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조선일보 사보에는 ‘5·16’에 관한 사사(社史)가 실렸다. 5·16은 육군소장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 병력이 1961년 5월16일 새벽 일으킨 군사쿠데타를 말한다. 조선일보는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사보에 근현대사 100년을 조명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보는 “5월16일자 조선일보 석간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제목 등에 ‘쿠데타’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이다. 당시 군부는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조선일보는 군부의 불법 행동에 대해 ‘쿠데타’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5월16일 당시 이른바 ‘군사혁명위원회’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포고 제1호’로 언론 활동을 규제했다. 언론, 출판, 보도 등에 대한 사전 검열을 강제한 상황에서 자사 석간은 ‘쿠데타’ 용어를 사용하며 사실을 전했다는 것. 

▲ 지난 7월26일 조선일보 사보에는 ‘5·16’에 관한 사사(社史)가 실렸다.
▲ 지난 7월26일 조선일보 사보에는 ‘5·16’에 관한 사사(社史)가 실렸다.

덧붙일 것이 있다. 조선일보 16일자 석간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군부쿠데타 군사혁명위 조직을 발표”였으나 2면 머리기사 제목은 “군사혁명 하의 서울”이고, 그 옆 기사 제목은 “미 의회, 쿠데타에 큰 관심”이었다. ‘혁명’과 ‘쿠데타’가 같은 지면에 섞여 있던 것. 

물론 조선일보는 16일 오전 “오늘 새벽 군부 쿠데타”라고 호외를 발행하며 사실을 알렸다. 동아일보가 “오늘 미명(未明) 군부서 반공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한 것과 대조적이다. 

18일자 조간부터 조선일보 지면에 ‘쿠데타’ 용어가 사라졌고 19일자 조간부터 ‘군사혁명’을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미화하는 사설이 실리기 시작했다. “제2공화국의 붕괴와 최고회의의 사명”(5월20일자), “혁명내각의 발족과 우리의 기대”(5월21일자), “정당 사회단체 해체는 발전적 해소이기를 바란다”(5월23일자), “포고 제11호가 의도하는 언론 창달”(5월25일자) 등이 그랬다. 

지난달 26일 조선일보 사보도 이런 상황을 ‘만신창이’라 규정했다. 사보는 “군 검열 속에 조선일보 5월17일자 석간 1면은 사설을 제외하고 모든 지면이 만신창이 상태로 발행됐다. 머리기사를 포함해 8곳이 검열에서 삭제됐다. 5월18일 군사정부는 공수부대 군인 2명을 조선일보로 보내 ‘군사혁명’ 지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사보의 5·16 관점이 특별한 건 아니다. 조선일보는 창간 90주년 특집기사(2010년 2월26일자 “‘혁명’ 이끌었지만 5·16쿠데타로 다시 ‘시련의 길’”)에서 “(5월16일에) 이미 계엄령이 내려져 엄격한 사전 검열이 실시되고 있었음에도 조선일보는 ‘쿠데타’라는 용어를 고집했다. 하지만 19일 ‘군사혁명위’가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되면서 검열이 더욱 강화돼 ‘쿠데타’ 대신 ‘혁명’으로 표기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지적하고 싶은 건 지면 일관성이다. 조선일보는 지면에서 5·16을 ‘혁명’으로 규정하는 것에 거리를 뒀다. 취재원 발언이나 일부 기고에서 5·16을 혁명이라 한 적은 있다. 김대중 고문도 ‘5·16 쿠데타’(2017년 3월14일자 칼럼)로 명명했다. 그 시절 경제성장을 과도하게 평가하고 미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사실 관계’ 문제다. 

▲ 지난 5월16일자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칼럼.
▲ 지난 5월16일자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칼럼.

반면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지난 5월16일자 칼럼에 “오늘로 5·16 군사혁명 58년이다. 이날은 이승만의 건국과 함께 오늘의 한국이 시작된 출발점이다. 박정희 매도가 유행이지만 엄연한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세계 최빈국이던 우리가 미국 대통령이 ‘가장 부자인 나라’로 지목하게 됐다”고 썼다. 칼럼 제목도 “58년 전 오늘이 없었어도 지금의 우리가 있을까”였다. 2017년 박근혜 탄핵으로 조선일보를 떠난 ‘태극기 독자’ 향수를 부르는 박정희 찬양 칼럼이었다. 

지난달 사보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5월23일을 기해 모든 정당·사회단체를 해체하고 언론에도 족쇄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때 신문·통신 등 정기간행물 1200종을 폐간했다. 6월에는 관공서 곳곳에 ‘통제구역’을 만들어 기자들의 발을 묶었으며 행정관청 안에 공보실을 설치해 언론의 취재활동을 통제했다”며 쿠데타 세력의 언론 탄압을 고발했다. 사보가 다룬 비극의 역사에 양 주필 칼럼이 떠올랐다.

* 참고문헌 ‘조선일보 대해부3-박정희 정권 시기’/ 문영희·김종철·김광원·강기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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