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부당노동행위로 유혈사태를 낳은 뒤 노조파괴 문제가 지속되는 유성기업이 올 들어 언론사를 상대로 ‘무더기 제소’ 전략을 편다. 노조 입장을 전달하거나 경영진에 불리한 기사에 무차별 반론보도를 청구해 언론보도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2018년~2019년 6월30일 유성기업 언론조정 신청 내역에서 유성기업은 올 상반기 언론중재위에 13곳 언론사를 상대로 37건의 기사에 반론·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지난해 청구 건수 1건과 대조적이다.

청구 대상은 사실상 ‘노조파괴’를 언급한 모든 기사다. 쟁점사안을 다룬 보도뿐 아니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연 집회나 회견, 토론회 등에서 노동자 주장을 기사화한 보도에도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조정을 신청했다. 지난해와 올해 각 1건씩을 제외하면 모두 반론 보도 청구다. 유성기업은 9년 전부터 이어져 온 노조파괴·부당노동행위가 법원에 의해 일부 확정됐고, 현재까지 사건이 진행 중인 이른바 ‘장기갈등 사업장’이다.

문제는 사측이 사실과 다른 내용의 반론과 정정보도 청구에 나선다는 점이다. 유성기업의 38개 기사 조정신청 내용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가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와 부당노동행위 관련 사실관계 부정이었다. 여기엔 부당노동행위 관련 법원 확정판결을 부정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

2012년 이후 노조파괴 없었다? 잇단 기소‧선고

유성기업 반론청구 내용의 핵심은 “2012년 이후로 부당노동행위 등을 이유로 유죄 판결이 선고되거나 확정된 바 없다”는 취지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 내연기관용 부품을 만드는 1차 하청업체로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 등에 사업장과 700여명의 노동자를 두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2011년 5월 밤샘 근무가 아닌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 이행을 촉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유성기업은 곧바로 직장폐쇄에 들어간 뒤 용역직원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진압했다. 유성기업은 그해 직장폐쇄가 끝난 직후 복귀한 노동자를 상대로 3차례에 걸쳐 27명을 해고하고 정직 69명, 견책 176명, 주의 20명이라는 대량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후 9년째 극심한 노사갈등이 이어지며 노동자들이 잇달아 쓰러졌다. 2016년 3월엔 고 한광호씨가 회사 징계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말 고 오아무개씨가 퇴사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4월엔 박문열씨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초 유성기업에 제1노조에 적대적 행위 자제와 대화 협상을 권고했지만, 사측이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은 2011년 5월에서 2012년 2월까지 발생한 노조파괴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2개월형을 선고받고 현재 출소했는데, 회사는 이를 기준으로 이후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파괴 사실이 확정된 바 없다고 주장한다.

유성기업 주장과 달리 법원은 회사의 노조원 해고를 부당노동행위이자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유성기업이 2년간 법정 싸움 끝에 해고무효 판정을 받고 복직한 노조원들을 다시 해고한 조치에 대해 무효라고 확정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말 해당 해고조치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고, 노조원은 오는 9월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유 회장은 최근 노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2016년 7월까지 이뤄진 징계조치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지난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든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지난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든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직장폐쇄 정당, 어용노조 안 만들어? 판결은 반대

유성기업은 언론사에 일관되게 “2011년 직장폐쇄는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항한 정당한 방어조치”라고 했다. 이 역시 대법원 판결과 상치된다. 대법원은 유성기업이 2011년 단행한 직장폐쇄가 위법하다고 선고했다. 영동공장의 경우 개시부터 종료시까지, 아산공장의 경우 7월12일부터 종료 때까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유성기업 직장폐쇄가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방어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 등을 갖는 공격적 직장폐쇄에 해당하여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유성기업은 ‘사측이 어용노조를 설립했다는 사실은 법원 판결로 확정된 바 없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유성기업 제2노조가 ‘자주성과 독립성을 결여했다’며 설립 무효를 선고한 판결이 잇따른다. 대법원은 2017년 유시영 회장에게 제2노조 설립과 운영에 개입하고, 1노조(금속노조)와 2노조를 차별대우하는 등 부당노동행위한 혐의로 징역형과 벌금 100만원을 확정했다. 2노조 설립무효 확인소송도 2심까지 무효란 판결을 받은 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반론권’ 명분 물리치기 어려운 언론사, 보도 위축

유성기업의 조정신청 취지가 사실관계 또는 대법원 판결과 어긋나지만 대다수 언론사는 반론 청구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첫 청구 취지가 사실과 다르더라도, 언론중재위 조정을 거치며 ‘기계적 중립’을 명분으로 회사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서다. 올 상반기 유성기업이 조정신청한 37건 중 조정이 불성립해 언론사와 소송으로 넘어간 건 3건뿐이다. 나머지는 기사를 수정하거나 반론보도했다.

