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강제동원 대법판결 후속조치를 내놓고 있다. 한국정부와 기업, 일본정부와 기업 중 누가 피해자배상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두고 해법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작 다수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피해자 중심주의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지만 강제동원 문제의 경우 상대적으로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6월 한국 정부는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판결 후속 조치로 ‘한국 기업과 소송당사자인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금을 조성해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 당사자 간 화해가 이뤄지는 방안’을 일본정부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기업에 제기한 소송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 손을 들어주며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창록 경북대 교수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은 아베 등 극우정권을 제외하곤 1965년부터 양국 정부의 관점을 근거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내놓은 ‘한일회담백서’에는 청구권협정이 “영토 분리(식민지 해방)에서 오는 재정·민사상 청구권”을 대상으로 했다고 했고, 일본 쪽도 비슷하게 해석했다. 65년에 양국은 불법 지배를 다루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정부는 스스로 말했듯 대법원 판결 취지를 존중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일본을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할일은 정부가 존중하겠다고 했던 대법원 판결 취지가 무엇인지 적극 설명하고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국내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일본에 어떤 노력을 할지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 정부는 ‘강제동원에 책임이 없는 한국기업과 배상책임이 있는 일본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이른바 ‘1+1(한국기업+일본기업)안’을 대국민 설명이나 피해자들과 상의 없이 갑자기 지난 6월 내놓았다. 여기서 한국기업은 포스코 등 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독립축하금’ 혜택을 받은 기업을 뜻한다. 

▲ 1962년 10월 오히라 일본외상(오른쪽)과 회담하고 있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 사진=연합뉴스
▲ 1962년 10월 오히라 일본외상(오른쪽)과 회담하고 있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관련) 정부가 1+1안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 실장은 “발표해도 될 수준의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노 실장의 답변은 사실로 보기 어렵다. 해당 소송 대리인단(최봉태 변호사 등)은 당시 “정부 입장 발표 이전에 대리인단·지원단을 포함한 시민사회와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감”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200만명 추산) 강제동원 피해자(국내외 노무자·군인·군속 등)들이 6월 당시 미디어오늘에 “정부와 창구조차 없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가 “노 실장의 발언은 거짓”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논거는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1+1안을 제시했다. 사실상 ‘위안부’ 합의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비판은 타당했지만 한국당 역시 원칙과 거리가 먼 대책을 내놨다. 

한국당은 ‘2+1안(한국정부·기업+일본기업)’을 제시했다. 대법 판결 취지가 피해자 개인에게 청구권이 있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건데, 한국당은 일본 정부를 빼고 대신 한국 정부를 넣었다. 현 정부가 역할을 해야한다는 야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방안이다. 나 원내대표는 “2+1안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사법부 판결을 조화롭게 해결하는 지혜로운 안”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임시정부와 그 법통을 계승한 한국 정부도 물론 강제동원 문제에서 잘못은 있다. 당시엔 자국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 규모조차 파악하지 않았고 당연히 일본과 제대로 협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배상’ 판결의 책임이 아닌 정치·도의적 책임 문제다.  

다소 황당한 주장도 나왔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 7일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로 임하고 우리는 대일 배상금 등 일체 물질적 요구를 영원히 포기하자”며 “일본 기업의 배상 등 돈 문제를 떠나 우리 민족의 정신·도덕성과 우월성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8일자 사설에서 손 대표의 주장을 지지했다. ‘배상’판결의 핵심은 일제의 불법성이지 일본에게 받아낼 물질이 아니다. ‘영원히 포기하자’는 건 한일 위안부 합의때 나왔던 ‘불가역적’ 등과 같은 표현인데 이럴 경우 누가 손해고 누가 이득일까.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내놓은 ‘2+2(한국정부·기업+일본정부·기업)안’은 과거에 논의가 있었던 방안이다. 하 의원은 일본 기업의 사과를 전제로 한일정부와 기업이 공동 펀드를 만드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일본정부를 넣었고 일본 야당의원들과 같은 법안을 동시에 발의할 예정이라 다른 방안보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역시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아베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일본 야당의 정치적 목적이 포함됐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선 독일이 나치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정부와 기업이 만든 ‘기억, 책임, 미래재단’을 거론한다. 허나 이는 가해자(독일)가 사과한 뒤 피해자들을 배상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사과한 뒤 ‘2+2안’을 일본 쪽에서 제안했다고 해도 법적책임이 없는 한국 정부와 기업을 끌어들였다는 이유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방안이다.  

▲ 1994년 3월 14일 관부재판 첫번째 당사자 본인 신문을 위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법원으로 향하는 원고들. 왼쪽부터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 위안부 고 이순덕할머니, 원고들을 도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 사진=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제공
▲ 1994년 3월 14일 관부재판 첫번째 당사자 본인 신문을 위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법원으로 향하는 원고들. 왼쪽부터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 위안부 고 이순덕할머니, 원고들을 도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이금주 회장. 사진=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제공

결국 이 사안에서 현 정부는 자신들을 책임주체에서 제외했고 한국야당은 한국정부를, 일본야당은 일본정부를 넣었다. 일본정부와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대원칙을 적당히 고려하면서 ‘현실적인 안’이라는 이유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했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필요할 때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거론하면서 위 대책에서 정작 피해자 다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일제시대 강제 동원 사건에서 크게 피해자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소송에 참가한 피해자들과 그렇지 않은 절대다수의 피해자들이다. 13년 만에 소송에서 이긴 유일한 생존자 원고 이춘식씨(99)는 지난 2일 JTBC에 “나 하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네.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오지”라고 말했다. 사법농단 등으로 강제동원 재판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도 대법원 판결 이후 수개월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고, 승소한 피해자는 지금 죄책감을 떠안고 있다.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자고 주장한다. 백장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유족총연합회장은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금 나온 대책들은 모두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이 동시에 돈을 내놓으라는 안인데 일본 쪽에서 거부한 상황에서 진짜로 현실성있다고 생각하느냐”며 “유족들 나이가 많다. 정부가 서둘러 할 수 있는 걸 하다보면 국내에서도 관심이 모일 거고 이를 근거로 일본 쪽에도 움직여달라고 요구할 명분이라도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 회장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비공개 노무자 명단(약 27만명)자료 공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관련 법안 등을 우선과제로 언급했다. 그는 “일본이 강제로 식민 지배했고 문제가 있는 거 다들 안다. 안타까운 역사고 이걸 잊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맞다”며 “사실상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 일본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피해자 유족들도 많다”고 꼬집었다.  

※ 참고문헌
김창록, 한-일 ‘강대강’ 대결의 진원…대법원 판결 핵심 정리 (오마이뉴스)
김창록, ‘불법강점’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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