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의 2012년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이 7월1일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경제 보복 이유에 대해 말을 바꾸며,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폭거에 정부와 기업은 국산화 추진과 소재·부품의 탈일본 등 대책을 모색 중이고, 민간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코미디 같은 일도 일어났습니다. 일본이 조선일보 보도를 근거로 삼아 한국 정부를 공격하다가 역공을 당한 것입니다.

일본과 조선일보의 팀플레이 ‘전략물자 유출’주장 촌극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되고 며칠 후, 경제 보복 이유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던 일본은 갑자기 일본이 한국에 수출한 전략물자가 북한 쪽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7일 아베 총리는 “한국이 대북 제재를 지켜야 한다”고 발언했고,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당 대행은 5일 후지TV에 출연하여 “(화학물질의)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군사 용도로의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본 측의 움직임이 국내에 알려지자, 조선일보는 이를 소재로 정부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조선일보 8일자 보도 <‘근거 없는 안보카드’로 공격나선 아베>(7월8일, 이하원·이용수 기자)<사설-“한국이 북에 독가스 원료 넘겼다”는 일본, 근거 대라>(7월8일)는 제목만 보면 일본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을 보면 교묘히 정부를 때리는 내용입니다. <‘근거 없는 안보카드’로 공격나선 아베>기사에서는 “일본이 경제 보복을 합리화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동원한다는 반응도 나왔다”면서도 “외교가 일각에선 ‘작년 정부가 남북 경협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유류 등 일부 금수품이 무단 반출됐는데, 일본이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는 내용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사설에서도 “일본이 ‘북’을 들먹이는 건 대한 수출 규제가 ‘경제 보복’이 아닌 ‘안보 차원’이란 억지를 뒷받침하려는 의도일 것이다”라면서, “일본이 근거도 없이 ‘북 관련설’을 퍼뜨리는 건 한국이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며 지난해 ‘북한산 석탄 밀수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산자부 해명자료 무엇이 문제?

한편, 조선일보는 11일 보도 <전략물자 관리도, 해명도 ‘엉터리 산업부’>(7월11일, 최현묵 기자)에서는 한 술 더 떠 “불화수소 불법수출 등 관리 소홀, 결국 일본이 의혹 제기하는 빌미”가 됐고, 산업부가 엉터리 해명을 내놓다가 일본 측에 망신을 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가 미숙한 대응을 했다고 지목한 산업부의 대응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가 10일 내놓은 <설명자료-후지TV가 보도한 전략물자 적발실적은 우리나라 수출 통제 제도가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 반증임>과, 산자부 관계자가 했다는 “2018년 전략물자회의가 열리지 않은 건 당시 일본 측 담당이 공석이었기 때문”이라는 해명이었습니다. 이중 산자부 관계자 해명은 착오였기에 조선일보의 지적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산자부의 설명자료가 엉터리라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 격입니다. 산자부 설명자료의 요지는 ‘한국은 매년 전략물자 적발 횟수와 상세 내역을 공개하고 있는데 일본은 관련 자료도 투명하지 않고 적발 횟수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일본 측이 제시한 자료는 오히려 한국이 전략물자 통제가 잘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였습니다. 또한 ‘불법 수출된 불화수소가 북한에 유출됐다는 증거가 전혀 없고, 불법 수출된 불화수소 중 원산지가 일본인 사례는 단 1건도 없다’는 것이었죠. 

이처럼 산자부의 반론이 충분함에도 조선일보는 도대체 “하지만 정부가 일본이 수출 규제 품목에 포함시킨 불화수소의 불법 반출을 제대로 막지 못한 것도 문제인 데다, 일본이 불법 유출 문제에 대해 시비를 걸기 시작할 때부터 '일본에서 수입된 전략물자'뿐 아니라 전략물자의 전반적 관리 실태를 명확히 밝혀 의혹 제기를 사전에 차단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끝까지 산자부를 비난했습니다. 

한국 측이 빌미 줬다던 조선일보, 정작 조선일보 기사가 빌미 준 것으로 드러나

그러나 이 같은 정부 공격이 무색하게도, 얼마 안 가 일본의 ‘대북 제재 위반’ 트집은 처음부터 조선일보의 기사가 그 근거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이런 사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떠돌다가 MBC <일 “수출 규제 철회 안 한다”>(7월9일)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MBC 측이 제시한 영상은 5일 진행된 후지TV <일한 “경제전” 돌입하나? 수출규제 리스크와 승산>이라는 대담이었는데요. 실제로 영상 속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자민당 안보조사회장은 “조선일보 기사 중에서 올해 5월이라고 보고받았습니다만, 대량 파괴에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가 한국에서 위법으로 유출되는 게 급증하고 있습니다”라고 분명히 조선일보 기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5일 일본이 억지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본 측의 근거는 조선일보였던 셈입니다.

