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SBS 사장이 노조에 ‘민영방송 흔들기’ 중단을 촉구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박 사장은 26일 긴급담화를 통해 “회사는 그동안 엄중한 경영 위기에 대처하느라 노조가 대주주와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든 외부로 나가 SBS를 흔들어대든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노조 투쟁이 도를 넘어 우리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우려했다.

전국언론노조와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본부장 윤창현)는 지난 5월 일감 몰아주기로 부당한 사익을 취했다며 SBS 미디어그룹 지배 주주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과 박정훈 SBS 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윤 회장이 SBS를 통해 사익 추구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이 지난 3월 태영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SBS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반영된 고발이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소유 경영 분리’를 요구하며 회사와 대주주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박 사장은 “누군가 대주주를 협박해 주주권을 강제로 빼앗지 않는 한, 노조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 대주주를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며 “대주주 교체가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회사는 경쟁력을 잃고 좌초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분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비롯되는 피해를 고스란히 젊은 사원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라고 밝혔다.

이어 “민영방송 대주주 교체는 정부 승인 사안”이라며 “현 대주주 의사와 별개로 정부 결단이 필요하다. SBS 대주주 교체가 화두로 떠오르면 정치권 정쟁 최대 소재가 되면서 큰 파문이 일 것이다. 인수자를 구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 박정훈 SBS 대표이사 사장. 사진=SBS.
▲ 박정훈 SBS 대표이사 사장. 사진=SBS.

박 사장은 “방송사에서 ‘소유 경영 분리’ 핵심은 ‘대주주로부터의 방송 독립’”이라고 강조한 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방송과 편성권 독립,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방송독립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어느 방송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장과 편성·보도·시사교양본부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했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본부장 책임제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노조 관심은 ‘방송독립’보다는 경영권·인사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대주주는 법에 따라 이사 임면권을 갖고 있고, 임명된 이사가 이사회를 통해 회사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시장 민주주의 기본 원리다. 이를 부정하면 민영방송 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 사장은 “윤창현 위원장이 검찰 고발과 재허가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세 번째 연임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지만 회사는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대응할 것이다. 시시비비는 법을 통해 가리면 되는 것이고, 고발은 어떠한 무기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BS 측은 “노조의 극한 투쟁에 차분하게 대응했던 사측이 긴급 담화문까지 낸 것은 최근 노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며 “윤창현 SBS 노조위원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대주주 반대 운동을 내년 지상파 재허가 국면까지 끌고 가면서 연계 투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고 부연했다. 아래는 박 사장의 긴급 담화 전문.

사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

상반기가 지나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방송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사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전략기획실과 경영본부, 편성실이 참여하는 ‘2030 미래 전략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실무부서 중심으로 준비해온 미래 전략을 통합하고 회사의 비전을 확립하는 자리였습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지, 최선을 다해 가을까지 전략을 가다듬을 예정입니다.

방송사 경영위기 심화…노조 “재허가 염두에 두고 투쟁”

공시 전이라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으나 방송사들의 경영실적이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들의 성장으로 광고는 급감하고 시청률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각종 차별 규제가 지상파의 동맥을 막고 있는 사이 시청자와 광고주는 디지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힘을 모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겨낼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에게는 지금 또 하나의 위기가 겹쳐 있습니다. 내부로부터의 위기입니다. 회사는 그동안 엄중한 경영위기에 대처하느라 노조가 대주주와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든, 외부로 나가 SBS를 흔들어대든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노조의 투쟁이 도를 넘어 우리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원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윤창현 노조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지상파 방송 재허가 국면까지 염두에 두고 끈질긴 싸움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외부에서 SBS의 재허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전개하고 있는 대주주 교체 투쟁을 재허가와 연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재허가를 받아야 방송사가 존속할 수 있는데, 노조위원장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습니다.

‘재허가 반대, 대주주 교체’…누구를 위한 투쟁인가?

극한투쟁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노조위원장이 여러 차례 언급한 대주주 교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어떤 식으로 대주주 교체가 가능한 지, 무슨 절차가 필요하며 사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조사해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누군가 대주주를 협박해 주주권을 강제로 빼앗지 않는 한, 노조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 대주주를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설사 대주주 교체가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회사는 경쟁력을 잃고 좌초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분은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비롯되는 피해를 고스란히 젊은 사원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습니다.

