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6일 방북자에 대한 무비자 입국 제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왔지만 지난 2011년 3월 1일 이후 북한을 다녀온 사람에 대해서는 무비자 입국을 불허하고 비자를 받으라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2011년 3월 1일 이후 민간인 신분의 방북자는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서 별도로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은 테러 위협 대응을 위한 국내법에 따른 기술적 행정적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대북 교류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고, 부당한 검열 조치로 작용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은 지난해 9월 평양정상회담 당시 방북했던 기업인과 연예인들의 이름을 올려놓으면서 이들이 정부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내놓고 있다.

▲ 지난해 9월18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SK회장이 공군 1호기에 탑승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지난해 9월18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SK회장이 공군 1호기에 탑승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표적으로 동아일보는 “대통령 믿고 北 따라갔다가 봉변…美입국 제한조치 늑장 발표 침묵”이라는 기사에서 “미국이 ‘방북자 무비자 입국 제한’조치를 내린다는 통보를 우리정부가 이미 한 달 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외교부의 대처와 늑장 발표에 원성이 나오고 있다”면서 “특히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방북했던 기업인들과 한류스타도 이번 조치로 무비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대통령 믿고 따라갔다가 봉변 당했다는’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은 “문재인이 북한 끌고간 이재용 최태원 구광모 이재웅 등 비자 없이 미국 못 간다”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인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인데 피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미국이 내린 조치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따지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미국은 이번 조치를 내리면서 전자여행허가제 신청 절차 과정에 비상식적인 질문을 추가하면서 반발이 크다.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 지난 6일 올라온 공지 글에 따르면 “2019년 8월 5일, 미국국토안보부는 전자여행허가제(ESTA) 신청서에 신청자가 2011년 3월 1일 혹은 그 이후에 북한에 방문/체류한적이 있는지의 여부와 북한국적을 포함한 이중국적자인지의 여부를 묻는 질문을 추가하였습니다”라고 돼 있다. 공지 내용은 우리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공지사항은 ‘비자’와 관련된 코너에 접속해 오른편에 배치된 ‘주한미국대사관 블로그’라는 곳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주의 깊게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외교부의 별도 공지나 언론 보도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지난 2월 남북 교류 차 금강산을 방북했던 한 언론인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북한 국적자냐고 묻는 질문을 추가한 게 말이 되느냐”라며 “대놓고 북한 스파이냐고 묻는 거랑 무슨 차이냐. 이번 조치는 북한 지역을 방문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를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글.
▲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글.

'국민 불편' 차원을 넘어 모욕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평양 정상회담에 동행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선 비자를 별도로 받아야 하고, 전자여행허가제(ESTA) 신청을 하면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해야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

이번 조치가 남북경제협력 및 교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2011년 3월 1일 방북해 이번 조치에 적용받는 사람은 약 3만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남북교류 차원에서 방북하거나 경제협력을 위해 방북했던 사람, 앞으로 방북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조치가 지난 5일 일본과의 무역 전쟁에서 남북경협을 돌파구로 삼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고 하루 뒤에 시행된 것도 남북교류를 허용치 않겠다는 미국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7일 성명에서 “이번 조치가 남북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데 장애를 조성할 것이라는 점이다. 2011년 3월 1일 이후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통일부가 방북을 승인한 우리 국민 수는 3만 7000여명”이라며 “이번 조치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평양정상회담에 동행했던 기업인들도 무비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며, 앞으로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대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한국인 방북자에 대한 무비자 입국제한 조치는 명백한 대북제재 조치이며, 남북관계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며 조치 철회를 요구했다.

외교부가 미국의 조치에 어떤 구체적인 대응을 펼쳤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6일 외교부는 브리핑에서 “다른 나라와의 달리 우리 국민의 경우 단순 여행객보다는 남북협력사업을 도모하기 위해서 방북한 인사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겪게 될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외교부가 미국 측에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설명을 부탁드린다”는 질문에 “이 사안이 발표될 예정이라는 것이 파악이 된 때로부터 미측과 여러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안들을 협의해왔고 앞으로 미측과 긴밀히 협조해서 국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최대할 노력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미측에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지 여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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