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른바 ‘자회사 방식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적극 홍보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우수사례집을 발간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같은 날 최근 파견‧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시킨 한국 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을 모범사례로 꼽고 사업장을 찾아 격려했다.

자회사 전환 방식에 노동자들 반발이 거센 와중 이뤄진 행보를 여러 언론이 비판한 가운데, 조선일보는 오히려 ‘정규직화가 경영악화를 부추긴다’는 프레임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한편 조선일보와 정부의 주장은 의외의 공통점을 지닌다. 당사자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자회사 전환은 곧 정규직화’라 전제한다.

조선일보는 30일 고용노동부 행보를 비춘 일간지 가운데 홀로 공공기관 경영실적과 수익에 눈을 돌렸다. 조선일보는 15면 머리기사에서 “고용부는 ‘반쪽의 진실’만 밝혔다”며 “모범사례로 추켜세운 공공기관들이 적자를 내고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했다. △한국 국제협력단 △대구도시철도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영평가 또는 순익이 악화했다며 “적자구조를 유지한 채 일자리만 양산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고용노동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고용노동부
▲지난 30일 조선일보 15면 머리기사
▲지난 30일 조선일보 15면 머리기사

공공기관 경영실적을 잣대로 한 정규직 전환 평가는 적절치 않다. 공공기관 설립 목적은 수익 올리기가 아닌 탓이다.

당초 조선일보가 기준 삼은 공공기관 경영실적도 평가지표에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포함한다. 5개 주요지표 가운데 노사상생과 재난안전 관리, 윤리경영을 포함한 ‘사회적 가치’ 부문이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오히려 공공기관 책임으로 명시돼, 경영평가의 중요 요소란 얘기다.

한편 조선일보가 “경영실적이 저조하다”다고 비판한 한국국제협력단은 정부의 ‘개발도상국 교류증진과 발전지원’ 사업을 위탁집행하는 준정부기관이다. 대구도시철도 공사의 경우 적자의 주요 이유로 노인과 장애인 등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정 무임승차에서 나고 있다.

당기순이익으로 논의를 좁혀도 정규직 전환이 미치는 영향은 극히 일부다.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과 관계자는 “기관마다 인건비 비중이 천차만별이지만, 일반기업들도 인건비에 들이는 비용은 3% 정도다. 더구나 일부 비정규직 인원을 정규직화하는데 드는 비용은 훨씬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자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급여는 공공기관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에 속한다. 공공기관 직접고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늬만 정규직화, 이름 바꾼 간접고용’ 반발 외면

한편 조선일보와 정부 입장의 근본 전제는 같다. 조선일보는 ‘자회사 전환을 통한 정규직화’를 비판하고 정부는 권장하지만, 둘 다 ‘자회사 전환이 곧 정규직화’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자회사 전환 추진이 ‘무늬만 정규직화’라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왔다. 자회사 소속 정규직이 되더라도 원청이 노동자의 규모, 노동‧급여조건 등을 일방으로 결정하면서도 상응하는 책임을 지지 않는 구도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들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소속 을 또다른 용역업체로 옮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조선일보가 전제하는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도 ‘자회사 효과’로 보긴 어렵다. 엄진령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정부는 자회사 전환 노동자들의 임금이 평균 16% 이상 올랐다고 홍보하지만, 최저임금 상승 등 다른 정책효과를 분리하면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일부는 임금이 올랐지만 오히려 낮아진 곳도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1000여명은 서울톨게이트와 청와대 앞에서 농성 중이다. 사진=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1000여명은 서울톨게이트와 청와대 앞에서 농성 중이다. 사진=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이에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고 공사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폭염 속에서 한 달째 농성 중이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은 지난 30일 “이재갑 장관이 제일 먼저 방문해야 할 곳은 자회사가 아니라 고용안정과 법원판결 존중을 외치는 1500명 요금수납원들의 농성현장”이라고 밝혔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정부와 조선일보 모두 ‘자회사 전환은 곧 정규직화’라는 데 기본 초점을 맞추지만,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반쪽 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관련 기사.
▲지난달 30일 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관련 기사.

많은 신문이 이날 정부 행보에 비판 보도를 냈다. 경향신문은 이날 ‘비정규직 직접고용 목소리 거센데 자회사 전환수용 치하한 노동부 장관’ 기사에서 이 장관의 격려 방문이 “논란”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방식은 ‘파견‧용역업체에서 이름만 바꾼 간접고용’이라고 반발해왔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자회사 통한 정규직화 거부 파업 줄잇는데… 정부는 대놓고 홍보’라고 기사 제목을 뽑고 “자회사 고용을 두고 노정 갈등으로 잇단 파업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노동계를 보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자극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노동계는 정부의 행보에 달가워 않는 눈치”라며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은 또 다른 용역회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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