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2일 임기 1년을 남기고 돌연 사의를 표명하자 지상파 관계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대 현안인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논의가 방통위 수장이 바뀌며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올 상반기에 허용될 것 같았던 중간광고 도입은 종편과 CJ 등 경쟁 사업자 반발과 정부·여당 이견으로 답보 상태다. 

이 위원장에 대한 지상파 관계자들 평가는 냉정했다. MBC 한 PD는 “개인 역량일 수도 있고 내부에 위원장을 흔든 세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냉정히 말해 역대 방통위원장 가운데 가장 무능했다”고 평했다. 그는 “공공성을 논외로, MB정부 최시중 방통위는 시장을 넘어 산업을 봤다. 종편 출범으로 미디어시장이 매우 혼탁해졌으나 미디어산업 파이는 커졌다. 최시중과 비교하면 이효성 방통위는 추진력이 매우 아쉬웠다”고 말했다.

KBS 한 관계자는 “여러 창구로 중간광고 등에 입장을 전했는데 위원장이 묵묵부답이라 답답했다”고 말했다. 지상파 한 고위 임원은 “지상파 방송이 고사하는 상황에서 중간광고 도입은 최대 현안”이라며 “방통위 수장이 바뀌면 정책이 홀딩될 가능성이 있다. ‘지상파 말살’로 갔던 과거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 정부 기조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반면 종편 한 관계자는 “우리라고 이 위원장에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 정부가 종편에 반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학자 출신 이 위원장이 그나마 양심을 지키려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및 정부·여당과 사이가 벌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김용욱 기자.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사진=김용욱 기자.

이효성 방통위는 2008년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검토 이후 사실상 최초로 제도 시행을 추진했고, 방송 공정성·신뢰도 하락 책임을 공영방송 이사들에게 묻고 공영방송 리더십을 교체했다. 방송사 비정규직과 외주제작 불공정 관행을 개선한 점도 인정 받는다. 이 위원장에 대한 지상파 평가는 박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원장은 지난 6월까지도 국회에서 “중간광고라도 빨리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위원장이 밝힌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성공을 위해 보탬이 되고자”라는 사의 표명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적다. 앞서 언급한 지상파 고위 임원은 “이 위원장은 중간광고에 매체 간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입장 때문에 청와대와 갈등이 불거져 그만둔 것인지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당분간 종편 특혜 중심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정부의 신호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이 위원장이 청와대 인사를 설득하는 데 얼마나 노력했는지 회의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도 이 위원장 사의 표명 뒤 노보에서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에 청와대 측이 부정적 의견을 냈다는 말이 있다. 중간광고를 지상파 길들이기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의혹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후임 인선도 주목된다. 80년 해직기자 출신 표완수 시사IN 대표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를 역임했던 한상혁 변호사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거론되는 두 사람 모두 방송·통신 전문가라 보기 어렵다. 

이 위원장은 23일 언론에 “사퇴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보수야당이 ‘청와대 외압설’을 제기하고 방송업계도 청와대의 후임 인선 개입을 우려한다. 앞서 말한 MBC 한 PD는 “후임은 이 위원장 잔여 임기 1년을 수행하는데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긴 어렵다”며 “전문성과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권과 관계로만 선임된다면 청와대 리모콘 역할만 하다 끝날 가능성도 크다”고 예상했다. KBS 관계자는 “후임자 임기 1년 중 가장 큰 과제는 종편(TV조선·채널A) 재승인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부·여당 판단에 따라 후임자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상파 내부도 혼란스럽다. 대주주 경영 개입 논란으로 노조와 갈등하는 박정훈 SBS 사장은 지난 26일 산별교섭을 위한 지상파 4사 노사 상견례에 불참했다. 언론노조는 “방송사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할 문제가 쌓여 있는데 박 사장이 사감을 앞세워 지상파 노·사 공조와 협력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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