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기점으로 군산·구미·밀양까지 정부 주도 상생형 일자리가 확산되는 것에 노동계 측 우려가 크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 형식만 갖춘 채 실속없이 시작된 데다 산업 전략 고려가 부족해 세금만 쏟아붓고 실패로 끝날 수 있단 우려다. 실상 노동계를 뺀 정부·기업이 주도하면서 결국 질 좋은 일자리보다 저임금 일자리만 남을 것이란 전망도 팽배하다

이런 우려는 19일 오후 2시 민주노총·한국산업노동학회 주최로 열린 ‘광주형·상생형 일자리 정책 비판 및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실진단과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나왔다. 박용석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상생형 일자리 정책을 둘러싼 비판을,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다.

▲7월19일 오후 2시 민주노총·한국산업노동학회 주최로 ‘광주형·상생형 일자리 정책 비판 및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실진단과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7월19일 오후 2시 민주노총·한국산업노동학회 주최로 ‘광주형·상생형 일자리 정책 비판 및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실진단과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우선 광주형일자리는 정책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노사 상생형 투자협약 모델을 정책 핵심으로 뒀는데도 실상 노동계를 제외하고 협약을 체결했단 지적이다. ‘밀실 논의’는 협약 전부터 논란이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투자조건을 따로 협의하는 등으로 논란이 커지면서 지난해 9월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노총 광주본부가 불참까지 선언했다.

노정 갈등이 격화된 배경엔 광주시가 지난해 중순 1차로 제시한 협약안이 노동계 측에 지나치게 불리했던 사정이 있다. “임금·단체협약 협상을 5년간 유예한다”는 조항이 조건으로 적혔다. 노조 단결권, 단체행동권 등을 무시한 내용으로 통상 노사정 협약 테이블에 오를 수 없는 문구다.

광주형일자리의 모델인 독일 ‘폭스바겐 아우토5000(AUTO5000)’ 사례와도 반대다. 아우토5000은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던 1999년 폭스바겐이 “실업자 5000명을 월 5000마르크의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면 금속노조가 이를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공개 제안하며 시작됐고 폭스바겐과 독일 금속노조는 직접 교섭했다.

박 연구원장은 광주형일자리가 “노조를 기피해온 현대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무노조 경영을 지향했다”고 비판했다. 아우토5000은 노사 간 단체협약이면서 단체교섭권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는 반면 광주형일자리는 현대차와 지자체 간 투자협약이고 ‘35만대 달성까지 임단협을 유예한다’고 조건을 뒀다. 아우토5000 임금 수준은 ‘폭스바겐사 평균 80%’로 협의된 반면 광주형일자리는 ‘현대차 평균 50%’ 수준으로 5년간 동결된다.

‘4대강 사업처럼 대규모 세금만 낭비하고 정책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자동차산업 전망에 대한 고려가 없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다. 광주시(21%)·산업은행(11%)·현대차(19%) 등이 공동출자한 법인은 매년 10만대 경차급 SUV 생산을 목표로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은 토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자동차 전쟁이 시작됐다. 승패의 문제가 아닌 생사의 문제”라 할 정도로 저성장·저수익 국면에 직면했다. 2018년 자동차 생산은 전년 대비 2.1%, 2011년 대비 13.5% 줄었고 판매량도 전년대비 2.2% 감소했다.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 수소전기차 등 미래차 개발·생산 중심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국내 경차 판매가 2013년 20만대에서 2018년 13.5만대로 대폭 줄어드는 경영환경 속에 광주형 일자리에서 신규 소형SUV 차종 10만대가 생산된다면, 결국 GM 창원공장 등 남의 일자리를 빼앗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수익성이 낮은 경차의 특성상 10만대 생산공장으로는 독자적인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장은 정부가 결국 아우토5000에서 따온 건 임금 수준 하향조정과 독립법인이라 지적했다. 광주형일자리 관련 연구 용역에 참여했던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도 “광주형과 같은 대기업 투자의 ‘임금협력형’은 실상 내용은 임금을 깎자는 것”이라며 “‘상생’이 임금을 깎고 노동권을 배제하는 노동계 측 양보로 전락했다”고 평했다.

박 연구원장은 또 “완성차 대기업 정규직과 하청 중소기업·비정규직 간 격차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 후진성에 기인한다. 원·하청 불공정거래와 재벌 기업 사익 편취 속에서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이 원천적으로 취약한 것”이라며 “마치 대기업 정규직들이 부당한 편익을 누린다고 전제하는게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잘못”이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 광주광역시-현대자동차 투자협약식 축사. 사진=노컷뉴스.
▲문재인 대통령, 광주광역시-현대자동차 투자협약식 축사. 사진=노컷뉴스.

 

상생형 일자리를 도입한 다른 지역은 어떨까. 군산은 올해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 MS오토텍과, 구미는 LG화학과 투자협약을 체결해 상생형 일자리 도입을 공식화했다. 밀양도 하남산단을 스마트 친환경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상생형 일자리모델 도입 계획을 밝혔다. 구미는 자회사를 통한 LG화학의 직접 생산 방식을 예정했고 밀양은 지역 주물기업들을 유치해 신규 일자리를 확대할 계획으로 저마다 광주형과 차별점이 있다.

이 소장은 “군산·밀양·구미 등의 상생형 일자리는 광주형과 동일하게 볼 순 없다”며 민주노총에 상생형 일자리 논의 참여를 제안했다. 이 소장은 “노사민정 협의회를 통해 사측의 노동통제를 억제하고 노조의 과도한 요구도 통제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실제 구미는 ‘너무 많이 요구하면 LG화학 투자를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됐다. 민주노총이나 지역 사회단체가 적극 개입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게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하 지부장은 “‘반값 임금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한다. 문재인 정부는 임금 수준 하락을 기업 수익성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보고 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며 “20년 전엔 비정규직을 만들어 노동자 임금을 반값으로 낮췄다면 지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탄력근로제와 광주형일자리 도입 등으로 ‘임금 유연성’을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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