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서초사옥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 강남역사거리. 가로세로 폭 130cm. 다리도 뻗을 수 없는 25m 상공 CCTV철탑 공간. ‘얹혀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의 이 곳에서 김용희씨(60)는 39일째 올라 있다. 그는 정년 이전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8일째인 지난달 10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15일, 기자가 고공농성 현장을 찾은 그날 김씨는 현수막과 비닐로 철탑 위와 옆을 덮어 비를 피하고 있었다. 단식으로 불거진 뼈를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 얇은 스폰지 장판을 덧댔다.

“(농성) 조건을 따질 겨를이 없었어요. 어떻게든 60번째 생일 전에 명예를 회복하고 복직하겠다는 마음이 절절했으니까. 이번에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올라왔어요.” 김씨는 이날 고공농성 현장에서 이뤄진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지난 10일 이곳에서 정년을 맞았다.

▲15일 삼성 해고자 김용희씨(60)가 비가 오는 가운데 단식과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 서초동 강남역사거리 CCTV철탑. 사진=김예리 기자
▲김용희씨(60)가 15일 비가 오는 가운데 서울 서초동 강남역사거리 CCTV철탑 위에서 단식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용희씨(60)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강남역사거리 CCTV철탑 위 단식 및 고공농성 현장에서 미디어오늘과 전화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용희씨(60)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강남역사거리 CCTV철탑 위 단식 및 고공농성 현장에서 미디어오늘과 전화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씨는 삼성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갖은 고초를 겪은 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8일 김씨와 관련한 인권침해 조사를 요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에서 “삼성그룹은 창립 이래 80년 동안 ‘무노조경영’을 표방하며 노동자들의 단결권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해왔다. 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뿐 아니라 각목테러, 폭행, 납치, 가족 괴롭힘을 가했고, 경찰‧사법부 등 공권력과 결탁해 체포‧구속 등 야만적 인권 침해를 벌였다”고 밝혔다. 

‘무노조경영’ 삼성에서 노조 만들려다… ‘야만의 30년’

삼성시계에서 생산관리를 맡던 김씨는 삼성그룹 경남지역노조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고초가 시작됐다. 늦은 밤 노조 설립준비 회의를 마치고 집에 가는 김씨를 건장한 청년 5명이 에워쌌다. 김씨는 각목으로 폭행 당했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났다고 했다. 그는 “‘각목 테러’는 당시 노조 만들려는 이들이 겪는 기본 절차였다”며 “행인에게 발견 못됐다면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중공업 사측의 노조원 식칼테러(1989년)’처럼, 노동자 권리를 외치는 이들이 무자비하게 치도곤 당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그 뒤 1990년 11월 사측에 납치돼 감금을 당했다고 했다. “현장 답사를 가자는 아무개 과장을 따라나섰는데 답사지가 아니라 대구 어느 호텔 방이었어요.” 김씨에 따르면 과장은 그에게 “(삼성그룹) 비서실이 발칵 뒤집혔다. 노조 만들려 하면 우리 다같이 죽는다. 나도 너 때문에 잘리게 생겼다”고 했다. 김씨가 뜻을 굽히지 않자 사측 간부들이 교대해가며 그를 15일 간 감금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회사 직원들에게 이를 폭로했고, 노조설립을 지지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그러나 김씨는 넉달 뒤인 1991년 3월 해고됐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그는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한 직원이 상사에게 당한 성폭행을 털어놔 상담했는데, 삼성이 오히려 절 성폭력범으로 몰아 하루 만에 해고했어요. 인사과 간부가 해고 직전 날 찾아왔어요. ‘사표 쓰면 계열사 취직을 돕고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김씨가 해당 성폭력 피해직원을 무고로 고소하려 하자 해당 직원이 김씨를 찾아왔다. 그는 울면서 “사측이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소문 내겠다, 노조설립을 함께 막으면 원하는 부서로 발령해주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직원은 그 길로 퇴사했고,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공증도 썼다.

▲김용희씨가 1991년 성폭력 가해자로 몰려 해고된 사건의 당사자가 ‘김씨는 가해자가 아니다’란 내용으로 쓴 공증(왼쪽). 부산일보 1992년 5월25일자 기사 ‘해고노동자 부인 납치, 경찰관이 성폭행 미수’.
▲김용희씨가 1991년 성폭력 가해자로 몰려 해고된 사건의 당사자가 ‘김씨는 가해자가 아니다’란 내용으로 쓴 공증(왼쪽). 부산일보 1992년 5월25일자 기사 ‘해고노동자 부인 납치, 경찰관이 성폭행 미수’. 자료=김용희 제공, 음영처리 미디어오늘

김씨가 복직 투쟁하는 동안 가족도 괴롭힘과 폭력의 표적이 됐다. 아버지는 김씨가 해고된 지 3달 뒤 유언을 쓰고 행방불명이 됐다. 김씨에 따르면 삼성 측은 복직투쟁하는 김씨 아버지를 찾아 ‘김씨가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김씨의 아내는 1992년 5월 삼성 인사과 직원의 부인과 만난 뒤, 그와 친분이 있는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부산일보는 이 사건을 보도하며 “성폭행 계획을 임 모씨(인사과 직원 부인)도 알고 있다고 해 사전 계획된 범행이란 인상을 짙게 했다”고 썼다. 아내 이씨는 현재까지 대인기피증에 시달린다.

