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 아침, 일본에서 발생한 화재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교토에 있는 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스튜디오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이었다. 모두들 처음에는 그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식은 점차 심각해졌다. 일본 방송국이 취재한 영상에 담긴 불길의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거셌다. 게다가 화재의 요인은 의도적으로 스튜디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방화라는 말까지 들려왔다. 얼마 후에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도착했다. 최종적으로 화재 당시 스튜디오에 상주하던 74명 중 34명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방화 범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일본은 물론 2000년대 이후 세계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소중한 장소였다. 그곳은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시리즈, ‘케이온’, ‘Free!’,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교토 애니메이션이었다. 새로운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일을 하던 중 하루 아침에 화마에 휘말려 오랫동안 쌓아온 사업 기반은 물론 귀중한 제작 인력까지 모두 떠나보내게 되었다.

교토 애니메이션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무척이나 독특한 위치에 놓인 곳이었다. 그저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이라면 교토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무수한 제작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들의 작업 환경이다. 애니메이션은 겉보기와 다르게 일반적인 영화와 비슷하거나 훨씬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의 모습을 비롯해 배경 하나하나를 손수 그리는 것은 물론 움직임까지도 일일이 그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작업 환경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고, 3D 기법이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에도 도입되며 이전보다는 작업에 소모되는 인력이나 시간이 줄었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 산업은 예로부터 ‘인력 집약적인’ 사업이었다. 일찌감치 한국이 1960년대부터 일본, 미국 등의 애니메이션 산업의 하청을 받았던 것도 최대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국제적인 분업의 일환이었다.

▲교토 애니메이션 사의 '케이온'.
▲교토 애니메이션 '케이온'.
▲ 교토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
▲ 교토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꾸준히 폭을 넓혀 나갔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협회단체인 ‘일본동화협회’에 의하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총매출은 2016년 기준으로 2조엔(약 20조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시장이 아무리 커져도 그 결과물은 쉽게 애니메이터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일본 문화청과 애니메이션계 단체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애니메이터 산업 노동 환경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18년 기준으로 전체 평균 연수입은 441만엔으로 다른 직종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지만, 20-24세에 한정하여 조사하는 순간 평균 연수입은 155만엔에 불과했다. 이는 일본에 거주하는 같은 연령대의 평균 연수입과 비교하면 100만엔이나 낮은 금액이었으며, 최저임금에도 한참 미달하는 금액이다.

게다가 2017년 일본 시민단체 ‘젊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응원하는 모임’이 시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조사 대상 애니메이터 153명 중 68.6%가 근로계약 대신 용역 계약 형태로 일하고 있었으며 45.94%의 애니메이터는 기본급 없이 완전 성과급제로 급여를 받고 있었다. 월 노동 시간은 88.2%의 응답자가 200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응답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창 기반을 쌓던 1950년대부터 정착된 저임금-고강도 노동은 2010년대에도 크게 바뀌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교토 애니메이션의 행보는 기존의 노동 관행을 최대한 깨고, 애니메이터들의 노동 환경을 최대한 존중하는 사업장이라는 측면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애니메이터를 외주나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대신 최대한 정직원으로 고용했다. 작업을 마무리한 실적에 따라 급여를 주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월급제를 채택해 작업량에 상관없이 고용된 애니메이터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했다. 동시에 무리한 야근 대신 정시 출퇴근제를 채택하여 애니메이터들이 과로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제작사부터가 일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교토 애니메이션은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든 2010년대 이후로는 최대한 다작을 지양하고,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일정을 잡을 수 있는 극장판 작업을 우선적으로 펼쳐나갔다. 동시에 방송사나 다른 원작 판권사의 간섭을 피하고 안정적으로 제작비와 수익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자체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기획을 확대하였다. 2018년에 제작, 방영된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 역시 교토 애니메이션이 자체적으로 넷플릭스와 VOD 독점 서비스 계약을 맺고 투자를 받은 것도 그 일환이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교토 애니메이션은 중소 애니메이션 제작사로서는 자생적인 활동과 원활한 인력 재생산이 가능한 업체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 교토 애니메이션 화재 관련 KBS 보도화면.
▲ 교토 애니메이션 화재 관련 KBS 보도화면.

왜 이러한 소중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한순간에 화마에 휩싸이고 말았을까. 그 이유는 무척이나 허무하게도 한 40대 중년 남성의 망상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활동한 이력은 한 번도 없었고, 소설 공모전에도 출품한 적이 없던 사람이지만 자신이 만든 소설을 교토 애니메이션이 표절했다는 확신을 가지며 분노한 끝에 대형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방화범이 탄생한 계기는 단순하지 않다. NHK 등이 보도한 내용 등에 의하면 피의자는 다양한 사유로 인해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방치되어 있던 존재였다. 피의자는 이미 2012년 편의점을 습격해 강도 행위를 한 죄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복역 중 정신 질환이 있음이 드러나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리 대상에 놓여 있었다.

피의자는 강도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에도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출소한 뒤에는 쭉 무직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지자체로부터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되어 생계를 지원받거나, 방문 상담을 꾸준히 받아왔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해 대형 스피커로 소리를 크게 틀어놓아 주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해 불편을 호소했지만 그는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집 사람이 층간소음을 낸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아 폭언을 행사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는 교토 애니메이션이 자신이 쓴 소설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표절했다는 심증만으로 제작사 구성원 모두에게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미쳤다.

무엇이 피의자로 하여금 왜곡된 감정을 지니며 잘못된 방식으로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었나. 단순히 이를 피의자만의 책임으로 몰 수 있는 것일까? 피의자가 막중한 범죄를 저지른 것과는 별개로 일본 사회가 소위 ‘정상’으로 분류되지 않은 외부의 존재를 어떻게 다뤄왔나를 짚지 않으면 비슷한 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다시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동시에 피의자가 지속적으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분노를 더욱 키워왔던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하위문화 커뮤니티가 서로가 지니고 있는 정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산하는 대신 왜곡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상황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바다 건너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참극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어떤 의미로 한국은 일본보다 사회 복지 체계가 미비하며,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사회 외부로 밀려난 존재에 대한 접근이나 정책 또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동시에 근래 ‘루리웹’이나 ‘디씨인사이드’, ‘인벤’ 등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 여성 혐오, 소수자 차별적인 모습처럼 한국의 하위문화 커뮤니티 역시 일본과 큰 차이 없이 혐오와 차별적인 감정을 축적시키고 있다. 사회의 흐름이 일본과 진배없이 흐르는 상황에서, 대체 누가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이 좀 더 사회 복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하위문화 향유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다보지 않는다면 교토 애니메이션 문제는 결코 일본만의 사건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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