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 졸업식을 1주일 여 앞두고 ‘일본에 가면 언니 만나게 해 준다’고 해서 간 것이 평생의 굴레가 되었다. 내 죄란 일본에 간 것 밖에 없다”
김정주(1931년생. 1945년 2월 도야마 후지코시강재공업 동원. 서울고법 승소 원고)

“행여 일본에 다녀온 것을 누가 알까봐 쉬쉬했다. 꼭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아서 내 평생 큰 길 한번 다니지 못하고, 뒷골목으로 뒷골목으로만 다녔다”
김성주(1929년생.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동원.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 원고)

“나랑 못 살겠다고 집 나가서 10년 만에 돌아온 남편이 ‘내가 바람 좀 핀 것이 뭔 죄냐?’고 그랬다. 그래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살아야했다”
양금덕(1931년생.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동원.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 원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 군수공장에 끌려가 일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피해자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근로정신대시민모임)’은 13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정신대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정신대시민모임은 “양금덕 할머니는 철부지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에 일본에 갔고, 김정주 할머니는 졸업장도 손에 쥐어 보지 못한 채 이름도 낯선 곳까지 동원돼야 했다”며 “전쟁수행을 위한 도구로 10대 어린 소녀들에게 공부를 그 미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아동 인권유린 사건이자, 용서받지 못할 반인도적 범죄”라고 비판했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13일 오전 광주시청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근로정신대 지원법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CBS 노컷뉴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13일 오전 광주시청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근로정신대 지원법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CBS 노컷뉴스

 

근로정신대는 일본군 ‘위안부’로 인식돼 미성년 여성들의 노동착취 실상이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근로정신대시민모임은 “일본정부는 해당 기업과 함께 전시 노동력 착취를 위해 미성년 소녀들까지 강제동원한 행위의 주체였기 때문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끔찍한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피해실상에 대한 집단의 기억은 ‘정신대’라면 우선 기피하고 보는 하나의 사회적 배경”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잘못도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정신대시민모임은 “정부부터 이 문제를 전시 중요한 여성인권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제대로 된 진상조사나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겐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로 1993년부터 정부차원의 인권보호 의지를 밝히고 필요한 지원을 실시하는 반면,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의 경우 제도적 지원에서도 소외된 상태”라고 했다. 

▲ 여자근로정신대(여성 강제노동) 피해자 지원조례 현황. 수혜대상은 시도 조례 제정 당시 해당 지역 생존자 현황. 자료=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 여자근로정신대(여성 강제노동) 피해자 지원조례 현황. 수혜대상은 시도 조례 제정 당시 해당 지역 생존자 현황. 자료=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2012년 광주광역시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한 뒤, 현재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전라북도 등 6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만들었다. 국가가 할 일을 지방정부가 떠안도록 하고 중앙정부가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게 근로정신대시민모임의 주장이다. 

근로정신대시민모임은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통과를 촉구했다. 해당 법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으로 아직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안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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