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지나치게 위기를 강조하는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한일관계, 갈등의 현실적 해법을 찾아서’를 주제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등이 서울 서대문구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연 긴급토론회에서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전 영역에 퍼졌다. 자발적 실력행사는 ‘노 아베’를 넘어 ‘노 재팬’의 경계를 넘나든다. 서울 중구청은 한때 ‘노 재팬’ 깃발을 내걸어 논란이 일었다. KBS뉴스엔 “이 볼펜은 국산”이라는 클로징멘트가 등장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재임 중 “중요한 건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란 글을 써 도마에 올랐다.

▲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와 시민과 함께하는 연구자의 집 등이 7일 서울 서대문구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한일관계, 갈등의 현실적 해법을 찾아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와 시민과 함께하는 연구자의 집 등이 7일 서울 서대문구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한일관계, 갈등의 현실적 해법을 찾아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발제자로 참석한 저술가 김규항씨는 “(이번 사태를) 한국 전체와 일본 전체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규항씨는 현재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조선의 식민지 경험에 기인하는데, 이는 일본 지배계급과 조선 인민 사이 일이었다. 조선의 지배계급은 대체로 상황에 영합해 안락한 삶을 이어갔다. 일본 인민 역시 일본의 지배계급에 수탈당하고 전쟁에 동원돼 총알받이가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민사회가 대응할 대상을) 당시 일본 지배계급과 오늘 일본의 극우세력으로 분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김씨는 정부가 ‘일본에 대항하는 단합’을 강조하는 상황을 두고 “PC(정치적 올바름)의 하한선 깨기”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올바름’ 이미지를 강조하며 당선한 현 정부가, 본래 최상위기득권이 강조하던 애국이란 구호와 사고방식을 사용하기를 감행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바닥을 깼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재계가 ‘단합’을 강조하며 약자의 일방 희생을 강요하는 양상이 되풀이된다는 우려도 나왔다. 앞서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 사태 대응방안으로 환경‧노동분야 규제인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 완화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민들께 단합을 호소”했고, 일간지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두려워 말고 위기를 극복하자” 발언을 일제히 싣기도 했다.

▲저술가 김규항씨와 신정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 사무국장(오른쪽). 사진=김예리 기자
▲저술가 김규항씨와 신정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 사무국장(오른쪽). 사진=김예리 기자

토론자로 발언한 신정욱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조 사무국장은 “정부가 신소재 개발 국산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고, 국가적 위기에 사회 전체가 고통을 분담하자는 주장도 공공연히 나온다”며 “그러나 국가적 위기상황에 항상 서민과 노동자가 고통을 전담해왔고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연구인력 연장근로 허용과 재량근로제 확대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신 사무국장은 “R&D 지원 확대의 경우도, 연구인력 구조의 최하단에 있는 건 대학원생이다. 각 대학의 수많은 연구소의 실질적 행정업무 담당자인 대학원생이 이를 짊어진다”고 꼬집었다.

김양태 성공회대학교 노동사연구소 연구원은 일본에 종속적인 산업 구조에 대응하려면 오히려 한국 경제체질에서 고칠 점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김양태 연구원은 “소재부품 국산화와 탈일본 이슈가 커지는데 정작 일본의 소재부품 경쟁력이 어디서 오는지, 한국의 정책 수립이 어떻게 돼야 할지를 짚는 논의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김양태 연구원은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관계는 일본에서 따올 부분”이라며 “일본 제조업은 대기업이 설계도를 만드는 과정부터 하청 중소기업을 무시하지않고 참여시킨다. 그렇게 제품 개발기간을 줄인다”며 “한국에선 대기업이 하청 기업을 상대로 단가 후려치기하고,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투자로 기술을 내놔도 써주지 않는 ‘갑질’ 관계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를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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