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걸러 36시간 근무 “내 동생은 소모품이었나”
하루걸러 36시간 근무 “내 동생은 소모품이었나”
과로로 숨진 가천대길병원 레지던트 고 신형록씨 누나 은섭씨

“과로하지 않았다면 동생은 죽지 않았을 거라 확신해요.”

고 신형록씨(32)는 인천 남동구 가천대길병원에서 2년째 전공의(레지던트)로 일했다. 고용노동부가 정한 과로사 당연인정기준은 4주 평균 60시간이다. 전공의특별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이 규정한 최대 수련시간은 88시간이다. 신씨는 지난 2월1일 숨지기 전 일주일에 113시간 일했다.

동생은 쉴 틈이 없었다. 일주일에 3번은 36시간 연속근무였다. “가끔 아이가 아프면, 제가 새벽에 (동생에게) 연락했어요. 당직하느라 깨 있을 때가 워낙 많으니까.” 지난 7일 만난 형록씨의 누나 은섭씨(38)가 말했다. 전공의는 1년에 휴가가 있는 2주 빼고 매일 병원에 나와 회진을 돌아야 했다. “전화로 자주 힘들다고 했지만, 그런 이야길 충분히 나눌 시간도 없었어요.”

동생은 “살가운 사람, 다정한 사람”이었다. 형록씨는 아이들을 좋아해 소아청소년과를 전공을 택했다. ‘나도 부모지만, 아이가 아프면 보호자가 더 예민해져 힘들다’며 말렸지만 끄떡없었다. 학창시절부터 방학마다 자원활동을 했고, 군 복무 중에도 휴가마다 보육원으로 향했다. 전공의 과정을 마치면 해외의료봉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근로복지공단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그는 쓰러지기 이틀 전에도 신체학대를 받고 입원한 아기를 돌보려 신경을 쏟고 연락을 돌렸다. 키는 182cm에 몸무게는 82kg, 진료내역이 거의 치과기록뿐일 정도로 튼튼했다.

▲은섭씨는 동생 형록씨가 세상을 뜬 뒤 공책에 그의 사진을 붙이고, 그가 생전에 착용하던 묵주반지를 끼고 다닌다. 사진=김예리 기자
▲은섭씨는 동생 형록씨가 세상을 뜬 뒤 공책에 그의 사진을 붙이고, 그가 생전에 착용하던 묵주반지를 끼고 다닌다. 사진=김예리 기자

 

그날도 형록씨는 36시간 당직 중이었다. 하루를 꼬박 새고 12시간 근무를 앞두고서였다. “형록이가 ‘콜(호출)’이 오면 응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대요. 바로바로 받는 스타일이라. 그날 새벽은 콜을 안 받았대요. (콜했던 전공의) 동료는 형록이가 없는 대로 상황대응을 하고서 다시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대요. 그래서 당직실에 찾아가 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해요.” 그가 일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교수는 근로복지공단과 문답조사에서 “(형록씨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환자들은 형록씨 죽음을 먼저 알고 찾아왔다. “길병원 누가 될까봐 장례를 조용히 치렀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형록이 빈소에 한 임신부가 와서 울고 계셨어요. 보통 임신했을 땐 장례식 잘 안 오려 하잖아요. 길병원 소아과 레지던트가 숨졌다는 얘길 듣고, 기억하시고 찾아오셨대요. ‘전에 아이가 입원했을 때 정말 잘 해주셨다, 안타깝다’면서 우셨어요.” 한 온라인 육아카페엔 ‘길병원에서 30대 전공의가 숨졌다는 기사를 보고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내 아이를 담당한 선생님이다. 힘든 환경에서도 잘 해주셨던 분’이라며 추모하는 글이 올라오고,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달렸다.

정작 고용관계인 길병원 측은 신씨 죽음에 무신경했다. “길병원 측은 공식적인 사과도,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어요. 장례식 때부터 지금까지도요.” 병원은 형록씨가 숨진 뒤 그가 ‘주 평균 80시간 근무했다’고 적힌 제출용 당직표를 공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형록씨의 실제 근무시간을 들어 반박하기도 했다.

▲고 신형록씨가 해외 의료봉사 중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 사진=프로젝트어브로드 자료영상 캡쳐
▲고 신형록씨가 해외 의료봉사 중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 사진=프로젝트어브로드 자료영상 캡쳐

 

산재 인정됐지만 병원은 과태료 400만원 그쳐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5일 형록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근무시간이) 업무상 질병 과로기준을 상당히 초과했고, 지난 1월부터 소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과중한 책임감과 높은 정신적 긴장 등 업무상 부담 가중요인이 확인되는 바,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병원이 치른 대가는 적다. 보건복지부가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길병원은 △휴게시간 미부여 △4주 평균 88시간 초과 △연속근무 40시간 초과 △연속근무 사이 10시간 휴식 미부여 △주1회 휴일 미부여 등 전공의특별법 주요항목을 위반했다. 그러나 과태료 400만원을 부과받는 데 그쳤다. 전공의특별법 법령을 지키지 않은 수련병원은 100~500만원 과태료와 시정명령에 처한다. 

▲신은섭씨가 지난 30일 인천 부평구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신씨 사망의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행동하는간호사회
▲신은섭씨가 지난 30일 인천 부평구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신씨 사망의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행동하는간호사회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동생인데, 400만원이라니. ‘병원에게 형록이는 소모품이구나’ 생각했어요.” 길병원에 따르면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 15명 가운데 결원 2명을 현재까지 채우지 않았다.

인턴·전공의 등 말단 의료진에 중노동과 과로를 강요하는 관행은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전공의특별법상 근무시간 규정을 어긴 수련병원은 38.5%에 이른다. 2017년 관련 규정이 시행된 뒤 오히려 증가세다.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전공의나 인턴 등 의료진이 아픈 이들이 많다고 해요. 암에 걸리는 경우도 많고.” 은섭씨는 “특히 형록이처럼 질환 없이 건강했던 이들이 과로사하면, 오히려 산재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이 점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길병원은 미디어오늘에 “올 하반기 레지던트 충원을 계획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밝혔다. 유족에게 사과나 유감표명을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병원장이 빈소를 찾은 게 유감 표명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바람 2019-08-14 20:05:15
왜 우리는 야근/오랜 시간 일을 하며, 온 정신을 불태웠다고 위로하며 스스로 건강을 망칠까. 내가 죽으면 다 필요 없는데. 이건 노력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행위다. 흔히 도제식 교육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급격한 사회발전과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노동환경, 병원 안전시스템. 우리가 노력과 수익이 전부다는 사회인식을 만들어,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몬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