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우대국, 반도체 등 3개 품목 수출절차 간소화)에서 한국을 빼기로 결정한 이후, 한국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수탈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일본의 경제제재를 참기 어렵다. 더구나 배제 이유가 일본이 식민지배 시기 자행한 조선인 강제징용과 관련한 배상판결 결과 때문이라니, 얼마나 황당한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한 중재위 개최를 요구하였고, 아베 일본총리는 “약속 안 지키는 국가에 우대조치 못 한다”며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운운하더니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물론 8월 2일 회의에서 일본은 한국을 배제한 이유로 다른 근거를 댔다. 안보문제, 즉 비전략물자에 대한 대북 유입의혹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적반하장식 과거사 해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심어린 참회나 배상을 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존 버거의 구절이 떠오를 뿐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피해자 회복으로 나가야

그런데 아베정권의 한국 경제제재와 강제징용 배상 부인으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아베정권 규탄이 아니라 ‘일본인 반대’라는 식의 국적에 따른 차별과 혼재된 흐름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식당이나 공연장에서는 일본인 출입금지를 버젓이 써놓는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에도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의 해방을 위해 함께 한 일본인들이 있다. 지금 문제는 일본인이기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기업이 과거의 침략행위를 반성하거나 인정하지 않기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절묘한 결합인 반일감정으로는 과거사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으며 정의를 실현하기도 어렵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반일감정을 부추길 수 있으나 이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제국주의 침략행위에 대한 정치적 입장과 행위를 문제 삼을 때에야 전쟁범죄를 단죄하고 친일파 문제 등 과거사를 해결할 수 있다.

대법원이 판결했듯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숱한 폭력과 인권침해를 겪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정의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전쟁범죄에 대해 일본과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독일 기업들도 처음부터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나중에 인정한 것이다. 초기에 독일 전범기업들은 나치정부 하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책임을 회피하였다. 해외에 있는 동유럽 등 외국의 홀로코스피해자들에 대한 책임(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독일제품 불매운동과 집단소송을 하자 이를 수용했다. 이렇듯 불매운동은 정치권력과 기업 권력의 책임을 묻는데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강제징용 배상 책임 부인에 맞선 맥락에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일본정부와 일본 기업들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만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와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마땅하다. 2005년 유엔은 총회에서 <유엔인권피해자 권리장전-‘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의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이하 유엔피해자권리원칙)>을 의결하며, 피해자의 권리를 천명하였고 여기에는 배상도 포함된다. 유엔피해자권리원칙에서는 금전적 배상만이 아니라 ‘(d)피해자 및 그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들의 존엄, 명예, 권리를 회복시키는 공식적인 선언 또는 사법적 결정, (e)사실의 인정과 책임의 수용을 포함한 공식적 사과’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정부도 대법원 판결 이외의 조치를 해야 한다. 원칙에 명시된 ‘국가는 배상판결의 시행을 위한 효과적인 장치를 국내법상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일제 침략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권리 보장은 피해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을 위한 조치는 다른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도 방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은 이러한 조치를 보면서 인권의식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연대감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국가와 사회는 가해자를 처벌하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이후에 인권침해 재발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삼성의 노조탄압 과거사는 언제 청산할 것인가

▲ 김용희씨가 고공농성중인 교통탑. 사진=김예리 기자
▲ 김용희씨가 고공농성중인 교통탑. 사진=김예리 기자

그런데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발표 이후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재벌에 대해 동정여론이 있어 우려스럽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삼성의 불법행위에 대한 재판이 남아있음에도 동정여론으로 삼성의 책임을 묻는 일이 흐려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특히나 강남사거리 CCTV 관제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해고자 김용희 씨를 보고 있노라면 삼성의 범죄행위는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햇볕은 피부를 찌르듯 내리쬐는 곳, 한 평도 되지 않아 발과 얼굴이 삐쭉 나오는 그곳에서 그는 고발하고 있다. 삼성이 무노조 신화를 지키겠다며 노조결성을 준비한 사람들의 인권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노조포기각서만이 아니 미행과 각종 혐의를 붙인 고발 등으로 그의 삶은 피폐해졌다. 삼성물산에서 해고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삼성의 잔악무도한 탄압이 준 상흔이 너무나 크다.

사실 삼성이 무노조신화를 내걸며 노동자들을 탄압한 것은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시신마저 빼앗은 염호석 열사 분신사건의 대응 등에서 보이듯, 삼성은 치외법권지대였다. 헌법과 노조법이 정한 노조할 권리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곳이었다. 박근혜가 감옥에 가고 이재용 회장도 감옥에 간 후, 무언가 달라지는 듯 사람들은 착각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화를 약속하면서 이제 삼성의 과거는 청산된 것인 양 말이다. 삼성에 노조가 하나, 둘 생겼으니 과거의 일이라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김용희 씨가 하늘에 매달려 스스로가 ‘삼성고발장’이 되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그의 고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고. 과거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권리와 명예가 회복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래된 사건일지라도 현재라는 진실을. 과거 삼성재벌이 무노조 신화를 이루겠다며,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폭행을 하고 협박과 해고를 했던 과거사는 그냥 덮어둘 일이 아니라고. 삼성은 과거의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사과와 반성,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피해보상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삼성에서 당한 일이 억울해서 잠도 못자고 인간관계도 파탄이 난 김용희 씨가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몸뚱이를 하늘로 던지는 일이었다. 삼성에서 그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해고가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목숨을 걸고 호소했다. 30킬로 넘게 몸무게가 빠지도록 저 허공에 매달려 단식을 했던 그 마음을 이제 우리가 읽을 때다.

▲ 김용희씨가 고공농성 중인 교통탑. 사진=김예리 기자
▲ 김용희씨가 고공농성 중인 교통탑. 사진=김예리 기자

이제 그의 호소를 받아 우리는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고 던져야 한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과거사는 삼성재벌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해 이리도 관대한가? 아무리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일지라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 적어도 삼성의 노조탄압과 관련한 반인권행위를 조사하고 그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가가 나서서 삼성재벌이 저지른 노조탄압 과거사를 밝힐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그래야 김용희 씨의 발이 발을 땅에 닿을 있다.

이제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만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재벌기업의 과거사에도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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