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8일 5대 그룹(삼성전자·현대차·SK·LG·롯데) 경영진을 만나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방안을 논의했다. 청와대는 기업인들과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해 현장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야당과 일부 언론에선 기업인 소집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靑도 장관도 보여주기식 기업인 호출 남발 말아야”에서 “6월30일 일본의 수출 규제가 처음 알려진 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청와대나 각 부처 장관급들이 주요 그룹 사장급 이상을 불러 모은 자리만 7,8차례”라며 “사상 초유의 일본 수출 규제라는 사태를 맞아 회사 안팎의 상황을 점검하고 대체재를 마련하는 등 동분서주하는 기업인을 자꾸 호출하는 것은 도움보다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청와대는 물론이고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이어 다음 주에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대기업 임원들을 불렀다고 한다”며 “장관들마다 따로따로 대기업 경영자들을 불러서 특별한 내용도 없이 형식적인 회의를 하니 ‘내가 이렇게 뛰고 있다’는 ‘보여주기용’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9일자 사설
▲ 동아일보 9일자 사설

이어 “회의를 한다면서 부처마다 기업 비밀과 관련된 민감한 자료들을 요구하는 것도 기업들에는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은밀하게, 소재·부품 국산화하더라도 요란한 소리를 내기보다 내실 있게 하면서 정말 기업들에 필요한 것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청와대의 대기업 경영진 만남을 “권력 갑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설 “靑 대기업 호출, 소통 아닌 권력 갑질로 비칠 수 있다”에서 “일본은 특정 기업을 겨냥해 주요 소재·부품을 콕 집어서 수출을 규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자칫 ‘항일’ 기업으로 일본 정부에 비치면 보복 조치에 타깃이 될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세계일보 역시 기업들이 일본과 한국 정부 양쪽의 눈치를 볼 수 있으니 비공개로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정부가 기업인을 멋대로 ‘오라 가라’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권력의 갑질로 비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 세계일보 9일자 사설
▲ 세계일보 9일자 사설

이런 비판 내용은 이날 자유한국당의 의견과 일치한다. 중앙일보는 김상조 실장과 5대그룹 경영진 조찬모임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비판한 내용을 전했다. 

이 신문은 ‘김상조, 5대 그룹 경영진과 만남…한국당 “바쁜 기업인을 쇼에 동원”’이란 기사에서 “청와대가 극일 움직임 전면에 기업을 앞세우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며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한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의 기업인 소집이 해당 기업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한국당 입장도 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아침회의에서 “이 난국에 또 바쁜 기업인들을 보여주기 쇼에 동원했다”며 “바쁜 기업인들 오라 가라 하려면 정말 의미 있는 현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듣고 마는 이런 회의가 돼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도 “기업들 시간 빼앗는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외교적 해법을 빨리 내놓아야 하고, 국산 부품·소재 개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52시간 근로, 최저임금 등 규제개혁으로부터 기업 숨통을 근본적으로 틔워주어야 한다”고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한겨레 4면 사진기사
▲ 한겨레 9일자 4면 사진기사

조선일보는 김상조 실장을 만났던 재계 쪽 입장을 전했다. 이 신문 “김상조 만난 5대그룹, 여권의 對日 초강경 발언에 우려”란 기사에 따르면 김 실장과 회동에 참여한 한 참석자는 “각 그룹에서 하고 있는 대처 상황 전략 등에 대해 2~3분씩 이야기했다”고 했고, 또 다른 참석자는 “정부의 대책을 설명하기보다는 기업의 이야기를 주로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도 청와대가 재계를 자주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재계에선 청와대가 일본과 계속 거래해야 하는 기업인들을 자꾸 부르는 것은 정경분리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기업에도 부담이 된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청와대 쪽은 “상시 소통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도 전했다. 

대일 강경대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국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여권을 중심으로 나오는 대일 강경 발언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며 “한일 모두가 강경한 발언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기보다는 냉정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번 간담회에서 재벌 총수들이 다 빠진 것에 주목했다. 이날 김 실장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조찬간담회 참석자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권영수 LG그룹 부회장,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 등이다. 

경향신문은 “이번 간담회에서 5대 그룹총수가 모두 빠진 것은 한일 경제갈등이 조정기에 접어든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반도체 등 공정에 필요한 소재 말고 다른 품목을 규제목록에 추가하지 않았고 삼성전자에서 요구한 극자외선 생산라인용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양국 관계가 최악을 치닫다가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고 했다. 

재계 불만도 다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김 실장은 지난달 7일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만남을 가졌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10일 30대 기업을 청와대로 초청해 일본의 수출 규제 해법을 논의했다”고 했다. 

한편 정부가 또 대기업 지원책을 내놨다는 소식도 있다. 한겨레 “대기업에 또 ‘당근’ 꺼내든 정부 R&D 출연금 지원 2배로 늘린다”는 기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8일 정부 연구개발 과제에 ‘수요기업’으로 참여하는 기업에 더 많은 출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요기업은 제품 개발과정에서 결과물의 성능을 평가·검증하는 기업으로 주로 대기업이라고 한다. 

한겨레는 “정부가 기업 규모에 따른 정부 출연금 지원, 민간 현금 부담 차등 정책을 폐지할 계획”이고 “앞으로 기업들은 정부 출연금을 67% 이상 받게 되며 나머지 현물 포함 부담금 중 의무 현금 비중은 40% 이하로 낮아진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소재·부품 중소기업을 지원한다. 한겨레는 “KB국민은행은 이날 기술보증기금과 ‘소재·부품 기술혁신 중소기업 금융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총 1000억원의 특별출연 협약보증과 보증료 지원 협약보증을 지원한다고 밝혔다”며 “IBK기업은행도 2000억원 한도의 ‘부품·소재 기업 혁신기업대출’을 출시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9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추가 대응 자제…숨고르는 한·일”
국민일보 “일본, 1건 첫 수출 허가 WTO 제소 대비한 듯”
동아일보 “48억달러 방위비 명세 볼턴 ‘트럼프 뜻’ 제시”
서울신문 “한일 경제 전면전 ‘숨고르기’”
세계일보 “첫 수출허가·반격 유보…확전 피한 韓日”
조선일보 “日, 한달여만에 품목 1건 수출 허가 韓, 화이트국가서 일본 제외 유보”
중앙일보 “규제 잠갔다 풀었다 일본 ‘수도꼭지 전략’”
한겨레 “깨어있는 일본 시민들 ‘작은 소녀상 운동’”
한국일보 “예상밖 ‘反日 중심’에 선 밀레니얼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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