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시절 언론사의 조직 문화는 위계적이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언론사에선 누구에게든 ‘님’자를 빼고 부르는 문화가 있고, 그건 알 권리를 가진 독자를 대변해 누구 앞에서든 주눅 들지 말라는 취지라고 들었다. 선후배 사이 격의 없는 토론으로 논조를 정하고, 기사를 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기대가 깨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직장에서 만난 ‘멘토’(회사가 신입기자 교육 담당자를 이렇게 불렀다. 신입기자들이 붙이거나 쓰던 호칭은 아니다)는 출근 첫 주에 “너희 월급에 욕먹는 값이 들어있다”고 선수를 쳤다. 신입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직장이 이 사회에 드물 테니 그땐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필자가 1~3년차 기자로서 겪었던 황당한 경험들이 적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주민센터가 있는데도 굳이 내게 위임장을 써줘서 자신의 신분증을 재발급 받는 ‘사적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이 있었고, 취재원과의 음담패설에 크게 고무된 한 사람은 남자들끼리 모인 2차 술자리에서 돌아가며 야한 이야기를 하자며 동석한 후배기자들을 당혹케 했다. 다른 언론사에 이직한 첫 주, 부서에서 야근을 하며 전화를 받았더니 한 선배 기자가 “나 OOO야”라고 했다. 누군지 모르던 내가 “누구라구요?”라고 하자 그 선배는 불호령을 내렸다. “넌 인마 누군데, 후배가 선배도 몰라봐!”

비슷한 경험은 업무에서도 이어졌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기사를 제출하면 부족한 점을 지적받는 게 아니라 “이럴 거면 잠을 자지 말고 일을 했어야지”라며 화를 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보수·진보·경제 매체와 방송과 신문 쪽을 모두 거치며 직접 겪고, 또 여러 동료들에게서 들었던 경험을 종합하면 업무 지시와 업무 분장을 감정적이지 않게 하는 능력이 부족한 ‘소통불능자’들이 많은 경우 리더를 맡고 있었다. 그런 소통불능자도 한국 사회 문화를 체득해 늘 후배에게만 감정적 표출을 한다.

▲ 7월16일 직장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다. 사진= gettyimagesBank
▲ 7월16일 직장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다. 사진= gettyimagesBank

한국 언론에 만연한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히 소통불능자 개인의 인격 문제일까. 그렇다고 보긴 힘들다. 한국 언론사들엔 독특한 ‘입단식’이 공식적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일부 남아있다. 그 입단식은 가혹한 수습교육이다. 수습기자들에게 밤 12시와 새벽 4~5시에 보고하게 하는 방식으로 잠을 재우지 않고, 불필요한 수준으로 취재 결과물을 지적하며 괴롭히는 짓을 국내 언론사들은 별 문제의식 없이 수십 년간 지속했다.

수습기자들을 교육하는 일선 경찰서 출입 기자들은 때론 전화로 누가 더 잘 갈구는지 경연하는 듯 보였다. 지금까지 나열한 모습들은 결코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물론 이런 괴롭힘도 나름 명분이 있었다. 수습이 기자로서 필요한 능력을 빠르게 습득하는 효과적 교육 방식이란 명분인데 하루 20시간 이상 강압적으로 일을 하면 그 어느 일인들 빠르게 익히지 않을까.

문제는 기자의 일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세상에 필요한 기사를 쓰려면 무엇을 취재하고, 어떤 메시지를 알려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에 기존 언론사의 수습교육이 별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직장 내 위계와 괴롭힘 문제에 관심을 가지니, 취재를 맡은 영역에서도 늘 ‘그 직장은 어떤지’ 물었다. 직장마다 각양각색이었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그건 ‘나에게 직접적으로 리더십을 행사하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문제 발생의 핵심 요인이라는 점이다. 이 공통점을 뒤집어 보면 리더가 ‘괴롭힘’에 가까운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걸 제어할 만한 문화나 시스템이 직장 내에 부재한다는 의미다. 이렇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괴롭힘을 시행하기도 한다.

대기업 A사에선 2011년 출산휴가 후 복직한 여성 직원을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퇴사를 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두산모트롤에선 2016년에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하루 종일 벽을 보게 하는 가혹 행위를 하기도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별 문제가 아니고, 어떨 때엔 리더의 권한처럼 여겨지니 기업 차원에서도 이런 부끄러운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한다.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이런 문화를 바꿔보자는 시도로 만들어진 법이 지난 16일 시행된 직장괴롭힘 방지법이다. 시행 첫날 많은 언론들은 ‘무엇이 괴롭힘인지 기준이 애매하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괴로움’은 사람의 느낌에 속하니 각 상황마다 일관된 기준이 있기가 어렵다. 어쩌면 비정상적 접대 문화의 산물인 ‘김영란법’처럼, 이 법도 비정상적 괴롭힘 문화가 아예 없었다면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도 방향도 ‘괴롭힘의 기준’을 찾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괴롭힘 유형이 있는지, 얼마나 만연한지, 개인 삶과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괴롭힘을 막기 위한 직장 내 시스템과 문화를 어떻게 조성할 수 있는지 등을 취재하고, 때로는 대중의 관심과 소비자의 힘으로 괴롭힘을 방조하고 자행하는 기업들을 응징할 수 있도록 언론이 역할을 해야 한다.

괴롭힘은 어떤 경우에도 지탄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응분의 대가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누구의 월급에도 욕 값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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