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느새 10년이 더 흘렀습니다. 한일 관계는 안타깝게도 무장 악화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우려도 크리라 짐작됩니다. 우리가 만난 곳은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였지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제 소설을 일어로 옮긴 분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일본의 힘을 느꼈습니다. 스무 명 남짓이 큰 상에 둘러앉아 각자 소설을 읽고 강연들은 소감을 이야기 했지요. 가장 연로하신 분이 흘린 눈물, 기억하시나요. 일제 말기 서울에서 교사였다던 그 분은 청초한 여학생 제자들을 전장에 보낸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산다고 고백했습니다. 모두 숙연했고 저는 착잡했지요. 

요즘 저는 당신처럼 조용하고 깔끔한 일본인을 서울에서 봅니다. 중년이 아닌 젊은이들인데요. 대학 강의실에 일본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몇 학기 경험한 일본 유학생들은 두루 조용하고 단정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무시로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의 역사를 다루는 과목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인들을 어떻게 학살했는가를 함께 공부하다보면 일본 학생들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너무 다르답니다. 죽창을 들고 혁명에 나선 조선 민중을 일본 군대가 미국에서 수입한 기관총으로 대량 학살한 사실도,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고문하고 죽인 사실도 처음 듣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일제가 독립운동에 나선 조선 여성들에게 얼마나 야만적인 고문을 저질렀는가도 깜깜히 모르더군요.

남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며 조용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정작 자신들의 국가가 이웃나라를 침략해 한국인들에게 자행한 대량학살을 모르는 까닭은 간명합니다. 일본 스스로 제국주의 청산을 못했기 때문이지요. 총리 아베만 하더라도 일본제국의 ‘A급 전범’이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잖습니까. 미국의 정치적 판단으로 재판에서 살아남은 기시가 총리가 되어 추구한 정책이 ‘평화헌법’ 개정과 미일 동맹 강화, 군사력 증강이었지요. 현 총리 아베는 공공연히 외조부를 계승한다고 밝혀왔습니다. 

아베는 ‘경제 압박의 칼’을 빼어들곤 한국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거적눈 부라립니다. 딱히 아베만이 아니지요. 일본 정계에선 언제까지 한국에 사과하느냐는 분노까지 일었다고 들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6월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6월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실 이 또한 간명한 이치입니다. 사과에 진정성이 있고 없는 것은 피해자가 가장 잘 느낍니다. 아베에게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한국 경제를 망가트리겠다’고 나선 지금의 모습이 증명해줍니다. 1965년 협정과 2015년 합의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 당사자가 박정희와 그 딸이라는 사실만은 아닙니다. 한일협정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과 어긋난 밀실 합의였고, ‘위안부 합의’도 당사자 뜻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계기로 죽음을 맞았고 박근혜는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에서 쫓겨났습니다. 둘 다 주권자인 민중의 심판을 받았지요. 권력을 아래로부터 바꾼 경험이 없는 일본 정치에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협량한 아베의 칼은 비단 한국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대일본제국’이 당대의 일본인들에게 어떤 참화를 불러왔는지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한국도 일본제국의 잔재를 다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제국의 조선 강점이 없었다면 남북 분단의 고통도 없었을 터입니다. 다만, 한국인의 촛불은 멈추지 않고 벅벅이 나아갈 것입니다. 

지금은 ‘조용한 일본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제국의 쓰나미’를 성찰할 때입니다. 한국 민중이 애면글면 촛불을 들었듯이 ‘조용한 일본인’도 권력의 어둠에 촛불 밝히기를 기원합니다. 한국 민중과 일본 민중이 손잡고 진정한 평화 시대를 열 그날을 소망하며 총총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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