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예술인들 상당수가 연습·공연 공간 접근과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실제 활동기간이 비장애인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신동근, 한국당 박인숙, 바른미래당 김수민·이동섭,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명수 한국당 의원 주최로 ‘장애인 예술활동 여건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2018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 및 분석연구 결과 보고’가 이뤄졌다. 현재 한국의 장애 예술인은 5972명, 장애인 예술활동가는 2만5722명으로 나타났다. 잠정적 장애 예술인 발굴을 위해 조사 대상에 포함한 장애 예술활동가는 2018년 한해 동안 기관·협회·단체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분야 프로그램에서 창작활동으로 발표·출판·전시·공연 경험자를 기준으로 삼았다.

평균 활동기간의 경우 장애 예술인은 7.6년, 장애인 예술활동가는 4.1년에 그쳤다. 장애 유형별 활동 기간은 장애 예술인 중 시각장애인이 8.7년으로 가장 길었고, 뇌병변장애(6.6년)가 가장 짧았다. 예술 활동가의 경우 시각장애가 6.3년, 청각 및 언어장애가 2.1년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를 발표한 박근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수석전문위원은 “비장애 예술인 활동기간은 10년 이상이 대부분”이라며 “(장애 예술인) 활동기간이 왜 짧은지도 규명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 예술활동 여건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 예술활동 여건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장애 예술인과 예술활동가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어려움은 연습공간 부족이다. 예술활동 창작·발표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대책 필요성을 100점 만점으로 물은 결과 연습공간 확보 점수가 가장 높았고 창작활동을 위한 전용공간 마련, 장애 예술인 활동에 대한 홍보 강화, 장애 예술인 쿼터제 실시 순으로 나타났다. 장애 예술인과 예술 활동가들이 항목별로 매긴 점수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순위는 동일했다.

실제로 지난해 ‘제로셋(0set) 프로젝트’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로에 위치한 공연장 약 120곳 중 휠체어 이용자가 창작자로서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은 사실상 1곳 뿐이었다. 관람 등 이용을 위해 활동보조 없이 입장할 수 있는 공연장도 14곳에 불과했다. 수어통역, 문자통역, 화면해설 등 ‘배리어프리’ 시설 정보를 제공하고 공연을 상연하는 공연장은 없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실제 공연 횟수 차이는 상당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 문화예술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서울·경기 지역 주요 문예회관 35개소에서 서울에서의 비장애인 공연은 1130회인 반면, 장애예술인은 단 4회에 그쳤다. 경기지역에서도 비장애인 1453회, 장애예술인 공연은 8회에 불과했다.

장애예술 관계자 인터뷰(FGI)에 참여한 이아무개 오케스트라 단장은 “영화의 스크린쿼터제와 같은 방식으로 대관·행사기획단계부터 소외되는 장애인예술가 활동범위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송아무개 엔비전스 대표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목적의 문화예술공간이라면 끼리끼리 모이도록 특화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밝혔고, 김아무개 변호사는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시설’이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2018년 9~10월 3차례 심층 인터뷰, 장애인문화예술원-메타기획컨설팅)했다.

장애계에서는 장애인문화예술진흥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상 문화·예술활동 차별금지 조항에 근거해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참여·향유를 위한 시설·장비 제공 △문화·예술활동 보조인력 배치 △문화·예술활동 보조를 위한 장비 및 기기 제공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활동 관련 정보 제공 등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상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 문화예술단체 지원을 현행 임의규정에서 의무사항으로 개정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부처에 장애인문화예술 전담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 예술활동 여건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수어 및 자막 통역이 함께 제공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 예술활동 여건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수어 및 자막 통역이 함께 제공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영국은 2005년 개정 장애인차별금지법, 2010년 개정 평등법을 근거로 ‘장애예술전문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장애인 평등계획을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은 미국장애인법에 따라 공공·민간 시설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한편 3개 단체를 중심으로 장애인 문화예술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장애인의 기회와 권리 균등 보장, 참여와 시민권을 위한 법률’ 및 문화-관광, 문화-장애협약에 따라 관련 정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10년 하토야마 유키오 수상을 본부장으로 ‘장애자 제도 개혁 본부’를 설치했다.

송은일 문화날개자립생활센터 소장은 “2018년 장애예술인 5972명, 장애예술활동가 2만5722명으로 조사됐다. 2006년 약 5만명이었던 장애문화예술인 숫자(예술인 정책 체계화 방안 연구)에 비해 절반으로 급감했다”며 “장애예술인 지원이 급하지 않다는 인식이 대중과 정부 무관심으로 이어져 장애예술인 97%를 생계 벼랑에 서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2007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 예술인 96.5%는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했고, 63.9%는 수입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송 소장은 “‘의식주가 걱정인 장애인들에게 문화예술정책이 꼭 필요한가’, ‘법률이 제정되면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센터를 운영하며 수없이 들었던 질문들이다. ‘장애인’ 한 단어만 뺀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1981년 장애인복지법 이후 38년이 흘렀고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된 지도 12년이 지났다. 지금이라도 장애 예술인 지원 법률이 어떤 방향으로 제정돼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신동근 의원은 “장애인문화예술진흥법 제정 관련해 몇 가지 쟁점 사항이 있다. 여야 의원들이 크게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기 때문에 정부 부처와 같이 기회를 모아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간사이자 앞서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박인숙 의원도 “장애예술인 분들의 창작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이 마련되도록 국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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