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소재 3대품목 수출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수출간소화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 절차를 강행하는 진짜 배경에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내걸었다가 이를 비판하니 다시 말을 바꿨다. 애초 우리 정부는 아베가 참의원 선거에 강제징용과 수출보복의 연계를 예상했으나 아베는 선거 승리 이상의 의도로 한국문제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아베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다각도로 분석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지난 23~24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이 수출규제하면서 그 사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우리측 수석대표(참석자)로 나선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24일 이사회 자리에서 일측 조치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한 한일간 갈등에서 기인한 조치였다면서 정치 목적에서 세계 무역을 교란하는 행위는 WTO 기반의 다자무역질서에 심대한 타격을 일으킬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자유무역체제의 가장 큰 수혜국이자 G20 의장국으로서 자유·공정무역을 강조하였던 일본이 불과 한 달 만에 정반대 조치를 한국만 특정해 취한 행위도 항의했다.

그러나 일본측 발언자인 이하라 준이치 WTO 대사는 자국 조치가 강제징용 사안과 무관하며, 이 조치가 안보상 이유의 수출관리 행위이므로 WTO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우리측 대표는 일측이 구체적 사유의 적시 없이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고, 계속된 협의 요청에도 비협조로 일관해 온 점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 절차도 진행중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3만건의 의견이 들어와 이 가운데 90%가 한국 제외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정우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가 이날 한국을 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일본 정부의 법령 개정안에 공식 의견서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등에 따르면,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를 배제하려는 이유를 두고 일본은 지난 22일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 측 수출관리 제도의 미비와 양국 수출관리 당국 간 대화 중단을 들었다. 제도 미비와 관련해 한국의 전략물자 통제제도 중 ‘캐치올’ 규제와 관련해 대량살상무기(WMD)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재래식 무기는 포함돼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캐치올 제도란 전략물자 뿐 아니라 민수품도 무기로 쓰일 수 있는 품목은 개별 물품마다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또한 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배경으로 지적하는 무역관리 부분에서 발생한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썼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반박자료를 내어 “그동안 한일간 국장급 협의회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의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없다”며 “그동안 어떠한 문제 제기나 부적절한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제시 없이,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부족을 사유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정당한 근거가 없는 부당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한국 YMCA 전국연맹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과거사 부정, 경제보복에 나선 일본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한국 YMCA 전국연맹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과거사 부정, 경제보복에 나선 일본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또한 참의원 선거가 끝난 당일인 지난 22일 저녁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아사히TV에 출연해 우리 정부에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제징용을 그 배경이라고 했다가 수출통제체제라고 했다가, 다시 무역관리라고 하는 등 일본은 자신들이 조치한 이유를 계속해서 바꾼다. 그 사례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이유에 관한 미디어오늘 질의에 24일 브리핑에서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부분을 근거로 들었다가 대북 수출 규제 위반에 대한 부분으로 또 입장을 얘기했다가 다시 수출 관리로 이유를 제시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며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대상 국가로 포함시킨 이유는 한국이 4대 수출통제체제를 확실하게 이행하고 있고, 우리가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것을 이유로 들면서 화이트리스트를 배제한다거나 혹은 수출 규제한다고 하는 주장은 스스로 명분이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도 아베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본의 오락가락하는 행위가 전략적인지 실수인지 분석하고 있으나 딱 이것이라고 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일본 자신의 무역수지에 적자를 감수하고 자신들의 수출환경인데도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라고 보기 힘들다. 흑자국이 적자국에게, 그것도 자국의 수입이 아닌 수출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보복조치를 취한 경우는 드물다. 이런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얼마나 이 같은 조치를 유지할 지도 의문이다.

한편,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점이 의외로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일본의 각의가 화요일과 금요일 열리는데 내일(26일) 각의에서는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아베 총리가 휴가여서 적어도 다음주 내지 8월로 넘어갈 수 있다.

이와 함께 한일간 수출 무역보복의 주요 분기점은 오는 8월15일 광복절, 8월말~9월초 일본정부의 개각, 10월22일 새 일왕 즉위식 등을 전후로 주요 사건이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나온다.

지난 1일 이후 4주째가 돼가고 있지만 일본이 한국 수출 규제품목으로 지정한 것 가운데 아직 한 건도 통과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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