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격리·배제된 계약직 아나운서 문제를 자체조사한 뒤 아나운서 업무(비방송 업무)를 부여키로 하고 공간격리 문제 해결에 나섰으나 회사와 아나운서 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12층 콘텐츠사업국 별도 공간에 배치됐던 계약직 아나운서 7명이 9층 아나운서국에 배치되고 9층 정규직 아나운서 일부가 12층으로 배치된다는 방침 때문이다. 사측이 내세운 사유는 ‘공간 부족’이다. 

MBC 16·17 사번 계약직 아나운서 10명은 2016~2017년 1년 단위 ‘전문 계약직’으로 채용됐다가 지난해 계약 만료됐다. 노동위는 이를 ‘부당 해고’로 판정했다. 법원은 본안 판결(해고무효확인소송)에 앞서 지난 5월 아나운서들의 근로자 지위를 임시 인정했다.

법원에서 임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아나운서 7명은 지난 5월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다시 출근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이 업무 부여를 하지 않은 채 12층 별도 공간에 배치해 논란이었다.

아나운서들은 지난 15일 최승호 MBC 사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메일을 발송했다. 근로자 지위를 인정 받았는데도 업무를 주지 않고 별도 격리하는 건 차별 및 인권 침해라고 봐서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MBC는 인사·직제 규정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조사위원회(외부인사 1인, 사내인사 2인)를 구성해 자체 조사했다. 조사위는 지난 30일 “(회사 조치가) 의도적으로 신고자(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괴롭히기 위해 시행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최승호 MBC 사장에게 보고했다.

기존 아나운서들이 프로그램에 배정돼 있고, 아나운서 직무 특성상 방송 출연 여부는 제작진 몫인 데다가 현 계약직 아나운서 사원 신분은 임시적이라는 회사 측 입장을 수용하면서도, 노동 인권 차원에서 현 상황 개선은 필요하다는 게 조사위 판단이었다.

조사위는 회사에 “신고자들에게 아나운서국 고유 업무 중 적절한 직무를 부여한다”, “아나운서국 사무실 배치를 원칙으로 하되, 아나운서국과 공간사정과 업무배치 상황을 고려해 시행한다”는 내용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아나운서국 간부들은 31일 오전 후속 조치 등을 두고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면담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도 아나운서 직무 부여에 관해서는 ‘당장 반드시 방송 출연’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측 입장이 한데 모아질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문제가 된 건 ‘공간 재배치’였다. 정영하 MBC 정책기획부장은 31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신고자들 고충 해결을 우선 배려할 것”이라며 “현재 아나운서국에는 책상 3개가 비어있다. 7명 책상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두 공간(9층·12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즉, 계약직 아나운서 7명이 9층 아나운서국에 배치되면 9층 아나운서국에 있던 정규직 아나운서 일부가 12층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회사 조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간 재배치로 애먼 정규직 아나운서들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다. 12층 격리 공간이 ‘정상근무 장소’임을 입증하기 위한 회사의 꼼수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계약직 아나운서는 통화에서 “2017년 선배들이 파업에서 복귀하고도, 우리와 선배들은 한 공간에서 근무했다. 신입 아나운서가 입사했지만 또 다른 아나운서들이 퇴사했다. 아나운서국에 자리 3개 밖에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아나운서는 “더구나 우리로 인해 (정규직) 선배들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31일 면담에서 듣지 못했다. 기사로 보고 알았다”며 “깜짝 놀라 조사위에 연락해봤지만 지금은 해산된 상태라고 했다. 이 조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입장문에서 “모두 다 9층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데도 이런 조치를 내놓은 건 8월1일 노동청 조사에서 12층 골방이 격리소가 아니라 사무 공간이라고 방어하기 위해 낸 고육지책 아닌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가 (9층으로) 돌아와서 또 다른 누군가가 12층으로 쫓겨나야 하는 건 원했던 화해와 정반대되는 조치다. 또다시 선배들 자리를 빼앗는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정영하 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공간을 분할해서 근무하는 부서가 MBC에 6~7곳 정도 있다. 아나운서들만의 특별 사례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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