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문제삼고 있는 일제강점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별 청구권과 관련해 14년 전 노무현 정부 때 민관공동위원회는 백서에서 “피해자 개인들이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조선일보와 일부 언론, 당시 민간측 위원이었던 양삼승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고문) 등은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거나 ‘청구권협정에 배상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간주했다’는 주장을 폈으나 백서에 따르면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개인들 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고 이 기록에 나오기 때문이다.

양삼승 변호사는 지난 18일자 중앙일보와 인터뷰(‘“죽창가 발언, 하수 중의 하수···지금은 日에 양보해야 이긴다”’)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공동위원회가 강제징용 배상에 내린 결론을 묻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배상 문제가 반영된 것으로 간주한다”며 “법률이 다루는 범위는 사적 민사부터 정치·외교에 관한 것까지 굉장히 넓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건 외교문서를 갖고 국가 간 조약과 약속을 해석하는 일이었다”며 “그런 자세로써 합리적으로 접근했을 때 1965년 협정 당시 강제동원된 사람들의 사적 청구권까지 해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김경화 조선일보 기자도 지난 19일자 기자수첩 ‘靑·與, 노무현 정권이 만든 2005년 발표문 읽어는 봤나’에서 “‘국가가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 권리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2005년 민관 공동위 논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지만 1965년 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들이 1965년 협정탓에 개인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2005년 당시 민관공동위 결론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민관위원회가 활동한 내역을 기록한 백서를 보면, 당시 위원회는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명확히 인정했다.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 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의 42쪽을 보면 민관공동위원회가 2005년 8월26일 제3차 회의에서 강제징용 등의 법적효력에 대해 “국가권력이 개입한 반인도적 불법행위(군위안부, 생체실험, 강제동원 중 범죄행위 등)는 일본정부가 일제하 반인도적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 해방 전 일본 헌법상 개인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관공동위는 “한국민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국가가 자행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며 진상규명되는 경우 한국정부도 일본정부에 책임추궁이 가능하다”고 썼다. 강제동원 피해보상과 관련한 법적 효력을 두고 민관공동위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다면서도 “그러나 피해자 개인들이 ‘강제동원은 일제의 불법적인 한반도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적·물질적 총체적 피해’라는 법적 논거로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단은 민관공동위의 그해 6월8일 법리분과 토의결과에서도 “군 위안부와 징용과정에서의 폭력적 행위 등에 관한 피해자 개인의 불법행위 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으며 필요한 경우 국가의 외교보호권 행사도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지난 2007년 11월 발간한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
▲지난 2007년 11월 발간한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지난 19일 반박자료에서 조선일보 보도와 양삼승 변호사를 인터뷰한 중앙일보를 두고 “백서에 따르면, 65년 청구권협정의 무상자금에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만이 반영되었을 뿐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협정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음이 확인된다”고 비판했다.

대법원도 지난해 10월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상고심 확정판결에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권력이 개입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1965년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007년 특별법에 따라 보상이 이뤄짐으로써 배상문제도 끝난 것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는 조선일보 보도도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이 나왔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2007년 희생자지원법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모두 강제동원 관련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이나 지원금의 성격이 ‘인도적 차원’의 것임을 명시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대리인단은 “조선일보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민관공동위에서 청구권협정에 반영된 것이라’라고 보도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가 명쾌하게 정리한 강제징용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건 2012년 대법원의 ‘뒤집기 판결’이 나오면서였다는 조선일보 주장을 두고도 대리인단은 “2012년 이전의 하급심에서도 불법배상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인정했다”고 “조선일보 보도는 허위”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08년 4월3일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의 손배해상청구 소송 판결문에서 위자료 청구권(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여부를 두고 “청구권협정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 자체가 소멸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원고의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소멸한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의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 강제징용 ‘보상문제’는 포함됐다고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논의되지 않았다”며 “그 행위라는 것은 식민지배의 불법성, 반인도적 행위의 불법성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양삼승 변호사와 조선일보의 주장을 두고 “논의도 없었는데 뭐가 해결됐느냐”며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을 전제로 결론 내렸으면서 이를 다르게 해석하고 인터뷰와 보도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리인단의 임재성 변호사는 조선일보 기자를 두고 “민감한 시기에 사실관계의 철저한 확인없이 보도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비판했다.

대리인단은 지난 18일 조선일보 17일자 4면 기사 ‘“강제징용 보상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포함”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 공동委서 결론낸 사안’를 두고 “사실에 반하거나 취지를 왜곡하여 보도했다”며 “정정보도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 11월 발간한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 42쪽. 사진=총리실 백서 갈무리
▲지난 2007년 11월 발간한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 42쪽. 사진=총리실 백서 갈무리

조선일보 보도와 달리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남아있다고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 백서에 기재된 점 △백서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2012년 이전에도 우리 법원이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있다고 판결한 점 △정정보도 요구에 대한 입장 등을 묻자 조선일보 기자는 간략히 답했다.

기사를 쓴 김경화 조선일보 기자는 22일 저녁 미디어오늘에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미 나간 기사에 답변이 들어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양삼승 변호사의 경우 △민관공동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피해자 배상청구권이 있다는 내용이 백서에 기재된 사실을 알고도 어떻게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배상 문제가 반영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발언했는지 등에 관해 22일 오후 이메일과 변호사 사무실(법무법인 화우) 비서를 통해 통해 질의했으나 이날 저녁 8시40분까지 답변이 오거나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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