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7일 한·일 경제 충돌을 다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일본어판 기사들에 “이것이 진정 우리 국민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공개 비판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두 언론사를 언급하며 “조선일보는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40%,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라는 기사를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로,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를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일 한국 청와대’로, 원제목을 다른 제목으로 바꿔 일본어판으로 기사를 제공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야후재팬 국제뉴스 면에 중앙일보 칼럼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 조선일보 ‘수출규제, 외교의 장에 나와라’, ‘문통(문 대통령) 발언 다음날 외교 사라진 한국’ 등 기사가 2·3위에 랭킹돼 있다. 많은 일본인이 한국 기사를 번역한 이런 기사로 한국 여론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앞서 페이스북에 두 언론사 일본어판 기사를 비판한 MBC 시사 프로그램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방송 화면을 캡처 공유하며 “일본 내 혐한 감정 고조를 부추기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는 15일 방송에서 한·일 경제 충돌 국면에서 정부 책임론을 강조하는 조선·중앙일보 보도가 일본어판에서 더 자극적으로 제목이 바뀌고 이를 통해 반한 감정이 고조되는 정황을 보도했다.

▲ 경향신문 18일자 6면.
▲ 경향신문 18일자 6면.

이례적 실명 비판에 언론도 주목

이 소식은 18일자 조간도 주목했다. 국민일보는 “청와대가 특정 언론사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보도 내용을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놓고 양국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해당 언론 기사들이 국익에 반하고 있다는 청와대의 불만 표시이자 경고인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한·일 문제에 대한 현 정부 대응 방식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보수 성향 언론을 ‘친일 프레임’과 연결시켜 입지를 약화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도 “이 기사들이 객관적 시각을 담지 않았음은 물론 일본 경제보복 국면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도 고 대변인 워딩 중심으로 두 언론사에 대한 청와대 비판을 전했다.

서울신문은 11면에서 “노무현처럼 언론과 전면전 조국 정치적 승부수 던졌나”라는 제목으로 분석 기사를 내놨다. 서울신문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오보 대응을 한 것을 제외하고 현직 청와대 참모와 정부 각료를 통틀어 언론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 비판한 것은 조 수석이 처음이며, 노무현 정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사례를 찾기 힘들 만큼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조 수석으로서는 특정 언론과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굳힌 것으로 분석된다”며 “순전히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면, 일본에 대한 강경 자세는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 대선주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조 수석이 일본 이슈로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 서울신문 18일자 11면.
▲ 서울신문 18일자 11면.

침묵하는 조선, 사설로 반박 중앙

중앙일보는 사설로 청와대를 반박했다. 이 신문은 고 대변인이 언급한 자사 칼럼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에 대해 “반일 감정이 앞서 역사적 사실도 왜곡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지식인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두 달 전에 나온 이 글은 일본이 아무리 미워도 사실을 사실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일본어판 제목은 ‘무조건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한국’이라고 돼 있다. 원래의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고 대변인은 이런 글 때문에 일본인들이 한국 국민의 일본에 대한 여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일본어 번역판 사이트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사이트에는 한국 정부 비판 내용뿐 아니라 ‘일본의 치졸한 경제 보복 현실화되나’ ‘명분·실익 모두 없는 일본의 무역 보복 당장 거둬야’ 등의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도 번역돼 게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가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언론관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해국(害國)’ 행위다. 그리고 무엇이 국익을 위하는 것인지를 정치권력인 청와대가 판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며 “독선(獨善)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잘못된 정책으로 가는 정부를 보고도 언론이 입 다물고 눈치만 보는 게 과연 국익을 위하는 것인가. 중앙일보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밝혔다.

반면 조선일보는 지면에서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조선일보 등이 일본어판에서 일본 극우가 선호할 만한 표현으로 기사 제목을 고쳐왔다고 한다.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그랬다면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분명하게 해명하고 잘못한 점은 사과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18일자 사설.
▲ 중앙일보 18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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