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을 DNA 대조기법으로 해결했다.” 2012년 경찰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첨단수사기법’을 홍보했다. 폭력사건으로 구석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A씨의 DNA가 과거 발생한 성폭행 미수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일치한다며 경찰은 A씨를 구속했다. 그러나 A씨가 근처에서 피를 흘린 건 맞지만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죄 없는 사람을 잡아 가둔 것이다.

2012년 전남 해남의 한 마을에서 고등학생이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반경 8km 안에 거주하는 65세 미만 남성 100여명의 DNA를 채취했다. 일부 주민은 “피의자로 오해받을 수 있어 억지로 채취에 응했다”고 밝혀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2011년 경찰은 쌍용자동차 파업 참여 노동자 35명의 DNA를 채취하려 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흉악범이 아닌데 DNA 채취가 부당하다며 반발했지만 검찰은 ‘퇴거불응’ ‘폭력행위’ 피의자는 채취 대상이라고 했다. 금속노조는 “노동조합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8월30일 DNA신원확인정보법(이하 DNA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DNA 정보는 범죄수사에 도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전락시킬 수도 있고, 과도한 채취로 인권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지원을 받아 DNA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펴냈다.

▲ 쌍용자동차 사태 당시 모습.  ⓒ연합뉴스
▲ 쌍용자동차 사태 당시 모습. ⓒ연합뉴스

 

DNA법은 살인, 강간, 방화 등 강력범죄가 잇따른 상황에서 DNA 감식시료를 채취해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언제든지 DNA를 검색해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도입됐다. DNA는 혈액, 타액, 모발 등에서 채취하며 개인의 동의를 받거나 영장을 발부 받는 절차를 거친다.

연구팀은 DNA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DNA에는 단순히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 뿐 아니라 개인의 병력, 장래 발병가능성, 가족, 인종 정보 등이 담긴다. 이 같은 방대한 자료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국가가 악용하거나 유출될 경우 수사 외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DNA 채취가 손 쉬운 점도 문제다. 수사기관은 영장을 발부 받지 않아도 개인의 동의가 있으면 DNA를 채취할 수 있다. 실제 영장에 의한 채취는 전체 건수의 0.5%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수사기관이 대상자의 동의를 얻으면 DNA 감식시료 채취에 영장이 필요 없는 점을 악용해 사실상 동의를 강요하거나, 구체적인 혐의 여부와 무관하게 범행현장 인근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취를 하는 등의 악용사례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연구팀에 따르면 이 외에도 △청소년, 재범 위험이 낮은 범죄자, 집회 시위 및 파업 참여 노동자 등에도 과도하게 채취하는 문제 △법원이 재범가능성을 판단하거나 당사자 의견청취를 하는 절차가 없는 문제 △데이터베이스 보관 기관이 명시되지 않아 영구 보관이 가능한 문제 △데이터베이스 관리 및 운영주체가 경찰, 검찰로 이원화된 문제 등이 있다.

연구팀은 향후 법 개정에 포함돼야 할 내용을 제안했다. △인권존중 명시 선언을 담고 △집회 및 시위, 노동쟁의 문제에 악용되지 않도록 조건을 강화하고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한 경우, 미성년자를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상자의 재범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채취하도록 하고 △동의 규정을 삭제해 영장발부를 조건으로 두고 △ 기록 삭제사유가 발생하면 삭제할 의무를 부과하거나 삭제 기간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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