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은 하루 36시간씩 근무했습니다. 일주일은 7일뿐인데, 신형록 선생님은 주 110시간 일하다 숨졌습니다. 명백한 타살입니다.”

인천 가천대길병원에서 일하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고 신형록씨(31)가 설 연휴 전날인 지난 2월1일 아침 숙직실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82cm 키에 82kg 몸무게로 건장했던 그는 전날 아침 7시부터 24시간 당직을 선 뒤 이어서 12시간 근무를 앞두고 있었다.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30일 오후 인천 부평구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고 신형록씨 죽음의 산업재해 승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오후 청사에서는 신씨 사건을 두고 마지막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열렸다. 전공의들과 신씨 유가족은 “그의 죽음은 업무상 과로사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며 병원의 책임을 주장했다.

신씨는 지난 2017년 3월 전공의로 근무를 시작한 뒤 살인적 노동조건에 시달려왔다. 병원 근무기록에 따르면 신씨는 주 168시간 가운데 평균 110시간을 일했다. 신씨 유족은 “길병원은 전공의들이 1년에 2주 휴가를 빼면 비번·휴일 여부와 관계없이 매일 회진에 참석하도록 했다”고 했다. 대전협은 “실제 근로시간으로 나눠보면 신씨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했다. 전공의는 전문의 자격을 얻기 전 수련과정을 거치는 의사로, 흔히 레지던트로 불린다. 

▲고 신형록씨의 유족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30일 인천 부평구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씨 사망의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했다. 사진=행동하는간호사회
▲고 신형록씨의 유족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30일 인천 부평구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씨 사망의 산업재해 인정을 촉구했다. 사진=행동하는간호사회

신씨가 일한 노동환경은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 위반이다. 현행 전공의법은 전공의가 한 달 평균 기준 1주일에 80시간까지, 연속으로는 최대 36시간 근무하도록 했다. 또 병원이 16시간 이상 연속 수련한 전공의에겐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했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지난 2월 현지 조사한 결과 길병원은 △최대 주 88시간 수련 △연속 최대 40시간 수련 △연속수련 사이 최소 10시간 휴식 △주1회 휴일 부여 등 전공의법이 명시한 조항을 모두 위반했다.

이들은 길병원의 노동환경이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던 신씨를 숨지게 했다고 강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앞서 4월 내놓은 부검감정서에서 신씨의 사인이 “해부학적으로 불명”이라고 밝혔다. 최원영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는 “신씨 감정서엔 ‘특기할 점이 없다’는 표현이 반복된다”며 “건장하고 평범한 몸을 가진 젊은이였던 그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전공의였다는 사실뿐”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의 과로사(뇌심혈관 질병)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은 근로시간이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질병의 업무관련성을 인정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가천대길병원 측의 주장을 반박하며 내놓은 신형록씨의 실제 근무시간 비교표. 자료=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가천대길병원 측 주장을 반박하며 내놓은 신형록씨의 실제 근무시간 비교표. 자료=대한전공의협의회

이날 대전협과 유가족은 길병원이 줄곧 신씨의 죽음을 축소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신씨가 숨지고 일주일 뒤 부검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에 신씨 죽음을 알리고 ‘부검결과 돌연사로 추정되며, 장례절차를 끝냈다’고 밝혀 사건이 일단락된 듯한 어조로 첫 보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길병원 측에 기사 내용을 정정하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길병원 측이 산재 신청 절차에서 근로복지공단에 유족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법 위반 소지가 없는 가짜 당직표를 제출하려 하는 등 반복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고도 주장했다.

신씨의 누나 은섭씨는 이날 “동생이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다 숨졌지만, 길병원은 공식 사과도 무엇도 하지 않았다. 전공의법 위반으로 고작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받았을 뿐”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신씨는 “건강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소아과 전공의였던 동생이 이런 일을 당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같은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끝까지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외쳤다.

대전협은 “지병이 없던 청년이 근무 중 갑자기 사망했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할 뿐 아니라, 한국 전공의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공포로 다가온다”며 “정부와 병원은 신씨 죽음처럼 슬프고 참혹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씨의 사망사건을) 과로사로 인정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다음 달 5일 신씨 죽음의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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