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사 본부장급 인사가 문재인 정부와 자발적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발언 수위로 보면 비난성 공세에 가깝고 보도 공정성 침해가 우려돼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5일 낮 12시경 경기방송 신관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박영재 경기방송 대표이사를 포함한 간부 10여명이 모여 식사를 했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현준호 총괄본부장이 “문재인 때려 죽이고 싶다”, “불매운동 100년간 성공한 적이 없다. 물산장려니 국채보상이니 성공한 게 뭐 있나”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윤종화 보도2팀장(한국기자협회 경기방송 지회장)은 “당시 현준호 본부장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식당 홀에서 다른 손님에게도 들릴 정도로 정부 및 불매운동 비하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5일은 코스피와 코스닥이 동반 하락, 주가가 폭락해 블랙먼데이로 불린 날이다. 주가폭락 요인으로 미중 무역 갈등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참석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준호 본부장은 앞서 발언을 포함해 “아사히 맥주 사장이 무슨 죄가 있나? 유니클로 사장이 무슨 죄가 있느냐”, “유니클로에 사람이 없어 보이도록 방송들이 일부러 아침에 문 열자마자 준비하는 사이 카메라 들고 가서 찍는다. 그 카메라도 모두 일제 소니 건데 이율배반 아니냐”, “트럼프는 아베 편이다. 우리 국민만 모른다”, “우매한 국민들 속이고 반일으로만 몰아간다. 자기네들 총선 이기려고”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현준호 본부장은 식당 관계자를 불러 “점장님, 아사히 맥주 숨겨놓고 팔지 말고 내놓고 파세요”라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관련 증언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윤종화 경기방송 보도2팀장 뿐 아니라 노광준 제작팀장도 확인했다.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현준호 본부장의 발언은 이뿐이 아니다. 노광준 제작팀장은 지난달 4일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될 즈음 현 본부장은 직원 회식 자리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 청구권은)끝난 것이다”, “일본 논리가 맞다. 한국이 어거지로 돈을 달라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노광준 제작팀장은 지난달 22일 현준호 본부장이 자신이 주관하는 보도국 전체회의에서도 “문재인 하는 것 보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일본에 맞서다 반도체 괴멸될 듯하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윤종화 보도2팀장은 관련 발언을 자신의 수첩에 메모했는데 노광준 제작팀장 증언과 일치했다.

▲ 윤종화 보도2팀장이 지난달 22일 간부회의에서 나온 현준호 총괄본부장의 발언을 기록한 메모. '文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 윤종화 보도2팀장이 지난달 22일 간부회의에서 나온 현준호 총괄본부장의 발언을 기록한 메모. '文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현 본부장은 지난 4일 새벽 1시께 경기방송 전직원이 가입(61명)한 사내소통망에 ‘불매운동은 특정정치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고, 시장경제를 혼탁시켜 소비자에 피해를 준다’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물을 올리기도 했다.

현 본부장은 지난 6일에도 보도국 본사 회의에서 일본 불매운동에 비판적인 유튜브 영상을 모두 보고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현 본부장은 지난 8일 식사 자리에서 보도1팀장과 보도2팀장에게 ‘정치적 불매운동으로 인한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는 기사’를 쓰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경기방송은 다음날인 9일 일본식 선술집을 찾아 “이 선술집은 일본식으로 인테리어를 했지만 일본 자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순수 한국 음식점이다”며 “하지만 한 커뮤니티에서는 이 음식점 앞 안내문에 대해 ‘일본어 간판 자체가 비호감이다’, ‘다 망해라’ 등 누리꾼들의 조롱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경기방송은 “대표적인 일본 기업인 유니클로와 도요타 등을 대상으로 시작됐던 불매운동이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며 “무차별적인 반일 불매운동이 되레 한국 기업에 피해로 돌아오고 있진 않은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도했다.

