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오후 11시37분. 조국 민정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SBS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회를 보는데, 한참 잊고 있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고 적으며 ‘죽창가’ 유튜브 링크를 덧붙였다. ‘녹두꽃’은 대표적 항일운동인 동학혁명을 다룬 드라마로, 죽창가는 항일의지를 담은 민중가요다. 이 시점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은 7일간 대일여론전의 선봉에 섰다. 

7월16일 조국 수석은 15일 방송된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8회에 소개된 조선일보 및 중앙일보 일본판 제목을 거론하며 양대 보수신문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일본 내 혐한 감정의 고조를 부추기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 조 수석은 “민정수석 이전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한다”고 적었다.

7월18일, 공세 수위는 높아졌다.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다.” 설령 합리적인 정부 비판일지라도 이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위험한 표현이었다. 환호와 비난이 거세게 엇갈렸다. 

7월20일엔 “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라며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또 다시 정부 비판을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SNS 게시글이 민정수석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이하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며 강제징용 판결로 불거진 한일갈등의 쟁점에 대한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①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는 받았지만,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②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했다. ③2012년 대법원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 해 신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2018년 확정된다. 그의 입장이다. 

조국 수석은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명확히 하며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권력 핵심에 있는 민정수석이 매국과 애국을 단정 짓는 위험한 장면이었다. 이는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발화자의 위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조국 수석의 ‘친일파’ 표현으로 논란이 거세지며 페이스북에 이목이 집중 된 7월21일,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는 국익수호를 위하여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고 비유했으며 “일본 국력, 분명 한국 국력보다 위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쫄지말자”고 적었다. 이어 “제일 좋은 것은 WTO 판정 나기 전에, 양국이 외교적으로 신속한 타결을 이루는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며 국민적 지지를 강조했다. 

같은 날 조국 수석은 또 다른 게시글을 통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1)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었다 (2) 이를 무시한 한국 대법원 판결과 이를 방치한 문재인 정부가 잘못이다 (3) 한국이 국가 간의 약속을 어겨 일본 기업에게 피해를 주므로 ‘수출규제’를 한다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일본의 궤변을 반박하기는커녕, 이에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한국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매도하는데 앞장서는 일부 한국 정치인과 언론의 정략적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적었다. 

뒤이어 새로운 게시글에서는 “日변호사 등 100여명, ‘개인청구권 소멸되지 않았다’ 공동성명”이란 제목의 연합뉴스 기사링크를 덧붙이며 “2018년 일본의 양심적 법률가들께서는 이러셨는데, 2019년 한국의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한국 대법원이 틀린 판결을 내려 현 사태가 벌어졌다고 주장하며 한국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비방, 매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죽창가’로 시작해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관통하는 핵심주장은 ‘조선·중앙일보와 일부 야당 정치인이 매국행위를 하고 있다’로 압축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조국 수석의 페이스북 글은 청와대 공식 입장은 아니다. 다만 법리적 문제는 법조인으로서 민정수석께서 발언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사안이다”라고 밝혔으며 “SNS라는 개인의 공간에 대해 (청와대가) 해라, 말라 규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로서는 조 수석의 페이스북 주장과 거리를 둔 것이다. 이날 조 수석의 페이스북도 멈췄다.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압축되는 이번 조 수석의 ‘애국’ 여론전은 △향후 정부 비판 보도를 ‘친일’로 반박하는 효과 △‘친일’은 안 된다는 국론 집중 효과 △민족주의 고취에 따른 정부 지지율 상승효과를 직간접적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국·이적·친일·국익 등 ‘작정하고’ 던진 메시지는 또 하나의 전선을 예고하고 있다. 

정양석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3일 “조 수석의 친일·반일 프레임은 내년 총선에서 경제 실패와 외교안보 무능을 커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23일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조국 수석의 주장은 내부 친일파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전략적이지도 않고 민정수석의 역할도 아니었다. 총선 출마용이라고 생각했다”고 혹평했다. 이에 진행자 김어준씨는 “못할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여당 내에도 비판여론이 존재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은 23일 통화에서 “조국 수석이 (불가피하게) 악역을 맡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직무 범위를 벗어났을뿐더러 내용도 별로였다. 청와대의 어려움을 전하고 정책적 이해를 요구한 게 아니라 국내에서 불거진 이견에 대해 매국과 이적이란 단어를 써가며 공격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조국’과의 전면전을 예고한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23일 기자칼럼을 통해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을 향해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역대 어느 민정수석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며 “본분을 잊고 청와대 대변인인 양 나서는 그를 법무장관에 앉히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같은 날 사설에서 “겉으로는 양국 정부가 가시 돋친 공세를 주고받고 있지만 속으로는 서로 정치적 이득을 주고받는 적대적 동맹 관계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며 “반일과 혐한에 기댄 정치적 반사이익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정파적 계산으로 국익을 해치는 것이야말로 매국이요 이적행위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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