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일본에서 강경 우익으로 통하는 언론인을 패널로 초청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국면에서 일본 강경 세력의 목소리가 공영방송의 전파를 탔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KBS는 21일 일요진단 라이브에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의 대담 상대자로 구로다 가쓰히로를 초청했다. 구로다는 산케이의 서울주재 객원 논설위원이다.

KBS는 구로다의 방송 출연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보인다. 진행자는 두 사람의 대담을 시작하기 전 “국내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익 성향이 강한 구로다 위원을 저희 일요진단에서 섭외한 것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 일본 정부와 그리고 일본인들의 생각에 대해서 저희가 가감 없이 묻고 또 듣겠다. 공영방송 KBS가 구로다 위원을 생방송에 나오게 한 데에 대해서는 이러한 고려가 있었다는 점부터 우선 밝혀드린다”고 말했다.

구로다가 속한 산케이 신문은 대표적인 일본 우익 신문으로 통한다.

지난 15일 산케이는 “한국이 미국에 올며 매달리고 있다”며 조롱조의 사설을 내보내 논란이 됐다. 산케이는 “강경화 외교장관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해 일본을 비판하며 미국 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호소했다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며 “미국에 울며 매달려 중재하게 할 생각이면 오해가 심하다”라고 썼다.

산케이신문 계열 후지TV의 히라이 후미오 논설위원은 지난 17일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 이제 와서 강제징용 판결을 번복할 수도 없고, 레이더 조사 문제를 인정할 수도 없고 위안부 재단은 해산했다. 일본에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있다면 문 대통령을 자르는 것 정도”라고 말해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다.

▲ 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한 구로다 가쓰히로.
▲ 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한 구로다 가쓰히로.

이런 가운데 산케이에 속한 구로다가 한국의 공영방송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부터 논란이 될 수 있었다. KBS는 방송 전날 구로다의 출연을 알리면서 “유독 한국을 향해 강수를 연발하는 아베 정권의 노림수는 무엇인지, 최악의 한일 갈등을 촉발한 일본 보수의 속내는 무엇인지,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은 어떤지를”를 알아보자는 취지라고 적극 알리기도 했지만 여론은 좋지 않다.

구로다는 21일 방송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무례 발언 논란과 관련해 “여러 문제에서 있어서 솔직한 말을 많이 하는데 국민들한테 인기 있다. 다만 외교에 있어서는 약간 좀 품격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솔직히 말했다”고 평가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지난 19일 조치를 받고 외무성으로 온 남관표 주일한국대사의 말을 끊고 “한국 측의 제안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측의 제안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전에 한국 측에 전달했다. 그걸 모르는 척하면서 제안을 하는 것은 극히 무례하다”고 말했다.

구로다는 또한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서도 “그동안에 일본 국민 여론이 너무 한국에 있어서 꼭 반일적인 행동이랄까요, 운동. 여러 가지 현상에 있어서 불만이 쌓인 거죠, 국민감정에”라며 “그래서 이번에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어떤. 여기에서는 보복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외교적인 압력이라고 하는데, 그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말했다.

구로다는 강제징용 문제 해결책에 대해서도 “소위 징용공에 관한 개인 보상 문제잖아요.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 그 문제. 그거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나서면 당연히 무역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라며 우리 측에 공을 돌렸다

이에 남기정 교수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 개인 청구권 인정 판결과 관련해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출발한 기본적 인권의 보장 문제다. 그런 의미이기 때문에 청구권이 아닌 배상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자꾸 이걸 청구권 문제로 가져오고 (1965년 한일 협정)청구권 2조의 해석 문제로 가져오는 것은 일본이 의도한 판으로 지금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구로다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남기정 교수의 주장에 대해 “소위 1910년에 한국 병합이라고 할까요? 합방이라고도 하는데 그게 합법이냐, 위법이냐 하는 건 예부터 논쟁이 됐다”고 말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논란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러면서 구로다는 “한일 국교 정상화 때도 오랫동안 의논한 건데 서로 간에 의견 일치가 안 됐기 때문에 일제 시대 때 끝났다 할까요, 그런 합방 조약이 무효다라고 애매하게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구로다의 발언 중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이 논란이 될 것을 의식해 “저희 국내에서는 지금 현재까지 이 부분들에 대한 개념 정리에 대해서는 한일 병탄이나 국권 피탈이라는 부분들로 저희가 지금 정리하고 있다는 부분들을 분명하게 일단 밝히면서 일단 대화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며 바로잡기도 했다.

구로다는 한일 관계 해법에 대해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핵심 문제는 징용공 문제다, 그거에 대한 한국 측의 어떤 해법이 없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무역 문제까지 비화해서 한국분들 감정을 많이 자극했다는 건 사실인데, 그 결과 한일 간의 어떤 경제적 면을 중심으로 해서 얼마나 서로가 깊은 관계에 있었느냐, 있었는지 알아야 하는 거죠. 특히 한일 간의 협력이 한국 경제에 많이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거죠”라고 강조했다.

KBS는 구로다의 방송 출연에 대해 일본의 속내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라고 했지만 이날 나온 구로다의 발언은 강경한 일본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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