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성평등한 관점의 심의를 펼쳐왔지만, 윤 위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이제 윤정주 위원을 대신해서 우리가 노력하겠다. 윤정주 위원, 당신은 뜨거웠던 영혼의 한 표상이자 자부심 강한 심의위원으로 영원히 우리 기억과 한국방송 역사에 남을 것이다.”(허미숙 방심위 부위원장 추모사 중)

4기 방심위원을 역임했던 고 윤정주(49)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추모식이 10일 고인의 빈소에서 열렸다.

10일 오후 4시 고 윤정주 위원을 추모하는 ‘여성·언론운동·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장’이 경기 김포 뉴고려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장례위원으로 380여명이 이름을 올렸고 가족,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및 방심위 임직원 등 직장동료, 지인 등 추모객 200여명이 참석해 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추모장 한 쪽 벽엔 윤 위원이 지난 20년간 거쳐온 여성·언론운동 활동 사진 20여장과 추모글이 붙었다. 추모객들은 “그대의 시간들이 앞으로의 한국사회 여성운동·미디어운동에서 같이 숨 쉬며 확장될 것입니다” “선배님의 뒤를 이어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등의 글을 써붙였다.

▲추도사를 읽는 허미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손가영 기자
▲추도사를 읽는 허미숙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식 중 방영된 윤정주 위원의 활동 사진 영상 중 갈무리.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식 중 방영된 윤정주 위원의 활동 사진 영상 중 갈무리.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식은 장례위원장의 인사로 시작했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김민문정·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가 공동 장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강혜란 대표는 “민우회, 방심위 등 고인이 생전 몸담은 기관에서 여성·언론운동에 담겨진 고인의 생애를 추모하기 위해 여성·언론운동·방심위 추모식을 준비했다”며 “이제 그녀의 꿈을 함께 꾸는 일원으로, 다하지 못한 윤정주의 꿈을 이뤄갈 것이다. 여기 있는 많은 장례위원들이 함께 꿈을 이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말했다.

강상현 방심위원장은 “윤정주 위원을 생각하면 열과 성으로 최선을 다했던 모습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추모 인사를 전했다.

배우자인 김아무개씨는 추모객에게 인사하며 “입이 있어도 드릴 말씀이 없는 죄인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없다. 이 자리 함께 하신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밖에 못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윤 위원의 지난 20년 여성·언론운동 기록사진 영상이 방영될 땐 추모장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1999년에 입사한 하이(활동명)는 7344일을 민우회에서 함께 했어요. 하이 수고했어요” 란 문구가 마지막 자막으로 흘러나왔다. 사회자는 윤 위원이 좋아하는 가수 이하이에서 여성운동 활동명을 따왔다 말했다.

▲추모식 한 쪽 벽면에 붙은 윤정주 위원의 활동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식 한 쪽 벽면에 붙은 윤정주 위원의 활동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식 중 방영된 윤정주 위원의 활동 사진 영상 중 갈무리.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식 중 방영된 윤정주 위원의 활동 사진 영상 중 갈무리. 사진=손가영 기자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교육분과장인 백향숙씨는 “회원들이 만난 윤정주 선생님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15년 전 미디어운동본부에 들어와 여성학을 공부하고, 미디어 분석을 이야기하고, 미디어리터러시를 배우고 익힐 때 당신이 보여준 거침없는 질문들은 놀라웠고 각기 이견을 떠들고 논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1년 반 방심위에서 일했던 허미숙 방심위 부위원장은 긴 추도사를 읽었다. 허 부위원장은 ”1년 반 동안 윤정주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녀 만의 시대를 방심위에서 만들었다. 1600건에 달하는 심의 안건을 받아서 3520회 안건 심의 기록을 회의록에 고스란히 남기고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함께 활동한 9명 위원들과 170명 직원들, 400명 모니터 요원들이 일 폭탄 속에서도 보람을 느낀 건 1·2·3기와는 또 다른 공정한 심의 결과를 이끌고자 애쓴 사람들의 땀의 결실 때문이었고 그 중심에 윤정주 위원이 있다”고 말했다.

허 부위원장은 “대외적으로 말하지 못했지만 심의가 힘든 길을 걷는 사이 윤 위원 또한 살인적 스트레스를 감당했다. 공정성과 아무런 상관없는 악성 뒷담화도 있었고 항의, 협박, 청원게시판까지 이해관계에 따라 흰 걸 검다고 곡학아세하는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얼마나 마음 상했을지, 미안하다”고 밝혔다. 숙연했던 장내는 허 부위원장이 “미안하다 정주야”라 말하자 곧장 울음이 터져 나왔다.

▲추모장 한 쪽 벽 면에 붙은 추모인사 포스트잇 중.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장 한 쪽 벽 면에 붙은 추모인사 포스트잇들. 사진=손가영 기자
▲추모장 한 쪽 벽 면에 붙은 추모인사 포스트잇들. 사진=손가영 기자

 

그의 옆자리에 앉는 동료 여경 민우회 활동가는 “하이는 방심위원 9명 중 1명의 여성위원으로, 민우회 활동가인 페미니스트로 그 자리 선 것이니 안건 심의 때문에 계속 무리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너무나 긴장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공개되는 위치와 그 역할에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한 것을 안다”고 말했다.

여경 활동가는 “많은 이들이 그 노력과 싸움을 기억할 거다. 남은 우리가 꼭 이뤄낼 수 있게 할 것”이라며 “말이 되지도 않는 공격을 받는 하이가 많이 안쓰러웠다. 부담스러워 했는데 (내가) 그 자리에 가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의견을 낸 게 맞았을까. 혼자 고군분투하는 상황에 밀어 넣은 건 아닐까 후회가 된다”며 눈물을 보였다.

방심위를 출입한 김아무개 기자는 “위원님과 대화하고 심의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었고 멘트 받으며 위로를 받았고 배울 점도 정말 많았다”고 추모글을 남겼다. 방심위 직원이란 이름으로 남긴 “기억하겠습니다”란 포스트잇도 눈에 띄었다.

이날 추모식엔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양승동 KBS 사장,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 강형철 KBS 이사회 이사, 이도경 KBS 시청자센터장 등 언론기관 관계자들도 다수 모습을 보였다.

윤 위원의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7시, 장지는 인천 부평승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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