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인들에게 충격이었다. 이 지진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후 초대형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는 일본인들의 뇌리에 지진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기억하는 전 세계는 일본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지켜봤다. 특히 일본 국민들은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최악의 원전 사고를 정부가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봤는데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사고를 덮기에 급급해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 피해자들을 외면했고 원전 방사능 유출 정보 공개도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무엇보다도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전력과 정부는 책임을 미루면서 수습에 큰 지장을 줬다.

▲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진 지 20여 일이 지난 2011년 3월30일, 드론으로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이다.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일어난 3호기(왼쪽)의 잔해가 보인다. 오른쪽 4호기 건물도 수소폭발로 인해 크게 파괴됐다. ⓒ 연합뉴스
▲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진 지 20여 일이 지난 2011년 3월30일, 드론으로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이다.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일어난 3호기(왼쪽)의 잔해가 보인다. 오른쪽 4호기 건물도 수소폭발로 인해 크게 파괴됐다. ⓒ 연합뉴스

 

특히 일본 지식인들은 정부의 무능함과 책임 회피 모습에 크게 실망했는데 사상가 시라이 사토시는 이 모습을 보고 일본의 전후시대 마감을 예상했다. 

60년만에 첫 정권교체로 집권한 일본 민주당이 이런 대처를 보여줄 줄이야. 후쿠시마 참사에서 보듯 일본 민주당은 집권 후 3년 동안 우왕좌왕하다 3명의 총리를 교체한 뒤 도로 자민당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렇게 들어선 게 아베 내각이다. 이 부분을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2011년부터 2012년에 걸쳐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거세게 일었지요. 그런데 어느샌가 ‘역시 바뀌지는 않는다’는 분위기로 흘렀고, 그로부터 눈을 감은 채 여기까지 쭉 왔습니다”라며, 저자들은 외면과 부인의 일본 역사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견하면서 “결국 부인(否認)의 제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쿠라 진다’는 전후 70년간 일본의 민낯을 보여주는데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의 대담을 엮었다. 이들은 일본이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졌지만 패배 원인을 바로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책임 추궁을 피하고 유야무야 얼버무리고 넘어가면서 ‘기묘한 패전국’이 됐다고 해석한다. 이 ‘기묘한 패전국’은 냉전 구조 속에서 미국에 빌붙어 과거의 적을 동료로 삼았다. 이런 선택을 한 일본은 패전의 경험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미국의 종속국이면서도 주권국가처럼 행동하는 자기기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사쿠라 진다 / 우치다 다쓰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펴냄
▲ 사쿠라 진다 / 우치다 다쓰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펴냄

 

친미 노선과 미일 동맹만 강조하는 일본은 과거 자신들 침략 전쟁으로 피해입은 한국과 중국이 자신들에게 일방적인 공격만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베 정권의 동아시아 때리기는 국내 긴장감을 고조시켜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전술일 뿐이다. 현재 벌어지는 한국에 대한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도 아베 정권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이런 전술은 동아시아와 전세계에서 일본의 고립을 자초하는 꼴이다. 

이 책은 일본 극우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국가 일본이 스스로 파멸을 향해 폭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셰익스피어가 쓴 ‘리어왕’에 나오는 “지금은 말세다, 미치광이가 장님의 손을 끈다”는 대사가 일본 지식인들이 아베 정권을 보는 적확한 시선이다. 

“대미 종속으로 대미 자립을 이룬다”는 이 교묘한 국가 전략이 유지되는 한 일본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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