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위험성이 담긴 법안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인권위는 전원위원회 결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정부안)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해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가명처리 절차를 거친 개인정보를 본인 동이 없이 통계작성·과학적 연구·공익적 기록보존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가명처리는 다른 정보를 결합하지 않는 이상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정보를 말한다. 달리 말하면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개인정보가 드러날 수 있다. 

인권위는 가명처리 목적 가운데 ‘과학적 연구’의 범위가 폭 넓고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의 ‘과학적 연구’는 과학적 방법이 들어간 연구를 뜻해 사실상 기업이 영리 연구로 활용할 우려가 있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11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11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또한 인권위는 가명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할 때는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라는 요건을 추가하게 했다. 

앞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같은 요구를 해왔으나 산업계와 경제지들은 한국 개인정보 규제가 까다로워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인권위는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처리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선진국보다 정보주체의 보호와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그 이유로 △한국은 해외에서는 드문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있어 전 국민의 식별이 매우 쉽고 △성명,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가 이미 대량으로 유출돼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권위는 인재근 의원 법안 내용 가운데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분산된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통합하는 내용에 동의하면서도 보완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국제적 기준에 비춰 볼 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조사 및 처분 권한이 미흡한 점 등 독립성과 업무 권한, 구성의 다원성 등에 일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재근 의원 법안은 부처 ‘일원화’를 강조하는데 개인정보보호위는 이 뿐 아니라 조사권을 가진 독립기구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인권위가 다른 기관에 구체적으로 권고하기 힘든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방향성 제시는 의미가 있다”며 “‘과학적 연구’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연구’라는 기준이기에 사실상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연구로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병일 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원회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를 정부여당이 반영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인재근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발의만 돼 있고 논의되지 않고 있다. 법안소위에서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인권위 권고 내용도 함께 논의가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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