윤종화 보도2팀장은 “국채보상운동이 실패했다고 하고, 정치권의 선동으로 우매한 국민을 만들었다라는 발언을 듣고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을 쟁취한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으로 느꼈다”면서 “외부기관에도 현 본부장의 발언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윤종화 보도2팀장은 “언론사에서 보도 제작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사석이든 공적인 자리든 이런 발언을 하면 데스크로서 압박을 받는다”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사 최고 간부의 언행이 적절한 것인지 많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노광준 제작팀장은 “저는 편성 책임으로 7년, 제작팀장으로 6년을 일했던 중간 간부로서 현 본부장의 발언이 폭로되는 것을 말려야 하는 입장이지만 후배(보도2팀장)가 이후 당할 상황이 그려지면서 진실의 편에 서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편성과 제작, 인사권까지 가진 현 본부장의 친일적인 성향이 경기방송의 보도나 제작에 반영되면 구성원 모두 폭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광준 제작팀장은 “한국 콜마 회장도 부적절한 선택으로 인해서 전 직원과 주변 회사에 피해를 줬다”면서 “현 본부장의 인식과 발언이 어디선가 터졌을 때 경기방송이 매도 당하고 얼굴을 들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기방송 청취자들 얼굴이 떠올랐다. 택배와 편의점을 하시는 노동자 분들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일본제품을 안 팔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국민을 무지 몽매하게 선동당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방송 책임자로 있는 것에 겁이 났다”고 말했다.

현준호 본부장은 12일 통화에서 “회사에서 연봉제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노조 회의에서 반대한다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나와서 왜 관리자가 돼서 제대로 설명을 못하냐고 야단 쳤는데, 그게 발단이 돼 팀장들이 물타기 하려는 방책 같다”고 말했다.

현 본부장은 ‘문재인 때려 죽이고 싶다’ 등의 발언에 “요지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을 욕하는 유튜브가 많고 그 예로 유튜브에 있는 내용을 얘기해 줬다”며 “유튜브 영상을 보라고 (지시)한 것도, 반일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 한 것인데 앞 부분을 잘라내고 말을 왜곡했다”고 말했다.

▲ 경기방송 홈페이지 화면.
▲ 경기방송 홈페이지 화면.

현 본부장은 “일본을 극일하자는 차원에서 말한 적은 있다. 경기 체감상 (경기악화를) 못 느끼고 반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답답하다. 이런 뜻과 취지에서 발언했다”고 말했다.

현 본부장은 1965년 한일 협정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에는 “관련 발언은 솔직히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과거 정권과 대통령이 외교적인 합의를 했다고 하면 파기 및 무효시킨 것은 신뢰에 문제가 있다는 제 생각을 말했다”고 해명했다.

현 본부장은 ‘문재인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발언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현 본부장은 두 명의 팀장급 인사가 실명 공개를 감수하면서까지 발언을 폭로한 이유와 관련해 “저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노광준 제작팀장은 “평소 본부장의 행동으로 볼 때 동석자들 입을 막고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몰아갈 것”이라며 “그러나 그의 발언은 사실이다. 필요시 저희가 진술하겠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저희 이름과 얼굴을 거는 이유는 이해관계나 개인감정 문제가 전혀 아니며 한 방송사의 보도와 편성은 사적 소유가 아닌 국민의 것이지만 내부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5일 현준호 본부장의 문제가 된 발언이 나왔다는 점심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박영재 경기방송 대표이사는 “현 본부장이 유튜브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유튜브를 보면 굉장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말한 것 같았다. 저는 피식 웃으면서 신경을 안썼다”면서 “현 본부장 발언에 피디와 기자들이 모여 있는 간부들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했는데 문제가 커지는 것 같다. 그 친구들(팀장)은 심각하게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준호 본부장은 경기방송 지분 8.54%(2016년 5월31일 기준) 가진 주주다. 현 본부장이 방송사 경영과 편집(보도) 분리 원칙에 어긋난 인사라는 지적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013년 경기방송 재허가 과정에서 현 본부장이 보도국장과 경영지원국장을 겸임하는 것을 지적하고 ‘보도 공정성을 위해 겸직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조건은 강제 사항이다. 하지만 지난 2014년 1월 국장 위 총괄본부장이라는 직함을 새로 만들어 현 본부장이 보도팀장과 제작팀장, 기술팀장, 경영팀장의 의사 결정을 지휘하는 자리에 있다는 게 경기방송 구성원들의 증언이다.

1997년 지역민방 라디오 채널로 개국한 경기방송은 경기도와 인천 일원 권역 가청 인구 1300만명을 둔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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