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분노한 장애인 단체들이 9일 황 대표 면담을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8개 장애인 단체 소속 20여명은 9일 오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사과하라”는 손 피켓을 들고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 모였다. 이들은 40분이 넘도록 기자회견과 규탄 발언을 이어가며 황 대표와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당사 앞으로 나온 당직자가 “오늘은 황 대표와 면담이 어려우니 기자회견 후 돌아가라”는 입장을 전했을 뿐 황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는 만날 수 없었다. 당사 입구 곳곳에 경찰 병력이 배치됐으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황 대표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서는 국무회의 생중계를 하면서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벙어리가 됐다”고 말해 ‘언어 장애 비하’로 비판 받았다.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에선 ‘벙어리’를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명시하고 있으며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만들 수 있는 지칭이나 표현인 ‘벙어리’, ‘꿀먹은 벙어리’ 등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석화 한국농아인협회 부회장은 “한국수화언어법에서 농인이라는 법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벙어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 농인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황교안 대표는 즉시 사과하고 장애인 인권을 무시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라”고 말했다. 이종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의원도 “황교안 대표는 벙어리라는 표현에 담겨있는 언어청각장애인의 상처를 모르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도 벙어리라는 단어를 보면 나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좌절감이 느껴진다”고 호소했다.

▲ 장애인단체들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장애인 비하 발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기자
▲ 장애인단체들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장애인 비하 발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박소영 대학생 기자

한국당 지도부가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홍준표 당시 한국당 대표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장애 비하 논란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국민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정신 장애인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해 장애인 비하 행위에 오히려 합세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홍 전 대표의 정신 장애인 혐오와 비하 발언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던 사건이 있음에도 여전히 같은 정당에서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한 당을 대표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그 당 전체의 인권 수준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며 “황 대표 발언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32조)이 금지하는 장애인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자 명백한 법률 위반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황교안 대표의 행위에 제대로 된 사과와 자유 한국당 소속 위원 및 직원 전원의 인권교육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국당 측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오는 14일까지 면담 가능여부에 대해 답을 주겠다고 전했다. 박미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미디어오늘에 “면담 가능여부가 아닌 면담 날짜를 정확히 지정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답이 수요일까지 없을 경우 황교안 따라잡기를 예정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교안 대표의 일정을 따라다니며 지속적으로 사과를 요구할 것이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