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만든 ‘착시’에서 해방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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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팩트의 감각’

지은이 바비 더피는 세계적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의 이사이면서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정책연구소장이다. 바디 더피는 이 책에서 실제 통계와 사람들의 믿음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파헤쳤다. 사람들은 현상을 보이는 대로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믿는다. 저자는 “가짜뉴스와 탈진실의 시대에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어 더 사실에 입각한 견해를 갖기를 원한다”며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저자는 위대한 건축물 ‘만리장성’에서 출발한다. 중국 교과서에 ‘만리장성은 우주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지구 건축물’이라고 돼 있다. 조금만 생각하면 터무니 없다. 만리장성은 가장 두터운 곳도 기껏 9m에 불과하다. 우주에서 보일 리 없다. 만리장성의 위대함은 그 길이에 있지 폭이 아니다. 

저자는 직업대로 40여개 나라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65세 이상 인구는 몇 퍼센트일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인인구는 실제 노인인구보다 훨씬 많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노인인구가 제 나라 인구의 48%라고 답했지만 실제론 21%에 불과했다. 한국인도 노인인구가 32%라고 답했지만 실제론 그 절반인 16%에 불과했다. 일본인도 41%라고 답했지만 실제론 25%에 그쳤다. 저자는 이런 격차를 ‘감정적 수맹’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회적 현상을 판단할 때 외부 자극에 편향돼 인식하는 걸 말한다. 

실제 비만 인구와 비만 여론조사에도 이런 격차가 일어난다. 영국인은 여론조사에선 44%가 비만이라고 답했지만, 실제 영국의 비만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은 62%다. 미국인도 딱 절반이 비만이라고 답했지만, 실제 미국의 비만인구는 66%로 훨씬 많다. 33개 나라에서 실제 비만보다 낮게 비만비율을 답했다.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비만인 사람 대부분이 자신이 비만이 아니라고 믿는 셈이다. 저자는 비만에 경각심이 낮은 이유를 ‘양떼 편향’으로 해석한다. 비만인 사람은 비만인 친구와 가족을 가졌을 확률이 높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처럼 사람은 판단을 내릴 때 주변에 쉽게 보이는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이 때문에 2015년 전세계 약 400만명이 비만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전체 사망인구의 거의 7%에 달한다.

오직 한국만 정확히 여론조사와 실제 비만율이 32%로 같았다. 

이주민 범죄는 종종 인종차별로 이어진다. 영국과 이탈리아, 미국에서 이뤄진 연구결과 폭력범죄와 이민 사이에 아무 관련성이 없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민자가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여론조사 결과 10명중 7~8명이 테러리스트가 난민으로 위장해 입국한다고 믿었다. 

무슬림 인구비율도 추측치와 실제 비율 사이에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프랑스인은 자기나라 전체 인구의 31%가 무슬림이라고 답했지만 실제 프랑스 무슬림 인구는 7.5%에 불과하다. 똘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는 온데간데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무슬림 인구비율이 7%라고 답했지만 실제론 0.2%에 불과하다. 이런 격차는 전세계 공통이다. 이유는 서구 언론이 무슬림을 부정적으로 다뤄서다. 우리 뇌는 이런 뉴스에 오염돼 있다. 

테러는 정말 급증할까? 2001년 9월11일 이전 15년과 이후 15년을 비교했을 때 테러 사망자는 절반으로 급감했는데, 사람들은 테러가 오히려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1970년부터 테러 자료를 정리해온 메릴랜드 대학의 테러리즘 테이터베이스로 분석한 결과 9·11 테러 전후 15년씩 비교하면 테러 사망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영국인 47%는 테러 사망자가 늘었다고 생각했고, 29%는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오직 15%만 줄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테러를 둘러싼 자극적 뉴스 때문이다.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통계가 아니라 이미지와 뉴스로 위험을 직감한다.”

▲ 팩트의 감각 / 바비 더피 지음 /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펴냄
▲ 팩트의 감각 / 바비 더피 지음 /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펴냄

 

2013년 BBC의 뉴스진행자 제러미 팩스먼이 런런시장 보리스 존스에게 “우유 1파인트(0.57L) 가격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었다. 존슨 시장이 80펜스라고 답하자 팩스먼은 “약 40펜스”라며 망신을 줬다. 상당수 영국인도 같은 질문에 존슨 시장처럼 답했다. 20% 이상의 영국인은 존슨이 답한 80펜스 이상이라고 답했고 10% 이상은 30펜스 미만이라고 답해 들쑥날쑥했다. 언론의 이런 접근법이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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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7-29 13:42:23
역시 테러를 둘러싼 자극적 뉴스 때문이다.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통계가 아니라 이미지와 뉴스로 위험을 직감한다.” <<< 선전선동과 공포는 돈이 된다. 자본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자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