아다녀야 하고, 간단한 은행 거래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은행을 방문해야 한다. 택시를 타려 해도 카카오택시 이용자와 달리 길가에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야 한다. 

지난해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최한 미디어 교육 컨퍼런스에서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디지털 역량이 삶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가 2017년 실시한 ‘노인집단 내 정보격차와 그에 따른 삶의 만족도 연구’에 따르면 독거노인, 부부노인 가구가 3세대가 함께 사는 노인들보다 디지털 접근성과 역량, 활용성은 물론 삶의 만족도까지 떨어졌다.

허위정보(가짜뉴스)와 노인 소외 현상이 관련 있다는 지적도 있다. ‘허위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추적한 기획기사를 선보인 김완 한겨레 기자는 시청자미디어재단 컨퍼런스에서 취재 과정에서 파악한 허위정보 유포 채팅방의 90% 이상이 중장년층이 소속된 방이라고 했다. 대부분 건강과 관련한 정보를 나누는 가운데 틈틈이 정치적 현안에 대한 글도 올라오는 식이다. 김완 기자는 “젊은 사람들이라면 한 눈에 봐도 진위를 의심할만한 수준인데, 진위 판단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에 따라 자신이 바라는 정보를 받아들인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전쟁을 겪었고 산업화에 기여했지만, 정치민주화는 자신들의 몫이 아니었고,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조명 받지 못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디지털 문화에 적응 못하면서 소외를 경험했다. 사회적 소외를 받는 이들 입장에서 디지털은 위안을 주고,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해줬다.” 

허위정보 현상의 원인이 무조건 디지털 소외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태극기 집회 세력의 주장과 사회 보편적인 정서의 격차가 큰 것처럼 단절된 노인 집단이 특수성이 강해지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한 축이 됐다.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와 연계한 교육을 해온 정수진 부산 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장은 “미디어 활용도에 차이가 있고, 쓰는 미디어 플랫폼에 차이가 나고, 그 결과 문화가 달라지고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달라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키오스크에서 허위정보까지, 노인 디지털 교육 현황

노인의 디지털 격차 문제가 대두되면서 다양한 정책 대안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는 의료기관 등에서 키오스크 기기를 만들 때 노인친화적으로 구성하도록 방안을 마련하거나 디지털 기기를 보급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한다. 여러 부처에서 노인 디지털 소외를 해결할 주요 정책 과제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현재 국내 노인 대상 디지털·미디어 교육은 여러 기관에서 전국 단위로 시행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올해 디지털격차해소팀을 디지털포용기획팀으로 개편하고 노인복지관 등과 연계하는 정보화 교육 및 노인 디지털 교육 전문 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또래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기관과 연계하거나 직접 교육을 한다. 서울시는 한국정보화진흥원과 협력해 교재를 만들고 ‘찾아가는 서울 문해교육강사’ 육성을 하는 식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각지의 도서관, 노인복지관 등과 연계해 미디어 강사를 파견해 교육하고 있다. 시청자미디어재단과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소속 미디어 센터들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영상제작 및 퍼블릭엑세스 교육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 실버넷TV에 올라온 한국정보화진흥원 키오스크 체험 교육 유튜브 영상 갈무리.
▲ 실버넷TV에 올라온 한국정보화진흥원 키오스크 체험 교육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생활 ICT’ 교육을 특화했다. 키오스크 활용교육과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사용법 교육, 인공지능 스피커 활용 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장년층 미디어인 실버넷TV 기자로 활동하며 정보화진흥원과 연계한 수업을 진행하는 정학규 강사(73)는 “올해는 주문결제 분야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주문 결제 중에서도 음식점 키오스크 주문법, 구청 서류 발급, 인터넷 쇼핑몰 상품 주문, 교통 결제 등 4가지를 했다. 현장에서 직접 실습을 하면서 교육을 한다. 처음에는 키오스크 기기를 피하려고 하는데 교육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시고 너무 좋아들 하셨다”고 했다.

미디어 교육 기관에서는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신문, 영상 등 활용·제작·리터러시 교육을 해오다 최근 들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실버세대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실천 매뉴얼’을 개발해 도입했고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 역시 ‘생애주기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교재의 일환으로 시니어 파트를 만들어 노인 대상 미디어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두 기관의 교재는 공통적으로 미디어의 게이트키핑을 비롯해 뉴미디어 환경 속 허위정보와 확증편향 등의 문제를 다룬다.

