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해 이른바 ‘집회 원천금지 장소’를 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올해 말일인 개선입법 시한을 앞두고, 집회‧시위할 기본권을 온전히 보호하려면 예외·부분 허용에서 나아가 금지 원칙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장소, 집시법 11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였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집회·시위할 자유에 관한 기본권을 다시 새기고 이를 보장할 입법 방향을 고민했다.

헌재는 지난해 5~7월에 걸쳐 국회의사당과 국무총리 공관, 각급 법원으로부터 100m 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11조에 잇따라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집회 금지장소를 정한 법조항의 목적과 수단은 정당하나, 예외규정을 마련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장소, 집시법 11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였다.  사진=김예리 기자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장소, 집시법 11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였다. 사진=김예리 기자

집회‧시위할 자유에 관한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 가운데서도 차별점을 지닌다. 사회적 약자가 주로 필요로 하는 권리로, 집회시위 행위 자체가 기존 질서를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를 내재한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은 집회와 결사, 언론과 출판의 자유와 같은 문장에 언급하지만, 집회와 결사는 특히 ‘갖지 못한 자’들이 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언론‧출판은 출판물을 쓰고 낼 영향력을 필요로 하지만 집회‧시위는 거리에 나설 용기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중이 모여 기득권자를 불편하게 하고 평화를 깨는 물리력과 위력 과시는 시위의 근본 목적이다. 국민의 집회할 권리 보장은 국민들이 그 성가심과 눈꼴사나움, 영업과 잠자리 방해를 견딜 의무를 진다는 뜻”이라고 했다.

해외 법제도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일상의 평온이나 공공 질서를 누릴 권리보다 근본 개념으로 본다. 유럽 인권재판소는 2008년 “교통혼잡과 불쾌감, 심지어 상업활동 피해 등 집회로 인해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어느 정도의 혼란은 용인돼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집회시위 규제 기준으로 △내용을 이유 삼지 않을 것(내용중립성) △기준을 두고 엄격하게 제한된 규제만 할 것 △규제한다면 대체수단을 마련할 것을 규정했다.

이들 나라에선 집회‧시위 절대금지구역도 찾기 어렵다. 한상희 교수는 “영국은 시위대가 사전에 통지하거나 허가받지 않고도 의사당 주변에서 집회시위를 가능하도록 한다. 독일의 경우 집회 규제구역을 둬 자주 오해받지만, 실상 이들 구역은 ‘허용 원칙, 예외적 규제’를 둔 곳들이다. 여타 장소는 이 예외적 규제도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오민애 민변 변호사,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진우 집시법11조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왼쪽부터) 오민애 민변 변호사,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진우 집시법11조폐지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이같은 ‘허용 원칙’에 비추면 헌재 결정도 한계를 드러낸다. 헌재 결정은 ‘원칙적 금지’를 용인하기 때문이다. 오민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헌재 결정은 집회 금지장소를 두는 제도가 정당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각 국가기관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권한을 가진다. 이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이 인근에서 집회시위할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논리는 주객전도”라고 말했다.

국회에 발의된 법률개정안도 대부분 헌재 결정을 따라 ‘의무 방어전’ 성격에 그친다. 현재 발의된 집시법 11조 개정안은 9건이다. 이들 개정안은 △금지구역을 규정하되 그 거리를 ‘적절하게’ 줄이는 안 △헌법불합치 결정이 언급한 장소들만 11조에서 수정‧삭제하는 안 △집시법 11조 자체를 전면 폐지하는 안으로 나뉜다. 오민애 변호사는 “집회의 규모나 기관 운영에 지장을 줄 우려를 감안하도록 ‘예외적 허용’하는 법개정은 여전히 집회와 시위 권리에 전제를 단다. 집회·시위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집시법이 집회·시위할 자유를 해치는 폐해를 막으려면 단순 폐지해야 한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정진우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집시법 11조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당사자로서, 집회할 권리에 여러 제약을 두는 부분개정으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국민이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면, 그 첫출발로 집시법 11조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선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시민이 권력기관을 향해 말할 권리는 권력기관이 들을 의무를 지워야 보장된다. 이는 집회 금지구역 원칙을 없앨 때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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