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민정수석에 내정된 김조원(62·행정고시 22회)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과거 언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자칫 언론계에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최초 언론사 과징금 부과 취소 경위를 밝히는 핵심 실무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부자 거래 등을 통한 부당지원행위가 있었다며 15개 언론사에 대해 모두 18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많게는 한 언론사에 60억 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 처분에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보도를 쏟아냈다. 반면 시민사회는 언론도 기업인만큼 특혜가 있을 수 없다며 언론사 내부의 불법과 탈법을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지만 스스로 자신의 결정을 뒤엎었다. 2002년 12월 공정위는 ‘언론사의 공익성과 경영여건’ 등을 이유로 과징금 부과 결정을 취소했다. 시민사회 반발은 컸다. 김대중 정권 말 언론사 봐주기라는 비난이 거셌고, 부과 취소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이 높았다.

정권이 바뀌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월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취소 결정 경위에 대한 감사를 지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사 과징금 처분이 별다른 이유 없이 취소된 것에 대해 분노했다는 후문까지 들렸다.

언론사 과징금 문제를 매듭지으면 노무현 정부 초기 언론 개혁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 개혁에 관심이 컸던 터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이 지시한 감사 결과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별 지시를 받은 이가 바로 김조원 신임 민정수석 내정자였다. 당시 김조원 내정자는 감사원 제1국 제1과 과장이었다. 당시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감사반장 ‘김조원 과장’을 정점으로 17명으로 구성된 감사반을 공정위에 투입, 특별감사활동을 벌였다.

공정위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지시에 떨고 있었다. 서울경제는 “공정위는 이에 따라 감사요원의 학연과 지연 등을 총동원, 불리한 감사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집중하는 역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공정 내부에서는 감사반장인 김 과장의 출신지와 학교가 경남 진주, 영남대라는 점에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조원 신임 민정수석이 노무현 정권 초기 언론 개혁의 선봉에 서 있었던 셈이다. 언론계 역시 감사 결과에 따라 후폭풍이 예상되면서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감사 결과는 언론 개혁에 닿지 못했다. 2013년 5월 감사원은 “공정위에서 언론사의 과징금을 면제처리하기 위해 청원서 제출을 유도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정당한 업무처리라고 볼 수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과징금 부과를 직권으로 취소하는 과정에서 언론사로부터 청원서를 받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두 차례에 걸친 언론사 과징금 납부유예 처리 과정에서 언론사들의 경영상황자료를 이미 제출받아 따로 청원서를 받을 새로운 경영상황이 없었다”고 밝혔다.

▲ 김조원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
▲ 김조원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

과징금 부과 면제 사유와 처리 방향을 이미 정해놓고 심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언론사별 경영분석 자료 없이 과징금을 직권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또한 과징금 납부 능력 조사 항목으로 자본잠식 정도, 최근 3년 간 당기순이익 및 영업현금 상황 등을 따져 과징금 부과를 취소했다고 했지만 15개 언론사 중 조선일보와 방송 3사는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역시 2년간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왔다.

감사원은 “공정위가 언론사 과징금을 직권취소할 만한 사정변경이나 중대한 공익상의 요구가 없었는데도 언론사의 경영악화와 공익상의 이유를 들어 직권 취소한 것은 부적정한 업무처리”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공정위의 취소 명령을 재번복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히면서 언론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감사원은 “과징금 취소처분을 다시 취소하려면 그만한 사유가 있어야하고 취소에 따른 국가 공신력 실추도 우려된다”며 “취소된 과징금을 다시 부과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과징금 처분 취소 결정이 잘못됐다고 해놓고 바로잡지는 못한 것이다. 그렇게 감사원의 ‘이상한’ 결론에 따라 최초 언론의 불법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개혁이 어그러졌다.

당시 언론은 감사원 결과에 안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지켰다. 한겨레 신문이 사설에서 “과징금 취소과정이 잘못됐으면 당연히 취소 행위 자체를 무효로 하는 게 옳다”며 “감사원은 국가공신력 실추 등을 들어 취소 결정을 번복하는 게 불가하다고 하지만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못을 제대로 잡아주는 게 정부의 공신력을 진정으로 높이는 길 아니겠는가”라고 비판했을 뿐이었다.

김창룡 교수(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는 “당시 제대로 된 처분을 내렸더라면 불법과 탈법의 예외와 특혜를 받았던 언론계를 개혁할 수 있었다고 본다”면서 “오랜 기간 언론사의 탈법이 지속되면서 법과 질서가 무너져 내렸다. 언론 자유도는 높아져도 언론 신뢰도는 계속 떨어지는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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