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원래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에 ‘제4기 방통위 2년 정책성과와 계획’을 발표하기로 예고했다. 

하지만 이날 아침 ‘이 위원장이 최근 청와대에 사의를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이 위원장의 브리핑 일정도 오전으로 앞당겨졌다. 이 위원장은 방통위 2년 정책성과와 계획을 발표한 후 “문재인 정부가 2기를 맞아 국정 쇄신을 위해 대폭 개편을 앞두고 있다”며 “1기 정부 일원인 나는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정부의 새로운 구성과 원활한 팀워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방통위원장의 임기는 3년(1회 연임)으로 정해져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위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되 국민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통신 정책을 관장하는 만큼 공공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 다른 장관과 다르게 임기를 보장한다.

2017년 8월1일 취임한 이 위원장의 임기가 1년이나 남았는데도 사의를 표명 배경에 여러 추측이 무성하지만, 이 위원장은 “2기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서”라고만 짧게 입장을 밝혔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2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2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다만 이 위원장이 이날 4기 방통위 2년의 정책성과를 설명하면서 아쉬움으로 지목했던 발언의 행간에서 그가 2년간 현 정부의 국정수행 과제를 추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고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4기 방통위 출범 후 2년간 정책 추진 과정에서 많은 성과도 거두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출범해 방송·통신·미디어 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일원화되지 못한 점은 특히 아쉽다”고 술회했다. 

지난 2008년 방통위 발족 후 방송과 통신 등 모든 규제와 진흥 업무를 방통위가 관장해 왔으나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과 정보통신 분야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고 방통위는 방송 분야 위주 업무만 맡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방송통신 업무를 두 부처에서 관장하는 “어불성설의 일이 존재했다”는 게 이 위원장의 지적이다. 

취임 후 줄곧 정부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 이 위원장은 이날도 “향후 한국 방송통신 정책이 바로 서기 위해선 이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방송은 근거도 모호한 유료방송 여부로 나누고, 통신은 나눠선 안 되는 사전·사후 규제 여부로 나눴는데 이는 하루빨리 시정돼야 할 잘못된 업무 분장”이라며 “오늘날 방송·통신 융합은 고도화돼 OTT(Over The Top·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에서 보듯 양자 구별은 어렵게 됐다. 이게(업무 이원화) 계속되면 방송통신 정책은 유료방송의 합산규제 문제처럼 일관성과 종합성, 효율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위원장은 공영방송 개혁과 해외 불법사이트 SNI(Server Name Indication) 차단 논란, 허위조작정보 규제 대책 등과 관련해서도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청와대·여당과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 지난 2017년 8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 등과 핵심 정책토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지난 2017년 8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 등과 핵심 정책토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 위원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국민추천이사제 도입과 제작·편성 자율성 보장 등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했다며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정파성이 줄어든 참신한 제안이란 평가를 받았으나,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논의가 정체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올해 초 인터넷 역기능 대응 강화 대책으로 추진했다가 국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SNI 차단 정책은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 당시 이 위원장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이 공감하도록 소통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이번 경험을 토대로 방통위 구성원 모두 국민과 소통에도 유념할 것을 다시 한번 약속한다”고 밝혔다.

다만 위원장은 방송과 통신 분야의 불공정한 갑을관계 청산과 상생환경 조성을 위해선 최선을 다했다고 피력했다. 

이 위원장은 “외주제작 불공정 관행과 관련해 30번 넘게 현장을 찾아가 여러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며 “얼마 전 고(故) 박환성, 김광일 피디 추모 2주기에서 ‘제작 환경이 나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부족하다’고 한 유족의 말을 가슴에 새겨 열심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통신사에 근무하는 고객 상담사의 불규칙한 점심시간 고충을 방통위가 사측의 협조로 개선한 사례에도 이 위원장은 “(점심시간을 보장하도록 근무 환경이) 바뀌고 나니 상담사의 사기가 높아져 고객 서비스의 질도 향상됐다고 들었다”며 “상담사들에게 감사의 손편지 받은 것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 위원장은 후임 위원장이 임명될 때까지 위원장직을 수행한다. 여권에선 이 위원장의 후임으로 표완수 시사인 사장대행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지낸 한상혁 대표변호사, 엄주웅 전 방통심의위 상임위원 등이 거론된다. 청와대는 이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사의 표명을 하기 전부터 차기 방통위원장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 검증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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