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막말·여성 비하 동영상을 월례조회에서 직원들에게 보여줬단 보도가 나오고 나서 한국콜마의 첫 사과문이 9일 나왔다. 사과문 내용을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잘못된 사과문의 전형적 요소를 두루 갖춰서다.

일단 한국콜마 사과문엔 사실 확인이 없다. 사과문에는 분노 지점에 대한 사실 확인과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 당초 이 사안을 처음 보도한 JTBC 뉴스는 윤 회장이 강제로 임직원들에게 보여준 동영상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전했다. 이후 서울신문은 윤 회장이 “(연구직과 사무직이 많은) 서울 사람들은 지성이 높아서 이해할 거라고 보고 영상을 틀어주지만 공장가서는 애초 이런 내용을 보여주지도 않았다”며 생산직 근무자를 비하하는 발언도 나왔다고 했다. 

이런 보도를 보면 윤 회장이 동영상을 보여주며 어떤 말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론 “베네수엘라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있고 곧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이란 발언을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 정도 내용을 유튜브 영상이나 대화에 담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8월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8월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사과문에는 “이 영상을 보여준 취지는 일부 편향된 내용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현혹돼서는 안 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현 상황을 바라보고 기술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한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사례 언급은 전혀 없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과문은 윤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하지 않는 대신 무슨 취지였는지를 담았다. 

또 사과문 문장만 보면, 동영상의 여성 비하 발언 부분을 보여주긴 했지만 회장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읽히는데, 이 부분 사실 확인도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여성 비하 발언을 보여준 행위도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사과문엔 무엇을 잘못했는지 담기지 않았지만 사과와 직접 관련 없는 내용은 많이 담겼다. 윤 회장이 우리 문화유산에 거액을 쓰며 구입해 국립박물관에 기증했고, 이순신 정신을 전파하려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간접적으로 친일 논란에 대한 해명 격이나 무엇을 잘못했는지 밝힌 이후 얘기해도 늦지 않다. 사과문은 사과에 집중해야 한다. 

“대한항공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다. 사무장을 하기(下機)시킨 이유는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는 점을 들어 부사장이 사무장 자질을 문제 삼았고, 기장이 하기 조치한 것이다.” 

최악의 사과 참사라고 기록될 땅콩회항 보도 뒤 대한항공의 첫 입장문이다. 대한항공과 한국콜마 사과문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과문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진정 위한 것이 아닌, 그 사람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쓰인 점이다. 진정으로 기업과 경영진을 위한다면 홍보 책임자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사과문에 담겨야 한다고 직언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라면 문제가 악화될 때까지 누구도 직언하지 않는다. 만일 직언이 통해 기업이 위기 극복을 했어도 경영진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 과도하게 사과했다”며 직언한 전문가를 나쁘게 볼 가능성도 있다. 

결국 문제는 기업 내 지배구조와 조직 문화다. 대한항공에선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삼남매의 지배구조는 계속 강해졌고, 그들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았다. 삼남매가 자기 재산을 불려갈 수 있었던 배경에 상속과 증여도 있었지만, 회사를 통한 사익 추구인 일감 몰아주기와 여러 계열사 임원을 겸직하며 받은 급여도 있었다. 

▲ (왼쪽부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
▲ (왼쪽부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

 

한국콜마의 경우엔 지주회사가 출범한 이후인 2012년 말 한국콜마홀딩스에서 윤동한 회장의 아들인 윤상현 대표의 지분율이 7.97%였으나 6년 뒤인 2018년 말엔 17.43%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에 한국콜마홀딩스는 매출 1066억원, 영업이익 136억원 기업에서 매출 5616억원, 영업이익 948억원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드라마 등 한류붐과 함께 케이뷰티 열풍을 타고 거둔 성과였다. 기업 규모가 커졌고 새 자본이 계속 들어왔는데 어떻게 윤 회장 아들은 지분율을 높일 수 있었을까. 

윤 회장이 증여한 면도 있으나 윤상현 대표가 지속적으로 자기 돈으로 주식을 매입한 요인도 있다. 그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가능성 하나는 그가 여러 계열사에서 받는 급여다. 윤상현 대표는 지난해 한국콜마와 한국콜마홀딩스의 등기임원으로 급여 29억원을 받았다. 

▲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8월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8월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그는 급여 공시 의무가 없는 회사 13개를 포함해 한국콜마의 15개 계열사 임원이기도 하다. 그는 그곳에서 각각 얼마의 급여를 받으며 15개 기업 임원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혹시 다른 방식으로 기업을 통한 사익을 추구하고 있진 않을까. 윤동한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그의 지배력은 여전하고 아들의 지배력은 강해지고 있다. 과연 한국콜마의 기업 내 문화는 리더십에 비판을 허용할까. 한국콜마 사과를 보며 저널리즘이 규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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