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 오늘 우리가 정당히 부여받은 근로자 권리를 되찾고자 MBC를 직장 내 괴롭힘 1호 사업장으로 신고합니다.”

지난 5월 복직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자신들을 격리된 공간에 배치하고 일을 주지 않는 MBC를 상대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고용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16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 엄주원 아나운서 등 10명은 16일 오전 서울 중구 고용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를 직장 내 괴롭힘 1호 사업장으로 신고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 엄주원 아나운서 등 10명은 16일 오전 서울 중구 고용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를 직장 내 괴롭힘 1호 사업장으로 신고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엄주원 아나운서 등 10명은 이날 오전 9시 서울 중구 고용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를 규탄했다. 이들은 안광한·김장겸 전 MBC 사장 시절인 2016~2017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채용된 아나운서들이다.

최승호 현 사장이 취임하고 2018년 2월 사측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계약 갱신이 아닌 ‘특별채용’ 계획을 통보했다.

이후 계약이 만료된 아나운서 가운데 9명은 노동위에 구제 신청을 제기했고 올해 초 중노위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던 서울지방노동위 판정을 유지했다. MBC는 노동위 판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도 MBC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를 제기했고 지난 5월 서울서부지법은 본안 판결 시까지 아나운서들의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보전하는 가처분을 인용했다.

이들 아나운서는 지난 5월27일부터 MBC 상암 사옥에 출근하고 있다. 하지만 MBC는 아나운서들을 기존 아나운서 업무 공간(9층)이 아닌 별도 공간(12층)에 배치하고 업무를 주지 않고 있다. 회사 게시판과 이메일 등 전산망도 차단했다.

▲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아나운서실을 따로 만들어 자리를 배치했다. 사진=류하경 변호사
▲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9층 아나운서국이 아닌 12층 아나운서실을 따로 만들어 자리를 배치했다. 사진=류하경 변호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괴롭힘 유형에는 △일을 거의 주지 않음 △인터넷 사내 네트워크 접속 차단 △집단 따돌림 등이 포함돼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회사가 불이익을 주면 대표이사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

아나운서 측 소송대리인 류하경 변호사는 “MBC와 대화하고 싶다. 대화해주지 않아 고용청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소송이 길어지면 불이익을 받는 건 노동자들이다. 시간은 회사 편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3~4년이 흘러 일할 나이가 지나면 무슨 소용이냐”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은 “노동 시민사회가 무척 당황해한다. 최승호 사장 취임 후 MBC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부당 해고했다. 노동 시민사회는 현 MBC 구성원들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우리의 메시지를 잘 들어 달라. 지금 상황에서 많은 시민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잘 기억해 달라. 회사가 아나운서들을 보호하지 못해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MBC가 지금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 사회의 괴롭힘도 중단될 수 없다”고 당부했다.

▲ 엄주원 아나운서가 16일 서울 중구 고용청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엄주원 아나운서가 16일 서울 중구 고용청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아나운서들은 성명서를 통해 “사랑하는 회사를, 해직의 아픔을 아는 선배 최승호 사장을 고소하는 건 우리 아나운서들에게도 뼈아픈 일”이라면서도 “부당한 상황은 해소돼야 한다. 우리는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 더 이상 MBC에, 나아가 다른 직장 어디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들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진정서를 고용청에 제출했다. 이후 진정서 관련 문서를 최승호 사장에게도 전달할 예정이다. MBC는 “회사가 제기한 행정법원 판단이 내려지면 회사는 단체협약 취지 등을 고려해 이들에 대한 입장을 최종 정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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