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청자권익보호 전담기구를 만든다. 그러나 정부안으로는 제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국회, 방송사업자 등에 확인한 결과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시청자권익 보호 전담기구 설치를 위한 안을 만들고 방송사업자들에게 의견청취 절차를 진행했다. 

시청자권익보호 전담기구는 방통위 산하기구인 시청자미디어재단 내 센터 형태로 신설해 오는 2020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 국민기획자문위원회는 5개년 계획 100대 과제 중 하나로 시청자권익보호 전담 기구 설치를 공약했다. 

시청자권익보호 전담기구는 △시청자의 보호 권익증진 제도 연구 및 교육사업 △시청자 권익보호 및 피해 예방을 위한 홍보 △통합적 시청자 불만처리 및 피해구제 지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시청자 권익보호와 관련해 위탁한 업무 등을 맡는다.

방통위 관계자는 “민원통합시스템처럼 시청자를 위한 민원통합접수 기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방송 내용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있기에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정부의 시청자권익보호 전담기구 계획안.
▲ 정부의 시청자권익보호 전담기구 계획안.

방통위는 전담 기구를 시청자미디어재단에 두는 이유로 “미디어교육 전문 인력과 전국 7개 시청자미디어센터를 보유하고 있어 시청자 권익보호 사업의 연계 추진 및 전문성 확보가 용이하다”고 밝혔다.

시청자권익보호전담기구 설립은 의미가 있지만 현재와 같은 방안으로는 유명무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방통위가 실시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현재와 같은 방안 외에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하는 방안 △시청자미디어재단 산하에 두되 별도 기관으로 설립하는 방안 등도 있었다. 방통위가 채택한 방안은 가장 소극적인 안이다.

용역 보고서는 현재 방통위가 채택한 방안이 “전담기구로서 위상이 크지 않고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예산 배정과 인력배치,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회나 이사장의 재단 운영방침에 따라서 시청자권익보호 활동의 성과가 좌우된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용역 연구 때 실시한 전문가 인터뷰에서도 학계·시민단체·협회 소속 전문가들은 방통위가 채택한 방안을 선호하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관료화 및 위계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정책 집행력을 지니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고 다른 전문가는 “기존 조직 내 하나의 국으로 신설하는 것은 바람직해보지지 않는다”며 소비자보호원 정도의 위상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경우 권익 보호 대상이 좁아질 가능성도 크다. 현행법상 지상파와 케이블은 방송으로 분류돼 시청자 권익 보호 대상이지만 IPTV를 비롯해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는 방송이 아니기에 시청자 보호기구의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  기구 권한 개편 없이 시청자미디어재단 산하 기구로 시청자권익기구를 만들 경우 IPTV, OTT 등을 포함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iStock
▲ 기구 권한 개편 없이 시청자미디어재단 산하 기구로 시청자권익기구를 만들 경우 IPTV, OTT 등을 포함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iStock

유사한 기구가 많은 상황에서 역할 조정 없이 기구를 만드는 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시청자 및 이용자 권익 보호 관련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피해구제선터·명예훼손분쟁조정부 △한국인터넷진흥원 ICT분쟁조정지원센터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통신민원조정센터 △언론중재위원회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시스템·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등에 있다.  

이와 관련 방통위 관계자는 “채택한 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별도 기구를 설립하려면 법을 개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시민단체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기존 기관의 업무를 재편하고 시청자 관점의 정책 마련으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방통위도 아니고 시청자미디어재단도 아니고 재단 산하에 만드는 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갖기 힘들다”며 “미디어 정책 전반에 시민, 이용자의 입장과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의 요구를 민원처리 수준으로 받는 게 방통위의 인식수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부조직 개편을 염두에 두지 않고 별도로 전담기구를 만든다는 전제가 잘못된 거 같다. 기구 설립 취지에는 찬성하나 제 역할을 하기 힘들어 보인다. 국정과제 이행 그 자체를 목표로 형식적인 논의를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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