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가 미투운동, 버닝썬 사태 등을 통해 사이버 성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불법 촬영 범죄’를 다루는 언론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불법 촬영 범죄를 다루는 언론이 많아졌다고 해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기사들만 보도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 촬영 근절을 화두에 올리고 처벌 규정 강화에 목소리를 내는 언론만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피해자가 받을 2차 가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보도하는 언론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불법 촬영 범죄가 수면 위로 올라올수록 이런 보도 행태는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가해자 목소리 싣는 보도에 2차 가해까지

불법 촬영 범죄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태도에는 문제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중 서울경제는 <“선수 근육질 몸매에 흥분” ‘몰카 일본인’ 혐의 인정>(7월19일, 김선덕 기자)를 지면에 보도했습니다. 보도에는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불법 촬영을 하다 붙잡힌 일본인 피의자의 진술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수구·다이빙 선수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하다 붙잡힌 일본인 피의자가 “근육질 몸매에 성적 흥분을 느꼈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중략) A씨는 경찰에서 카메라를 잘못 조작했다고 둘러댔으나 세 차례 조사가 이어지자 “근육질 여자 선수를 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꼈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서울경제만 이 기사를 쓴 것은 아닙니다. 연합뉴스 <“근육질 몸매에 흥분” 광주수영대회 일본인 ‘몰카범’ 혐의 인정>(7월18일)를 받아 쓴 것으로 보이는 경향신문 온라인 기사 <“근육질 여자 선수 보면 흥분”… 수영대회 불법 촬영 일본인 혐의 인정>(7월18일, 강현석 기자)과 한겨레 온라인 기사 <불법 동영상 촬영 일본인… “근육질 여성 선수만 보면…”>(7월18일, 정대하 기자)도 모두 같은 내용을 실었습니다.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이 범죄 피의자의 진술을 받아쓸 때는 피해자를 배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발언이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고심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예컨대,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성폭력을 저지른 이유를 ‘절제할 수 없는 성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성욕을 부추긴 것은 피해자의 외모나 옷차림, 행실이라는 파렴치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이 이와 같은 몰상식하며 뻔뻔한 피의자의 발언을 받아쓰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공포와 상처를 주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보는 모든 언론 소비자에게 심한 불쾌감을 줍니다. 무엇보다 이런 보도는 은연중에 성폭력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식의 인식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의 피의자 진술 보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불법 촬영에 자꾸 ‘몰카’라고 이름 붙이는 언론들

불법 촬영 범죄가 계속해서 고발되면서 ‘몰카’라는 단어가 불법 촬영 범죄를 가볍게 여기게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법제처는 <불법촬영은 중대한 범죄입니다!>에서 불법 촬영과 몰카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9월 2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발표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에서 정부는 기존 ‘몰카’로 불리던 촬영 범죄 표현을 ‘불법 촬영’으로 변경했습니다. 그 이유는 ‘몰카’라는 용어가 유희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범죄의 심각성을 느끼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들은 아직 ‘몰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 1월1일부터 7월22일까지 신문별 제목에 ‘몰카’ 혹은 ‘불법 촬영’ 단어 사용한 기사 개수 (인터뷰 기사 제외, 중복 제외).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 1월1일부터 7월22일까지 신문별 제목에 ‘몰카’ 혹은 ‘불법 촬영’ 단어 사용한 기사 개수 (인터뷰 기사 제외, 중복 제외).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기사 제목에서 ‘몰카’ 혹은 ‘불법 촬영’ 단어가 사용된 경우를 세어봤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몰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대신 ‘불법 촬영’을 각각 20번, 6번 사용했습니다. 동아일보는 16번, 조선일보는 11번, 한국경제는 10번 ‘몰카’를 사용했으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경제는 제목에서 불법 촬영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도 그림도 부적절한 조선일보

범죄행위 모습을 삽화로 삽입한 언론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몰카, 지하철보다 남친 집에서 더 찍힙니다>(7월22일, 김윤주 기자)에서 샤워하는 여성의 뒷모습을 찍는 남성의 모습을 삽화로 그렸습니다.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부적절함은 물론이고, 범죄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빌미까지 제공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삽화는 엄연한 범죄 행각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만화처럼 가볍게 그려져 지면에 게재됐습니다.

▲ 7월22일 조선일보 불법 촬영 범죄 기사에 삽입된 삽화
▲ 7월22일 조선일보 불법 촬영 범죄 기사에 삽입된 삽화

 

기사 내용 역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법 촬영 범죄 장소를 다루는 기사였는데, 옛날처럼 역이나 대합실에서 범죄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주로 거주지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범죄가 잦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범죄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기사를 읽다 보니 기사의 의도가 헷갈립니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기사의 제목입니다. 기사는 ‘남친 집에서 더 찍힙니다’라며 여성 피해자에게 당부하는 느낌을 줬습니다. 요즘 주거지 불법 촬영이 많아졌으니 남친 집에서 몰래 찍히지 않게 조심하라는 느낌입니다. 기사 내용도 의아합니다.

실제 불법 촬영 범죄 5건 중 1건은 지인(知人) 관계에서 발생했다. 김광수 국회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붙잡힌 불법 촬영 가해자의 19%가 피해자와 아는 사이였다. 이 중 44%는 애인, 14%는 친구였다. 2016년부터 면식범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거주지 몰카 증가’는 피해자들의 경각심이 커진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기사는 이렇게 ‘거주지 몰카’가 증가한 이유를 단순 서술하기에 그칩니다. 그래서 이런 범죄가 근절되어야 한다거나, 관련 법안이 생겨야 한다거나, 피해가 심각하다는 고발성 내용이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의아한 제목에 그림까지 그려놓고, 기사는 이렇게 단순 정보성 글로 마무리됐습니다. 만일 조선일보가 불법 촬영 범죄 근절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면 제목과 내용에서 이 범죄에 대한 심각성과 처벌 절차 등을 함께 명시해주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1월1일~7월22일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 문의 : 공시형 활동가 (02) 392-0181 / 정리 : 주영은 인턴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