“엄밀히 말하면 해고자가 아니라 복직 대기자예요”

김씨는 1994년 3월, 해고무효확인 소송 확정판결을 15일 앞두고 사측과 복직에 합의했다. 이번 재판은 성폭력 피해직원이 써준 공증을 증거로 내 승소 가능성이 높았다. 삼성 측은 “소송을 취하하면 계열사에 1년만 근무한 뒤 원직 복직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씨는 1994년 삼성건설(현 삼성물산) 러시아 스몰렌스키에 발령 받았다. 노조 설립 포기를 받아내려는 괴롭힘이 계속됐다. “그곳에서 당한 수모는 말도 못해요. 회사 기숙사에서 포승줄에 묶여 포기를 강요받았어요. 회사는 서류가방 안에 든 종이를 모두 가져가 절 간첩으로 대사관에 신고했어요. 결국 무혐의를 받았죠.” 

김씨와 회사는 이후 우여곡절 끝에 ‘3년 대기발령 후 복직’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복직이 예정된 1998년 7월18일로부터 한달 전, 삼성시계가 청산됐다. 그는 지금까지 ‘복직 대기자’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해고자가 아니에요. 삼성에서 ‘회사가 없어졌는데 어떡하냐’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어요.” 그뒤 20년 간 복직을 요구하며 삼성본관과 광화문 등에서 노숙시위와 세 차례의 단식농성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 구속과 법정싸움을 겪었다. 김씨는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단식과 동시에 고공농성을 택했다.

▲삼성시계와 김용희씨는 해고무효확인 소송 중 1994년 1월 김씨의 상고 포기와 복직에 합의했다. 김씨는 합의에 따라 상고를 포기했지만 복직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자료=김용희 제공
▲삼성시계와 김용희씨는 해고무효확인 소송 중 1994년 1월 김씨의 상고 포기와 복직에 합의했다. 김씨는 합의에 따라 상고를 포기했지만 복직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자료=김용희 제공

‘정년 전 복직’ 물거품, 미동 없는 삼성… “명예복직‧피해보상하라”

현재 김씨 건강은 위태롭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측은 지난 14일 그를 검진한 뒤 “당장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중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철탑이 바람에 흔들려 지속적으로 현기증이 온다”고 했다. 근육이 모두 소실돼 앉아 있기 힘들고, 가끔 오른쪽 몸 전체에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 지난 10일 정년을 맞은 뒤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철탑 위에서는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서너 시간마다 몸에 묻은 미세먼지를 닦아내요. 도로에서 날아오는 먼지로 온몸이 시커메져요.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을 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아니니 거의 웅크리고서 앉거나 누워 있어요.” 철탑 밑에서 함께 천막농성하는 또다른 삼성 해고자 이재용씨(60)가 매일 물과 소금, 효소를 도르래로 올려보낸다. 이씨도 삼성중공업에서 노조를 세우려다 고초를 겪고 1990년 해고됐다.

▲지난 6월 단식·고공농성에 들어가기 전(왼쪽)과 후 김용희씨 모습. 사진=김용희 제공
▲지난 6월 단식·고공농성에 들어가기 전(왼쪽)과 후 김용희씨 모습. 사진=김용희 제공
▲18일 CCTV철탑 고공농성 현장에서 내려다본 강남역사거리. 왼쪽에 삼성생명 건물이 있다. 사진=김용희 제공
▲18일 CCTV철탑 고공농성 현장에서 내려다본 강남역사거리. 왼쪽은 삼성생명 건물이다. 사진=김용희 제공

농성을 시작한 후 삼성은 “미동도 없다.” “지난 정권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일도 손대려 않는데, 20년 전 임원들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겠죠.”

‘무노조경영’에 폭행과 감금, 가족괴롭힘 등 수많은 불법행위가 동원됐지만, 처벌 받은 사람은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5일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에게 김씨의 농성 관련 교섭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김씨와 해고자 이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6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8일 삼성 내 노조설립시도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며 진정을 냈다.

삼성은 ‘김씨가 있던 계열사가 사라졌으니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 중심에서 업무조정을 맡는 삼성전자 홍보팀은 미디어오늘에 “미래전략실이 해체돼 그룹 차원의 일을 책임질 본부가 없다. 그가 원직 복직할 삼성항공(현재 한화테크윈)과 삼성시계도 없어지지 않았나. 삼성전자에서 (김씨 농성에 대해)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씨는 특정 계열사가 아닌 삼성그룹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삼성 내 다른 계열사 명예복직 ▲사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설립 포기를 강요할 때마다 삼성 측은 ‘비서실이 뒤집어졌다’고 했어요. 협상과 합의를 할 땐 ‘그룹 비서실’에서 직접 내려왔어요. 무차별적으로 자행한 탄압에 대해 삼성이 사과해야 합니다.” 오늘(18일)은 단식 47일‧고공농성 39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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