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기자 보도 예산안, 총 2160만원”
“도내 일간지 14명 → 1600만원 요구, ○○언론 모 기자 → 별도 요구(신문광고 1천만~2천만)”

지난해 드러난 ‘남원 주재기자 돈 봉투 사건’ 수사에서 확인된 문서 중 일부 내용이다. 문서 이름은 ‘남원시 출입기자 현황’으로 남명산업개발의 이아무개 이사가 2017년 10월26일 작성해 사장에게도 보여줬다. 실제로 2주 후 기자 13명이 총 2000여만원을 받았다. 모두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처벌받은 이는 모두 15명이다. 남원시청 출입기자 12명과 기자단 간사 김아무개 기자, 남명산업개발 이 아무개 대표와 이 이사다. 남명산업개발도 부정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3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사건 1심은 지난 16일 모두 마무리됐다. 전주지법 남원지원 형사1단독 정순열 판사는 사건을 주도한 간사 김 기자의 배임수재 및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을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760만원 추징을 선고했고 80시간 사회봉사도 명했다. 이 이사는 부정청탁금지법 및 범죄수익은닉에 관한 법 위반, 배임증재 혐의로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 대표이사에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남명개발산업 측 '남원시 출입기자 현황' 문건을 재구성. 디자인=이우림 기자
▲수사·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남명개발산업 측 '남원시 출입기자 현황' 문건을 재구성. 디자인=이우림 기자

법원은 연이어 열린 ‘기자들 선고공판’에서도 기자 박아무개씨, 장아무개씨, 양아무개씨의 배임수재 혐의가 인정된다며 벌금 100만원에 추징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분양아파트 홍보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2017년 11월9일 김 기자를 통해 남영산업개발 측 돈을 각 100만원씩 받았다.

돈 받은 기자 12명 중 이들 재판만 따로 열린 이유는 세 기자만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해서다. 주재기자 12명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약식기소돼 지난해 12월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150만원까지 벌금형을 받았다.

2017년 10월 남명산업개발은 남원에서 ‘더라우‘ 아파트를 신축하던 중이었는데 이 현장은 이미 이전 시행사가 공사를 진행하다 3번에 걸쳐 중단한 곳이었다. 남명산업개발은 시민 불신을 해소하기위해 아파트 분양 홍보를 하려했으나 광고비용이 높고 일부에만 광고를 줄 경우 다른 언론사가 항의할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이에 남명산업개발 측은 남원시 기자들에 현금을 나눠 주고 홍보성 기사를 부탁하기로 계획했다.

이 이사는 이를 위해 ’돈 세탁‘을 했다. 11월4일 협력업체에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광고물품비 2900만원을 지급한 후 다시 2300만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이 이사는 5일 후인 11월9일 한 식당에서 김 기자를 만나 2000만원을 건네 줬다.

이 이사는 법정에서 ‘남원 출입 기자들이 약 30명이라 기자들을 전부 만나 홍보성 기사 작성을 부탁하기 힘들어 남원시청 출입 기자단 간사에게 연락해 다른 기자들에게 전달해달라 부탁했다’고 경위를 밝혔다. 남는 300만원 향방을 두고 이 이사는 ‘별도 광고비 명목으로 전북 모 일간지 기자에게 260만원을 줬다’고 밝혔으나 이 기자는 기소되지 않았다.

▲2018년 3월20일 방송된 전주MBC 간추린 뉴스 화면 갈무리.
▲2018년 3월20일 방송된 전주MBC 간추린 뉴스 화면 갈무리.

김 기자는 기자 13명에게 50~150만원 씩 총 1240만원을 전달했다. 기자 박씨는 언론사 사무실에서, 양씨와 장씨는 각각 남원시청 주차장에서 홍보기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김 기자로부터 1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실제로 남명산업개발과 아파트를 홍보하는 기사를 썼다.

법원은 “지역신문은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하고 지역사회 공론장으로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따라서 지역신문 기자는 주재 지역의 동향이나 사건·사고 관련 기사를 작성하거나 편집할 때 공정성·객관성에 비춰 일반 사무처리자에 비해 더 높은 청렴성이 요구된다”며 “지역기자는 자신의 임무 수행 과정에서 보도 대상으로부터 금전을 수수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법원은 유죄선고한 기자 각각에 “높은 청렴성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부정청탁을 받고 금전을 수수했다”며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지역 주민 신뢰가 훼손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 범행 죄질이 나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광고와 기사는 공정성, 객관성과 관련해 구독자들의 신뢰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피고인들이 아파트 광고를 하려 했다면 신문지면을 이용한 다양한 광고 방법이 있음에도 배부받은 보도자료에 대한 취재나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없이 홍보 기사를 작성했다”고 지적했다.

사건이 알려지고 1심 선고가 마무리된 1년 8개월 동안 소속 기자의 불법행위를 사과한 언론사는 한 곳도 없다. 연루된 언론사는 10여 곳으로 전라일보, 전북도민일보, 새전북신문, 전민일보, 전북중앙신문, 새만금일보, 전북연합신문, 전주매일신문, 전주일보, 전북타임스 등이다.

초기부터 사건을 감시해왔던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은 남원시청에도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지역언론 거대 광고주인 지자체가 광고비·지원금을 어떻게 집행하느냐에 따라 지역 언론 발전이 달라진다는 문제의식이다. 전북민언련은 “지자체가 범죄 전력이 있는 언론사는 제재하는 방침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남원시청 관계자는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 지켜보고 있다. 광고 집행을 중단하는 등의 상황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장 기자는 과거 동종 전과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김 기자와 장 기자는 지난 22일 상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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