민영방송의 대주주 교체는 정부 승인 사안입니다. 현 대주주의 의사와는 별개로, 정부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SBS 대주주 교체가 화두로 떠오르면 정치권 정쟁의 최대 소재가 되면서 큰 파문이 일 것입니다. 인수자를 구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워 보입니다. 갈수록 사업성이 악화하고, 극한 노사분규를 겪은 회사를 누가 인수할 지 알 길이 없습니다. 새로운 대주주를 찾는다 해도 인수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구조조정을 사원들이 감내할 수 있을지, 장밋빛 전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윤창현 위원장이 최근 언급한 재허가 연계 투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우리 조직 안에 내년 재허가가 좌절되기를 바라는, 그래서 회사 문이 닫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인사조직개편 무효” 요구…누가 노사합의를 깨고 있나?

노사는 재작년 10·13 합의를 통해 언론사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고 대주주의 이사 임면권을 존중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수직계열화에 합의했고 지금까지 차질 없이 구조개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예상치 못한 데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4월 1일 인사조직개편에 노조가 극렬히 반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본사와 콘텐츠허브의 이사회 구성을 문제 삼았지만 노조 출신 경영위원에 대한 보직변경이 주된 반발 이유로 보입니다. 조직개편 무효와 해당 경영위원의 원상복귀가 포함된 4대 요구사항을 지금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조는 대주주가 소유경영분리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합니다. 이사회 구성에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소유경영분리에 대한 노사 간 관점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사원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유경영분리 핵심은 ‘방송독립’…인사·경영 개입 아냐

방송사에 있어서 ‘소유경영분리’의 핵심은 ‘대주주로부터의 방송독립’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방송과 편성권의 독립,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방송독립은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어느 방송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장과 편성, 보도, 시사교양본부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도입하였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본부장 책임제를 시행했습니다.

특히 보도와 시사 부문은 거의 완벽한 공정방송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대주주와 경영진은 일체 간섭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공정성을 해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부 내 자율적 의사결정을 최우선으로 존중해 왔습니다. 외압은 사장과 본부장, 간부들이 앞장서 막았고, 기자와 PD들은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의 관심은 ‘방송독립’보다는 경영권·인사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대주주는 이사회 구성에서 손을 떼고 경영진은 이미 시행한 인사조직개편을 되돌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대주주는 법에 따라 이사 임면권을 갖고 있고, 임명된 이사가 이사회를 통해 회사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시장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이를 부정하면 민영방송 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방송독립’이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소유경영분리 요구가 아니라 회사의 인사권과 경영에 노조가 개입하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윤창현 위원장이 검찰 고발과 재허가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세 번째 연임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사장 후보자가 누가 되든, 대주주가 지명한 사람을 낙마시키기 위해 가을에 극한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지만 회사는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시시비비는 법을 통해 가리면 되는 것이고, 고발은 어떠한 무기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함께 만든 SBS 30년…흔들림 없는 미래를 위해

내년이면 역사적인 창사 30주년을 맞이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30년을 기업 영속의 기준으로 삼기에 의미를 각별하게 새깁니다.

여의도동 10-2번지에 둥지를 틀고 가슴 졸이며 첫 전파를 쏘아 올렸던 순간, 대한민국 최초로 평양에서 8뉴스를 전할 때는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모래시계’를 주춧돌로 드라마 왕국을 세웠고, 그것이 알고 싶다, 런닝맨, 미우새, 컬투쇼 등 최강 프로그램으로 쌓은 아성은 난공불락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준 스포츠 중계의 우월성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후발 주자로서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있었던 아쉬운 일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조합도 이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래로 가는 발걸음에 동참해 주기 바랍니다. 회사는 그동안 인내심을 갖고 노사 대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습니다. 이제 노조가 답할 차례입니다.

사원 여러분, 창사 30년을 눈앞에 두고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데 대해 사장으로서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혼란을 겪으면서 얼마 전 종영한 ‘녹두꽃’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나라가 망할 때는 반드시 안에서 먼저 망하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 키워낸 SBS에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습니다.

회사의 운명은 온전히 우리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경영진은 현명한 여러분의 판단을 존중하고 받들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 7월 26일

SBS 대표이사 사장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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