▲ 5일 조선일보 기사를 근거로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제기하는 오노데라 일본 자민당 안보조사회장. 사진=7월9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5일 조선일보 기사를 근거로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제기하는 오노데라 일본 자민당 안보조사회장. 사진=7월9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이제는 익숙한 조선일보의 ‘외신 둔갑술’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의 ‘외신 둔갑술’이 또 사용됐습니다. 일본 측이 근거로 든 조선일보의 기사는 조선일보의 <대량 살상무기로 전용 가능한데… 한국, 전략물자 불법수출 3년새 3배>(5월17일, 김형원 기자)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와 7월11일자 기사를 비교해 보면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  조선일보 5월17일 기사와 조선일보 7월11일 기사 비교. 사진=조선일보 지면 갈무리
▲ 조선일보 5월17일 기사와 조선일보 7월11일 기사 비교. 사진=조선일보 지면 갈무리

 

조선일보 7월11일 기사에는 “일본 후지TV는 10일, 지난 2015년 이후 올 3월까지 한국 정부가 적발한 전략물자 위법 수출 건수가 총 156건에 이른다고 보도했다”고 기술했는데요. 조선일보 5월17일 기사에는 거의 똑같은 표현인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정부의 승인 없이 국내 업체가 생산해 불법 수출한 전략물자는 156건으로 집계됐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7월11일자 기사에 “후지 TV는 “밀수출 안건 중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당시 사용된 신경가스인 'VX' 연료가 말레이시아로 밀수출되고, 이번 수출 제한 조치에 포함된 불화수소(에칭가스)가 아랍에미리트(UAE)로 나간 것 등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고 기술했는데요. 이 내용 또한 조선일보 5월17일 기사에 “생화학무기 원료인 '디이소프로필아민'이 말레이시아 등지로 수출됐다. '디이소프로필아민'은 북한 당국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암살하는 데 사용한 신경작용제 'VX'의 제조 물질이다”라고 거의 똑같이 써있습니다.

일본 주장의 근거가 된 조선일보 기사는 허점투성이

백보 양보해서 조선일보의 원 기사가 제대로 된 기사였다면 차라리 우리 전략물자 수출관리 실태를 짚어볼 수 있는 기회라도 됐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기사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만을 근거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이 기사에는 자잘한 오류가 많습니다. 우선, 조선일보는 전략물자의 정의에 대해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수단으로 전용될 수 있는 물품이나 기술을 지칭한다”고 했지만, 전략물자관리원(KOSTI) 홈페이지에 명시된 전략물자의 정의에 따르면, 전략물자의 범위는 “재래식무기 또는 대량파괴무기와 이의 운반수단인 미사일의 제조, 개발, 사용 또는 보관 등에 이용가능한 물품, 소프트웨어 및 기술”로 상당히 폭넓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KOSTI에서 직접 발간한 홍보책자 <전략물자 Focus>를 보면 전략물자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샴푸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 테니스 라켓에 들어가는 탄소섬유, 잉크에 들어가는 화학물질, 인터넷 쇼핑몰에서 금방 구할 수 있는 열화상카메라 등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물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일부러 전략물자의 범위를 대량살상무기로 축소시켜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입니다.

또한, 이 기사를 팩트체크한 MBC <‘전략물자 유출’ 무슨 근거?…“한국 조선일보 보라”>(7월10일)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전략물자 불법수출이 2015년 14건에서 작년 41건으로 3배 늘었다고 주장했지만, 조원진 의원의 원 자료를 보니 2013년에는 68건, 2014년에는 48건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전략물자 불법수출이 3배 늘기는커녕 2013년에 비하면 40%나 감소했고, 2015년이 유난히 전략물자 불법수출 적발이 적은 해였던 것입니다. 근거가 이렇게 부실한 기사지만, 조선일보는 기사 말미에 양욱 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을 인터뷰해 “북한과 우호 국가들에 불법 수출이 계속 늘고 있는데, 제 3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비약적인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불확실한 추측성 기사인 것도 나쁘지만, 한 술 더 떠 거의 오보에 가까운 기사였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일보는 5월17일 애초 부정확한 내용으로 일본이 안보 운운하는 경제보복 빌미를 주었고, 후지TV가 자신들의 기사를 근거로 똑같은 말을 하는 내용을 방송하자, 이를 다시 받아썼습니다. 조선일보가 5월17일 자신들의 기사를 모르고 7월11일 기사를 썼을까요? 몰랐다면 황당한 것이고, 알았다면 뻔뻔한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적반하장’ 부끄러움 모르나

이런 부실한 기사를 근거로 억지 주장을 한 일본 측도 무사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11일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를 인용해 정작 일본이 북한에 불화수소를 밀수출하다 적발됐다는 사실을 알린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전략물자 통제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부는 현재 일본 측에 ‘대북제재 위반 여부에 대한 국제조사를 함께 받자’며 역공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자 12일 이후 조선일보 지면에서는 한국 측이 전략물자 관리를 잘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조선일보는 하태경의원의 주장에 편승하여 ‘태세 전환’을 하고 <“전략물자 불화수소, 북에 밀수출한 건 일본”>(7월12일), <만물상-북으로 간 일 물자>(7월12일)등의 기사로 일본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 이낙연 총리가 ‘언론 탓’을 한다는 조선일보 기자 칼럼 (7월13일)
▲ 이낙연 총리가 ‘언론 탓’을 한다는 조선일보 기자 칼럼 (7월13일)

 

더 황당한 것은 조선일보의 적반하장입니다. 1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낙연 총리는 하태경 의원의 질문에 대해 조선일보 기사를 언급하며 “어제 오늘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일본 측이 근거로 삼았던 자료가 국내의 불확실한 보도 또는 정치권의 유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기자칼럼 <이낙연 총리의 또 ‘언론 탓’>(7월13일, 김동하 기자)에서 이낙연 총리가 언론 탓을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김동하 기자는 “본지 보도는 산업부가 공개한 통계 자료 등 ‘팩트’를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총리의 태도는 21년 경력의 언론인 출신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자신들에게 불편한 뉴스라면 ‘오보’로 단정하는 이 총리의 편향된 언론관이 의심스럽다”며 ‘말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7월8일~2019년 7월16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별지섹션은 제외)
※ 문의 : 공시형 활동가 (02) 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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