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 저항한 독일인도 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은 그동안 독일에서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다. 아니, 주목하지 않았다. 

1944년 7월20일, 일명 ‘발키리 작전’으로 불린 히틀러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작전을 주도했던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그날 새벽 바로 처형됐다. 이 작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700여명이 체포되고 11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암살 작전과는 연관성이 없었음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체포된 이들도 5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수용소로 보내졌다. 

히틀러에 저항한 독일인 희생자들은 그동안 독일의 기억문화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추모는 늘 조심스러웠다. 조금이라도 크게 추모를 하려고 하면 사회적 논쟁이 일었다. ‘독일인 저항군’을 기리고 영웅시하는 일이 나치 범죄와 나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7월20일마다 열리는 추모식에는 보통 독일 국방장관과 외교장관이 참석했다.

▲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한 장면.
▲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한 장면.

올해 7월20일은 조금 달랐다. 베를린 벤들러블록(Bendlerblock)에서 열린 히틀러 암살 작전 75주년 기념식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참석했다. “그들은 남들이 침묵할 때 행동했다. 남들이 외면할 때, 그들은 그들의 양심을 따랐고 우리나라를 위한 책임을 졌다”며 독일인 저항군을 기렸다.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이 된 폰데어라이엔의 뒤를 이어 독일 국방장관이 된 크람프 카렌바우어가 취임 후 첫 대중연설을 이 기념식에서 했다. 독일의 헌법기관 대표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현지 언론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독일에서는 이제 독일이 저지른 끔찍한 역사를 반성하고 기억하는 일을 ‘문화’라고 부른다. 기억문화. 기회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교육과 삶의 곳곳에서 과거를 반성한다. 한 독일 친구는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것이 나치 역사뿐”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외국인인 내가 봐도 ‘이제 그만 좀 사죄해도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인데 독일인들은 오죽할까.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사를 공론장에 꺼내 놓고 치열하게 직면했다. 나치 범죄에 대한 판단과 해석에는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이성적인 사회와 사고하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겨우 ‘독일인’ 희생자를 되돌아볼 수 있겠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올해 히틀러 암살 작전 희생자들의 추모식과 함께 7월20일을 독일의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독일 기억문화의 변두리에 머물러 왔던 독일인 희생자 유족들도 다시 목소리를 낸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그룹의 면면과 개개인을 조명하고 있다.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또 반성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 이유진 프리랜서 기자
▲ 이유진 프리랜서 기자

 

※ 이유진씨는 6년째 독일에 거주하며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한국에서 세계일보 기자로 일했고 이후 독일 유학을 떠나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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