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구성원들 사이에선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위기의 체감을 높인 건 ‘KBS 비상경영계획 2019’라는 22쪽짜리 내부문건에 반영된 내용 때문이다. 해당 문건은 전략기획국장을 위원장으로 일반직원 10명으로 구성한 ‘토털리뷰 테스크포스팀’이 만들었다. 일반 직원이 테스크포스팀 구성을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KBS 구성원 사이에서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위기 의식이 높고 어떻게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문건은 KBS광고수입 현황 및 전망치를 시작으로 예산절감 계획으로 빼곡히 차 있다. 인건비만 5000억원이 넘는 KBS에서 수천만원에 불과한 예산 절감 효과 계획까지 사그리 모았다.

문건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KBS광고수입은 2015년 5,025억원이었던 것이 2016년 4207억, 2017년 3666억, 2018년 3328억원까지 급감했다. 2019년 5월까지 광고수입은 1013억원에 그쳤다. KBS는 2019년 광고수입 전망치를 2631억원으로 추산했다. 4년 만에 거의 반토막이란 소리다.

향후 5년 추정 손익계산서는 더 절망적이다. 사업 손익으로 보면 2019년 1019억원 적자를 추정했고, 2020년 1346억, 2021년 1303억, 2022년 1578억, 2023년 1323억원 적자를 예상했다. 향후 5년간 누적 사업 손익 적자를 6568억원으로 봤다. KBS는 “올해 사업손실이 1000억원이 넘고, 내년 후반부턴 은행 차입금 의존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KBS는 △비핵심, 비효율사업 조정 △프로그램 효율성 강화 △인사‧복지제도 개선 △신 재원창출 및 제도개선 등 4가지 큰 틀에서 비상경영계획을 세웠다.

비핵심, 비효율사업 조정 중 하나로 KBS는 법인카드 전표 처리 프로세스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법인카드 거래 증명을 종이전표로 해왔는데 이를 폐지하고 전자전표 결재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덩달아 행정보조 한시연봉직(102명)을 일부 축소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KBS는 비효율사업으로 KBS24뉴스를 꼽고 2020년부터 페지하겠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교향악단 지원금 규모 조정(기존 매년 108억원), 해외동포상 폐지, 경인취재센터 존속 등도 협의키로 했다.

프로그램 효율성 강화 방안은 핵심 콘텐츠만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편성전략부의 자체 결정이 남았지만 KBS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폐지 및 통폐합이 논의되면서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KBS는 내년까지 프로그램 수를 현행 대비 90% 수준으로 축소한다. ‘시사기획창’과 ‘추적60분’을 통합하는 안, ‘아침뉴스타임’을 폐지하는 안도 올라왔다. 데일리 시사 콘텐츠였던 ‘오늘밤 김제동’을 폐지하는 안도 직접 명시하지 않았지만 담겼다.

KBS는 평일 밤 11시간대 방송을 30~59세를 타깃으로 한 ‘재방 ZONE’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해당 시간대 뉴스‧시사 콘텐츠 영향력이 한계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오늘밤 김제동’은 평일 밤 11시간대 대표적인 뉴스‧시사 콘텐츠 프로그램이었다. 금요일 오후 5시 뮤직뱅크 방송 시간대를 “국내, 해외(동남아) 시청자의 시청선택권 강화”를 위해 금요일 저녁 시간대로 이동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KBS관계자는 “웬만한 프로그램은 폐지 및 통폐합, 그리고 조정이 불가피하고 재방송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으로 본다”고 전했다.

▲ KBS 본관 전경.
▲ KBS 본관 전경.

인사‧복지제도 개선의 대표 방안으로는 ‘신입사원 채용규모 적정화’를 들었다. 사실상 하반기 신입 공채를 않겠다는 얘기다. KBS는 올 하반기 추가 인원채용을 중단하면 연 107억원 예산절감을 예상했다. KBS는 채용제도 개선으로 “경력/특별채용 확대, 채용시기 정례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를 확대하면 연 94억원(80% 촉진시)에 이르는 예산절감 효과가 있다는 내용도 눈에 띤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을 시행하더라도 연간 약 600억원의 수지개선 효과에서 그쳐, 올해부터 해마다 1000억원 이상 적자(사업손익)를 예상하는 가운데 턱없이 부족하다.

노조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일자리까지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 공감하지만 어떻게 돌파할지 경영진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7일 긴급 집행위원회를 소집해 ‘KBS 비상경영계획 2019’ 문건을 놓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KBS본부는 18일 성명을 내 “사측의 ‘KBS 비상경영계획 2019’가 공개됐다.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비상경영계획의 세부 항목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는 비상경영계획서 안에 담긴 공사의 미래가 더욱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KBS본부는 향후 5년 간 사업손익 적자가 6569억원에 이른다는 문건 내용을 전한 뒤 “만약 KBS가 사기업이라면 2023년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청산을 논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라면서 “수입은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제작비 증가 등으로 인한 지출은 계속 느는 구조다. 문제는 이 상황이 이번 비상경영계획 보고서를 통해 갑자가 안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예견됐다”고 진단했다.

KBS본부는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경영진의 능력부족이다. 위기의 원인을 찾아내라고, 원인을 해소해 위기를 돌파하라고 경영진이 된 것 아닌가”라며 “위기를 돌파할 의지도 능력도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커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경영진이 임기를 채우려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있어야 한다는 점이 진정한 KBS의 위기라는 점을 인정하라”고 비판했다.

KBS본부는 “생존의 걸림돌이 진부한 프로그램이라면 프로그램을 혁파해야하고, 생존의 걸림돌이 사내에 만연한 보신주의라면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걸림돌이 방만한 조직이라면 잘라내야 한다는 점 부정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강조했듯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돌파해 나가겠다는 경영진의 과감한 비전 제시고 이를 실행에 옮길 추진력과 솔선수범”이라고 강조했다.

KBS 관계자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마련한 계획이지만 부족하다. 단기처방 밖에 되지 못한다. 살을 깎는 변혁과 개혁, 구조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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