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선 ‘삼성 X파일’ 특종기자는 이상호 전 MBC 기자가 아닌, 이진동 전 조선일보 기자다. 삼성 X파일은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특정 대선주자와 검사들에게 불법자금을 주기로 모의한 녹음파일이다. 파일을 입수한 이는 이상호지만 이 사건을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으로 되치기 한 이는 이진동이다. 언론이 만들어낸 두 프레임 대결은 법조계로 넘어갔다. 조준웅 특검은 이건희의 차명 재산을 실명 재산으로 바꿔줬다. 황교안 당시 중앙지검 2차장이 지휘한 수사는 뇌물 검사와 삼성 죄엔 눈 감고 오로지 도청만 문제 삼는 등 기소권을 악용했다. 조선일보가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믿는 이유다.

삼성 X파일 사건에선 그나마 양쪽 프레임에 합리적 주장과 근거가 있었다. 다만 조선일보가 한쪽 프레임을 덮을 목적으로 자신들 프레임을 강조했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의도대로 당시 공론장이 조성되고 법조계가 움직였다. 그 시절 우리 사회의 수준이었다.

프레임 대결을 보다 쉽게 하려면 상대를 극단으로 몰면 된다. 이명박 정부가 여타 수입국보다 미흡한 수준의 안전조치를 한 쇠고기를 수입키로 한 결정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물론 이 분노와 비판에서 극단적 주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2008년 촛불시위가 ‘괴담에 선동’됐다는 프레임을 세웠다. 정치권도 그 프레임대로 대통령은 ‘배후를 찾아내라’고 지시하고 경찰은 과잉 진압에 나섰다. 그 반동으로 시위자들 언어는 더 격해졌다.

국민 건강을 팔아넘긴 졸속·굴욕 협상이란 비판과 배후에서 기획한 괴담이 빚은 선동 시위라는 비난이 맞붙을 땐, 당시 사건에 어떤 시사점이 있고,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등 합리적 의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쇠고기 협상은 분명 정부 실책이긴 했으나 아마 정부 당국자도 국민 건강을 팔아넘길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진 않았을 것이다. 실체적 진실은 양극단 프레임 사이에 있기 마련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정부에 반대하면 빨갱이’ 프레임이 실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 프레임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경청할 합리적 의견을 사장시켰다. 그 결과 한국의 ‘이른바 보수’라고 불리는 언론은 정체성은 ‘상대를 극단으로 모는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 중요한 문제제기를 ‘탄압하거나 물타기’해왔다.

이전처럼 보수 언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으나 관성은 여전하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취해진 7월1일부터 한 주간 이들 매체에 실린 기사와 사설들은 온통 문재인 정부 비판이었다. 조선일보의 7월5일자 사설 “‘북한’ 빼곤 하는 일도, 되는 일도 없는 대한민국 국정”이 이 언론 프레임을 대변한다. 어떤 사안이 생겨도 ‘답정너’ 식으로 정부만 비판하는 이들 언론의 프레임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고 과거처럼 영향력도 없다. 그러나 ‘친일’이란 프레임으로 역공을 받았을 때 이들 매체는 약간의 유연성을 보였다. ‘지일파’ 학자들에게 글을 받아내 공론장에 공급했다. 조선일보 7월29일자 사설 “日,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지 말라”는 경향신문 25일자 사설 “영토 도발·백색국가 제외, 일본 ‘루비콘강’ 건너지 말라”와 차이 없는 시각을 보였다.

이때 반대편에서 ‘상대를 극단으로 모는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 분명 일본의 식민 지배는 불법이고 부당했고 지배 과정에 엄청난 국가 폭력이 수반됐다.

1965년 한일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정부가 일본에 청구권을 소멸시키고 비가역적 합의를 한 과오가 있고, 일본은 한국 정부 과오에 기대어 피해자들에게 무책임하고 무도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와 복잡한 동북아 정세가 합쳐지면 이 문제는 의기로만 해결하기 어렵다.

▲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들이 7월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유니클로 제품 배송 거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유니클로 스티커가 붙은 택배 상자에 배송거부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홈페이지
▲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들이 7월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유니클로 제품 배송 거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유니클로 스티커가 붙은 택배 상자에 배송거부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홈페이지

이런 상황에 꼭 들어야 할 의견이 ‘일본을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친일 프레임이 과도해지면 합리적 의견이 사장될 우려가 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비방·매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일지 몰라도, 무도하다”고 적었다. 여기까진 합리적 의견이지만 더 나가 ‘일본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면 친일파’라는 수준까진 가지 않길 바란다. 그들이 저급한 수준으로 간다고, 반대편도 저급해선 안 된다.

물론 이른바 보수언론은 아직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25일 “‘대법판결 비판하면 친일파라니…’ 서울대 동료 교수들도 조국 비판”이란 기사에서 마치 서울대 동료 교수가 대법원 판결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결국 조국 전 수석을 향해 “교수직함 붙이지 마라”, “인사 검증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무슨 법무장관” 등 비난 여론을 담았다.

서로를 극단으로 모는 상황에서 비슷한 수준의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어렵기에 내 조언이 공허하단 생각도 들지만, 지혜로운 대응책을 찾으려면 ‘극단의 프레임’이란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우선 나 개인이라도 ‘서로를 극단으로 모는 프레임’에 힘껏 반대하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