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기념’할 일인가. 

전쟁기념관을 둘러싼 논란은 기념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명칭에서부터 시작했다. 박래군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대표는 지난 1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전쟁을 기념한다는 인식과 명칭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며 “국민의 안보의식을 강화한다는 건립 목적에 따라 전시 방향이 반공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3일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방문해 전쟁기념관의 전시물을 살펴봤다. 

6·25전쟁실을 비롯한 모든 전시실은 ‘군인’의 시선과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했다. 전쟁기념관의 건립 목적인 전후 세대의 반공, 반북 안보관 확립을 위해 전투 무기, 악에 맞선 군인들의 호전적 활약상 등을 주된 전시 주제로 삼았다. 6·25 전쟁실Ⅰ ‘포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든 육탄 10용사상’이 군인의 호전적 모습을 강조한 대표적 전시물이다. 이 조형물은 송악산 전투 때 북한군의 기관총진지에 박격포탄을 안고 돌진해 자폭한 10용사들의 희생을 표현하고 있다.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6·25 전쟁실Ⅰ에 위치한 ‘포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든 육탄 10용사상’으로 군인의 호전적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6·25 전쟁실Ⅰ에 위치한 ‘포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든 육탄 10용사상’으로 군인의 호전적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호국추모실에선 촛불과 전시물로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쟁 및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선열의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에는 ‘군인’을 기리는 전사자 추모 공간은 존재하지만 전쟁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민간인을 기리는 추모공간은 찾아 볼 수 없다. 

이곳은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오히려 관람객들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과 ‘호국 애국정신’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쟁기념관 홍보실에선 전쟁기념관을 ‘호국 상무정신을 배우는 산 교육장’이라 칭하고 있다. 전쟁기념관 옆 전시홀의 ‘전쟁과 호국안보 공동체의식’ 전시물에선 “국가의 보전은 많은 외침을 극복해온 우리가 내일을 위해 목숨 바쳐 지켜야 할 영원한 과제이다”, “그러므로 국가를 지키는 일은 신분, 성별, 연령 및 이념과 종교적 갈등도 뛰어넘어야 할 최우선의 가치일 것이다”고 강조한다.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 십자성부대 앞에 세워져 있던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훈령이 조형물로 놓여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 십자성부대 앞에 세워져 있던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훈령이 조형물로 놓여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해외파병실의 ‘베트남 국군 파병’ 전시물에선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대량학살의 역사와 반성을 찾을 수 없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우리 군의 활약과 성과만이 전시돼 있으며 십자성부대 앞에 세워져 있던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한국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라는 훈령을 내걸고 있다.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이 호국선열을 검색하는 전자패드에서 ‘송요찬 육군 중장’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이 호국선열을 검색하는 전자패드에서 ‘송요찬 육군 중장’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호국선열을 검색하는 전자 패드에선 송요찬 육군 중장의 공적을 기린다. 그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민간인 대량학살을 진두지휘한 인물이지만 이러한 ‘이면’을 철저히 배제한 채 6·25전쟁 때 업적만 기리고 있다.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외부에 위치한 ‘형제의 상’ 조형물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 서울시 용산구 전쟁기념관 외부에 위치한 ‘형제의 상’ 조형물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외부 조형물인 ‘형제의 상’을 두고도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쓴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 평화는 없다-1950년 6월 25일에 멈춰 선 전쟁’”을 보면 “형제상은 국군 ‘형’과 인민군 ‘아우’의 크기가 한눈에 표가 난다”며 “형은 무장을 갖추고 있는데 인민군 동생은 총을 어디다 내버렸는지 비무장이다”고 지적한다. 한 교수는 “이 작품이 표현하려고 한 것이 화해인지 인민군의 투항인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는 지난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반도 정세가 변화하는데도 전쟁기념관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적대감만 드러내고 있다”며 “적대적 안보의식, 힘에 의한 안보의식, 그 영역에 대표적으로 위치해 있는 곳이 전쟁 기념관”이라고 꼬집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3일 오후 전쟁기념관 측에 기념관 명칭, 전시물의 방향성, 역사적 사실 배제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명칭에 관해서는 메일로 답변을 바로 줄 수 있지만 전시물 관련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확인 후 답을 주겠다”고 대답한 뒤 16일 현재까지 명칭 관련 이메일을 주지 않았다. 16일 오전 네 차례에 걸친 통화 시도 후 응답한 전쟁기념관 측 관계자는 “명칭 관련해서는 홈페이지 자주하는 질문에서 찾아보라”며 “전시물 관련 부분은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은 자신들 홈페이지 ‘자주 하는 질문’에서 “기념은 뜻깊은 일을 잊지 아니하고 생각 한다”라는 의미라며 “‘전쟁’과 ‘기념’이라는 용어는 전쟁을 찬양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실로서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고 그 교훈을 인식시킴으로써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상임활동가는 전쟁기념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의 기반에서 벗어나 종합적으로 전시 방향을 설정하고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변화가 필요하다”며 “전쟁기념관의 명칭부터 ‘기념’이 아닌 ‘평화’, ‘인권’, ‘박물관’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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