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사 프로그램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이하 페이크) 시즌2가 지난 15일 마무리됐다. 마지막 방송분에 사회적 파장이 컸다. 국내 보도 논조와 제목보다 더 자극적으로 편집된 보수신문의 일본어판이 일본 극우 세력의 혐한 정서를 결집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지난 4월26일자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실장의 칼럼 “어느 쪽이 친일이고, 무엇이 나라 망치는 매국인가”는 일본어판에서 “반일로 한국을 망쳐 일본을 돕는 매국 문재인 정권”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반일’ 키워드로 2019년 1월1일~7월10일 일본어판 기사를 검색한 결과, 조선일보는 71건, 중앙일보는 65건에 달했다. 페이크가 지적한 두 언론사 일본어판 기사 제목은 “국가 대전략을 손상시키는 문 정권의 감성적 민족주의”(조선일보 2019년 4월28일자),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조선일보 2019년 7월4일),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한국”(중앙일보 2019년 5월10일자) 등이다.

청와대와 조국 민정수석은 공개적으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난했다. 조 수석은 16일 페이스북에 이 소식을 전한 페이크 방송 화면 사진을 공유하며 “혐한 일본인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 내 혐한 감정 고조를 부추기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 본사 소속 사람인가. 아니면 일본 온라인 공급업체 사람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은 500회 이상 공유되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를 연출한 김재영 PD가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를 연출한 김재영 PD가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김재영 MBC PD는 취재 경위에 “지난해 11월 일본 극우 사이에서 나오는 주장들이 국내 극우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비롯한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보수신문 제목이 과장되거나 여과 없이 일본에서 유통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실제 국내 커뮤니티나 포털 댓글에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 그 자체보다 조 수석이 페이스북에 페이크를 인용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면이 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언론 상호 비평 차원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템에 폭발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청와대에서 공개적으로 보수신문을 비판해 더 많은 주목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국내 언론시민단체들도 일본어판 보도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만 이 이슈를 지적하는 국내 언론이 많지 않았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신문들은 한국어판을 운영하지 않는데 왜 국내 보수신문은 일본어판을 운영할까”는 김 PD의 핵심적 문제의식이었다.

김 PD는 “보수신문의 일본어판이 자극적 제목을 다느냐 여부보다 중요한 건 문재인 정부가 정말 반일(反日) 정부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과 평가”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일본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보수 언론들은) ‘반일’ 낙인을 찍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정부 우경화를 우려했고 비판했다. 이와 비교하면 보수신문은 유독 문재인 정부에 ‘반일’ 레테르를 붙여 보도한다”고 지적했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16일 페이스북에 MBC 페이크 방송 화면 사진을 공유하며 “혐한 일본인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 내 혐한 감정 고조를 부추기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 본사 소속 사람인가. 아니면 일본 온라인 공급업체 사람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조국 페이스북 화면.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16일 페이스북에 MBC 페이크 방송 화면 사진을 공유하며 “혐한 일본인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 내 혐한 감정 고조를 부추기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 본사 소속 사람인가. 아니면 일본 온라인 공급업체 사람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조국 페이스북 화면.

그는 보도와 취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일본 산케이신문 자매지 격인 ‘유칸후지’가 보도한 문재인 대통령 중병설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이 몸살감기로 일정을 취소했다고 보도한 내용이 일본어판에는 “문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이 나오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돼 보도되고, 이를 일본 언론이 중병설로 확대 해석한다는 것. 유칸후지가 보수신문의 일본어판을 인용해 보도한 대통령 중병설은 국내 극우 유튜브에서 기정사실화하면서 음모론으로 확산됐다. 김 PD는 “문 대통령 딸 이주 문제를 제기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 소식도 유칸후지는 ‘도망’이라는 과장된 단어로 제목을 뽑았는데, 보수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 일본 언론이 이를 더 부풀려 지면에 싣는 양상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김 PD는 “조선·중앙일보의 일본어판은 일본 사람 모두가 볼 수 있다”며 “과장 왜곡된 정보가 일본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 여론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곳이 국내 언론 일본어판인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자민당이나 일본 오피니언 리더들은 조선·중앙일보를 주로 참고한다. 이 점에서 일방 여론만 전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가짜뉴스’ 생산 경로와 공정에 집중한 프로그램이다. 시청자 눈길을 끄는 감각적 연출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파일럿 프로그램을 포함해 10회를 선보였다. 시즌제가 이어질지 추후 편성이 확정되진 않았다. 김 PD는 PD수첩 복귀 발령을 받았다. 김 PD는 페이크에 “MBC는 오랫동안 시민 편에서 방송하지 못했다”며 “제대로 된 공영방송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다짐 속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영방송이 레거시미디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있었다. 잘못된 뉴스와 가짜 정보로 한 사회가 혼란을 겪는 현상은 전 세계적이다. 뉴스와 정보를 바로잡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를 연출한 김재영 PD가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를 연출한 김재영 PD가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페이크는 김재영·황순규·장호기 PD가 연출해 왔다. 타사 보도를 짚는 작업이 빈번한 탓에 시비도 적지 않았다. 손석희 JTBC 사장의 동승자 의혹 논란을 보도한 SBS는 페이크 제작진을 상대로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럼에도 페이크가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다룬 SBS 탐사보도팀 보도를 도마 위에 올리며 두 언론사 간 긴장은 고조됐다.

김 PD는 “손 의원 부동산 의혹 이슈는 국회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그 정도의 정치적 갈등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는지 질문하고 싶었다”며 “공직자 검증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손 의원 사건의 경우 거대 언론사들이 거의 모든 화력을 집중해 이슈를 끌고 갈 정도였는지 의문이었다. 실제 핵심 팩트 가운데 오보도 꽤 있었다. 잘못된 근거로 만들어진 투기 프레임과 소모되는 진영 간 정치적 갈등, 팩트였지만 소외됐던 지역 언론(목포 MBC) 보도까지 다뤄볼 주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페이크 보도가 절대 진리라는 뜻은 결코 아니”라면서도 “진영 논리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에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해보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 보도를 둘러싼 논쟁도 건강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PD는 “과거와 달리 이번 페이크를 연출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새롭지 않으면 시청자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사실”이라며 “지상파로만 전달되는 시사 프로그램은 한계가 있다. 플랫폼을 다변화해야 하고 이는 우리 제작진 숙제다. PD수첩 유튜브 구독자는 12만명에 불과하다.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제작하는 ‘딴지방송국’은 40만명이 넘고, 보수 우파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이를 상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과제로 ‘세련된 스토리텔링’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스토리텔링은 아이템주의나 연성주의로 흐를 수 있다. 심층보도하면서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강화할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연출한 페이크도 어떤 방송분은 스토리텔링에 강점을 보였지만 약점을 드러낸 경우도 있었다. 어떤 스토리텔링을 선보일까, 앞으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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