정치적 사안 예민, 자신감 키우는 교육 필요

노인 대상 교육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뉴스 리터러시 교육의 경우 교재를 잘 만들어도 이미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한 노년층이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에 ‘신중함’을 요구한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성향의 어르신이 계실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박점희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사의 말이다. 그는 “수업 때 정치적인 이슈가 아닌 ‘건대입구 240번 버스 논란’을 두고 한 쪽의 입장에서 기록한 내용이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했더니 다들 이해하셨다”고 설명했다.

김현경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사는 “수업에 활용할 뉴스를 가져갈 때 신경써야 한다. 매체 성향에 따라 논조가 나뉘거나 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를 담은 뉴스는 가져가면 안 된다. 정치적인 논쟁이 시작되면 화제를 돌린다”고 했다. 그는 “팀을 짜서 의견을 나누게 하면 의견대립이 심하다. 싸움이 일어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때 강사가 유머를 한다든지, 중재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했다.

정수진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마을미디어연구소장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하거나 가짜뉴스나 나쁜 뉴스를 골라내는 수업이 아니라 뉴스에 대한 기준을 갖고 보는 방법을 연습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가급적이면 토론과 모둠 활동을 하도록 설계해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도록 유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교육에서는 디지털 활용도가 떨어지는 노인 세대의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정학규 강사(73)는 “햄버거, 국수집, 구청 등에서 실습을 했다. 함께 가서 교육하니 민망하게 느끼지 않아서 포기하지 않고 교육할 수 있었다. 이게 별거 아니라는 걸 알게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하늬 한컴캠퍼스 강사는 “(디지털 환경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원인이지 본인이 못하시는 게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편안하게 접근 하실 수 있도록 하고, 재밌는 예를 통해 꼭 필요한 기능을 중점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며 “이분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술적으로는 ‘반복’과 ‘눈높이’ 교육은 필수다. 김하늬 강사는 “교육 이후에는 집에 가서도 할 수 있도록 다시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드려야 하고 한 번 배우고 돌아가시면 거의 대부분 잊어버리시기에 반복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미디어 관련 소프트웨어 교육을 주로 하는 광주지역 노인 미디어봉사단인 ‘미디어봉사단S’의 송현기 단장(72)은 “100번이라도 반복해서 얘기를 해야 한다. 화장실만 다녀오셔도 까먹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까먹었냐고 얘기하면 시니어들은 싫어한다”고 했다. 그는 ‘폴더’를 ‘석작(바구니)’이라고 하고 아트보드를 ‘도화지’라고 하는 등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꿔 강의한다.

▲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미디어봉사단S의 봉사단 일러스트레이터 역량강화 교육. 사진=금준경 기자.
▲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미디어봉사단S의 봉사단 일러스트레이터 역량강화 교육. 사진=금준경 기자.

 

적극적인 일부 노인만 수혜, 노인 내 수준차도 고려해야

디지털이 단순히 기술 활용도를 높이는 것을 떠나 단절된 세대를 극복하게 하는 목표도 달성해야 한다. 김현경 강사가 미디어 교육 때 ‘소통’을 중심에 놓고 교육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소통이라는 건 함께 의견을 내지만 한쪽 생각을 강조하지 않고 나란히 함께 가는 거라고 설명한다”며 “자식, 손주세대가 할아버지 할머니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르신들도 자녀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강의에는 ‘자녀에게 좋은 뉴스 선물하기’ 과제가 있다.

“변수가 너무 많은 현장이 바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현장이다. 교육 나가면 나갈수록 문제가 보인다.” 김현경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사의 지적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오랫동안 진행돼왔지만 변화한 매체 환경과 노인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김현경 강사는 뉴스리터러시 교육을 하러 갔는데 글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읽더라도 유창하게 못 읽는 분들도 있어서 당황한 일화를 소개하며 “같은 노인이라도 해도 연령, 수준차 등이 크다”며 이를 고려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학규 강사는 “교육 시설을 찾는 이들이 정해져 있어 더 많은 노인에게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활성화가 돼야 한다”고 했다. 김하늬 강사는 “사용빈도가 적은 기능들이나 굳이 알 필요 없는 활용성 적은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이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며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내용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원고는 본지 금준경 기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월간 매거진 '신문과 방송' 기고자로 참여해 작성한 글입니다. 신문과 방송 8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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