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는 지난 11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현정씨의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 사건은 2014년 KBS 파견직이었던 부씨가 정규직 촬영기자 최아무개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최씨가 기소되지 않고, 법원에서 재정신청도 기각된 후 벌어진 일이다. 

2016년 최씨는 부씨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2심까지 유죄가 나왔는데 대법원이 이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관련 기사: 성추행 무고죄 몰린 KBS 파견직에 대법 ‘파기환송’)

이와 관련 14일 “서로 호감 있는 사이라도 기습 키스는 강제 추행”이라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포털 사이트에 ‘서로 호감’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보면, ‘서로 호감’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보도한 곳은 조선일보, 한국경제TV, 국민일보, 서울신문, OBS, 매일경제, 중소기업신문, 뉴스웨이, 연합뉴스, 헤럴드경제, SBS 등 기사 30여건이 검색된다. 

▲'서로 호감'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할 시 나오는 대법원 판결 기사들.
▲'서로 호감'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할 시 나오는 대법원 판결 기사들.

그러나 이런 보도가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씨 변호인 이은의 변호사는 14일 페이스북에 “부현정씨는 이 사건 무고 고소인(최씨)과 남녀 간의 호감을 느낄 만한 관계에 있지 않았다”며 “일부 언론에서 ‘서로 호감이 있어 상호 신체 접촉이 있었어도 입맞춤 고소가 무고 아니다’란 식의 사실을 왜곡하는 제목과 표현으로 부씨를 다른 오해로 내모는 기사를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 볼 수 있을 만한 상황인 ‘잡아주거나 이끌려 다니는 장면’을 두고 호감이 있어 보인다거나 신체접촉이 있었다는 식의 항소심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건 자제하길 바란다”며 “CCTV 영상은 남녀 간 호감을 운운할 만한 내용이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직장 정규직 상사가 술을 먹고 손을 잡아끄는 걸 (피해자가) 뿌리치지 못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이걸 호감이 있었던 것처럼 본 원심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했다”며 “대법원 판결은 그러한 원심을 파기환송하는 것이다. 전향적인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보도가 많이 나왔지만 판결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기사를 살펴보면 내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제목에 문제가 있는 기사들이 많았다”며 “편집 데스크가 자극적으로 편집해 독자들이 잘못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문에 “서로 호감”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다만 “피고인(부씨)가 최씨에 대해 호의적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는 원심 판결을 언급한 부분이나 최씨가 부씨와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내용 등이 있다. 대법원은 이런 원심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파기환송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대법원이 기각한 원심 내용을 헤드라인으로 잡고 “서로 호감이어도 기습키스는 추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법원 판결 취지를 곡해한 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추행 고소 사건이 증거불충분 등의 무혐의 처분이나 무죄로 결론 났어도 무고죄가 이를 근거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신체 접촉을 거부하지 않았더라도 또 다른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은 강제 추행일 수 있으며 △피해자의 전형성에 갇혀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했어야 했다’며 무고죄를 유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부씨는 15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당시 KBS에 다닌 지 1달 정도된 상황이었다. 알게 된 지 3일 된 유부남인 사내 직원과 서로 호감을 느꼈다고 오해받는 것이 불쾌했다”며 “대법원 판결에도 남녀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보도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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