유성기업이 올 들어 10건의 기사에 반론보도를 청구한 굿모닝충청 기자는 “사실상 사측 입장은 보도가 틀렸다기보다 반론보도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반론을 위한 반론’ 요구다. 유성기업은 일부 기사에 고소 뜻을 밝혀 나도 나머지 기사들까지 정식으로 소송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소송까지 가는 건 부적절하다는 중재부 의견에 적당히 청구취지를 받아들여 반론보도로 끝냈다”고 말했다.

유성기업지회 측과 취재기자들은 회사의 무차별 반론 보도청구가 기자의 업무를 방해할뿐더러 자기검열을 초래해 보도를 위축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먼저 유성기업 취재 현장을 찾는 기자가 줄었다. 도성대 금속노조 유성아산지회 지회장은 “유성기업전략의 ‘성과’를 체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련 기사가 없어졌다. 노조원들의 입이 막혔다”며 “옛날 같으면 많은 언론사가 관심 가졌을 지난 22일 상경집회도 보도매체가 1곳에 그쳤다”고 했다.

유성기업과 4건의 기사를 두고 조정 끝에 소송에 들어간 참세상 기자는 “노조가 기자회견을 열면 적어도 5개 언론사가 현장을 찾았다. 유성이 ‘언론대응’에 나선 뒤엔 통신사와 극우 매체를 포함해도 3곳 정도”라고 전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영동지회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까지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도성대 유성아산지회 지회장. 사진=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영동지회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까지 ‘9년을 넘길 수 없다, 끝내자 유성기업 노조파괴’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도성대 유성아산지회 지회장. 사진=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이 문제로 언론중재위에 갔던 한 기자는 유성기업의 반론보도 청구권 남용에 언론중재위가 나서 자중을 요청할 정도였다고 했다. 굿모닝충청 기자는 “사측이 지난 3월에 이어 5월에 재차 과거 기사를 무더기 제소하자 중재부에서 ‘지역언론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냐’고 질타했다. 심지어 사측의 반론을 받아준 기사까지 제소해, 사측 대리인이 중재부장의 지적을 받고 그 자리에서 취하한 적도 있다”고 했다.

유성지회 측 법률 대리를 맡는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유성기업의 반론청구 양상은 일반 기업들과 다르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대량 청구해, 그 면면을 보면 오히려 언론사가 언론자유 침해·업무 방해를 이유로 유성기업을 형사고소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성기업의 ‘걸고 보기’식 언론 대응은 사측이 노동자를 징계·고소한 뒤 이를 방어하는 과정 자체로 노조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닮았단 해석이 나온다. 박준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은 “유성기업은 노동자 입장을 전하는 기자 업무를 지연하거나 부담을 가중하려는 전략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측이 노조의 쟁의행위에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해 최종 판결과 무관하게 노동자가 피해를 입는 상황과 거울상”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중재 절차의 남용을 막으려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준모 위원장은 “반론보도 청구권은 언론중재법이 보장을 명시한 가치지만, 유성기업의 경우 사측이 자본력을 동원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대변하는 보도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우려된다”며 “언론중재위 중재부가 운영의 묘를 발휘함과 동시에, 법제도를 개선해 중재부가 청구권 남용을 적절히 제한할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성기업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기존 언론보도는 노조 입장에서만 사태를 보도해 균형성을 잃었다. 이를 본격 바로잡고자 언론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2012년 이후 부당노동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등 법원 판결에 어긋난 반론을 요청한다는 지적에는 “유시영 회장이 2012년 이후론 ‘형사재판’에서 유죄확정된 바 없다는 뜻”이라며 “언론사는 사실에 입각해 양측 의견을 공정 보도하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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