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12일 전국단위 주요 일간지들은 수출규제 발단으로 지목되는 ‘강제동원’과 아베 정부 대응에 대한 일본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들을 전했다. 일본 언론을 인용한 일본 정부 입장 보도와 한국 내 ‘일본 불매 운동’ 관련 보도는 신문사 시각이 두드러졌다.

한국일보는 1, 2면에 ‘지한파’로 꼽히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인터뷰를 통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는 일본 정부 주장을 반박했다. 와다 교수는 “1965년엔 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각종 요구를 거절하면서 불충분한 조약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불충분한 조약을 감안하면) 개인 청구권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베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억엔을 출연한 건 문제가 모두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에서 불완전한 청구권협정을 보완하기 위해 자금을 출연하면서 강제징용 문제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 내 반일 움직임 등은 부적절하다고 봤다.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일본 제품이나 인적 교류, 여행 등을 보이콧하는 것은 가능하다면 멈췄으면 좋겠다”며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로 이해하고 합의해야 길이 열리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한쪽을 굴복시키자는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 대응 방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한국 정부 ‘화이트리스트’에서의 일본 배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등과 관련해선 “3.1 독립선언처럼 일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해야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 12일자 한국일보 2면 기사.
▲ 12일자 한국일보 2면 기사.

한겨레는 ‘한-일 경제전쟁 전문가 진단’ 기획에서 일본 통상공격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국내 전문가 진단을 전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공격에 단호하게 대처 △대법원 판결 사건은 판결 집행으로 해결 △한일 과거청산은 장기과제로서 대처 △긴 호흡으로 ‘식민지지배 책임’ 물을 것 등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통상공격이 대법원 판결 때문이라면 국제법 위반”이라는 전제로 “일본은 즉각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한국은 국제재판이나 대항조치도 포함하여 강력한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국내에서 2+2, 2+1, 1+1, 1+1/α 등 온갖 ‘해법’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모두는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나서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법원 판결을 거스르는 잘못된 처방”이라며 “서로 다른 것을 어설프게 뒤섞어서는 안 된다. ‘위로금’ 10억엔을 받는 대신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에 동의해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잘못을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12일자 한겨레 1면 사진 기사.
▲ 12일자 한겨레 1면 사진 기사.
▲ 12일자 한겨레 4면 기사.
▲ 12일자 한겨레 4면 기사.

이날 한겨레 ‘광복절 74돌 기획’은 과거 강제동원의 실상과 생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실었다. 1, 3, 4, 5면을 기획 지면으로 할애한 가운데, 1면 사진 기사와 5면(“뉴스에 아베만 나오면 분통이…죽기 전에 이겨야 않겠소”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양금덕씨 이야기를 전했다.

국민일보는 과거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알아가는 일본 교사와 학생들 이야기를 전했다. 20면 “강제징용, 일본선 잘 몰라…학생들에게 가르쳐야죠” 제목의 기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 소속 교사와 학생 등 15명이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강제동원 관련 강연을 들은 사례를 보도했다. 일본 교사와 학생들은 10일 경북대에서 대법원 강제동원 개별 손해배상청구권 인정 판결 의미와 일제 강점기 일본이 자행한 사상통제, 황국신민화 과정에 대한 강연을 들은 뒤 대구 중구 2·28기념중앙공원의 ‘평화의 소녀상’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둘러봤다.

▲ 12일자 국민일보 20면 기사.
▲ 12일자 국민일보 20면 기사.

강제동원과 관련한 일본 정부 입장은 일본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10면 기사(“미, 전쟁 청구권 포기 원칙 흔들릴까 징용배상 판결 문제 일본 주장지지”)에서 “일본 정부가 ‘미국은 일본편’이라며 여론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1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고 주장하는 일본 입장을 미국이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 장관은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9월호 특집 대담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한국 중 어느 쪽이 골포스트를 움직이고 있는지 ‘증인’인 미국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일본이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기 전에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 신문 11일 보도를 인용해 “외무성은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미 국무부가 ‘소송은 무효’라는 의견을 미국 법원에 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미 국무부가 작년 말 일본 주장을 지지한다는 판단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며 “미국이 한·일 간의 징용 피해자 논쟁에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흔들릴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12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 12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조선일보 12면 “親文단체는 빠지고…反日 촛불집회, 통진당계가 주도” 기사는 일본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단체 움직임을 ‘친문’ 대 ‘친북’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특이한 점은 그동안 함께 행사를 주최해왔던 ‘일본 경제 도발을 규탄하는 범국민시민연대’는 행사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시민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21세기 조선의열단’ 등 ‘친문’ 성향으로 알려진 단체들이 주축이었다”며 “(아베 규탄) 시민행동에는 순수한 뜻으로 참여한 단체도 있지만 옛 통합진보당 출신이 주축인 민중당, 한국진보연대 같은 친북(親北) 성향 단체가 모임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날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은 “내 마음속의 ‘왜놈’이 문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상처와 분노로 가득 찬 가슴이 일본을 ‘왜놈’이라는 허위의 프레임에 가둬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오리무중이 된다”며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리스크에도 가장 크게 노출돼 있다. 지혜롭게 출구를 찾아야 한다. ‘왜놈’ ‘조센징’식의 반일, 혐한몰이는 두 나라의 공멸을 부를 뿐”이라고 주장했다.

▲ 12일자 중앙일보 31면 기사.
▲ 12일자 중앙일보 31면 기사.

이 주필은 “문 대통령은 8·15 기념사에서 아베 총리에게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10월 22일의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도 참석하면 좋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어받겠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을) ‘왜놈’이 아닌 2차대전 이후 크게 성장한 문명국이자 경제·안보의 파트너로 대우하면 문제가 풀린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협량(狹量)을 용서하고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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