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에 있어 ‘국내 기업 피해’만 부각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2일 ‘일본 수출규제 진단과 향후 산업전략 모색 긴급토론회’에서 “국내 대응은 너무 우리 기업 피해에만 초점 맞추는 거 같다. 상대를 알아야 대화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일본 피해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보복대책특별위원회 소속 추미애 의원 주최로 여당 의원들과 기업·경제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최 교수는 “이번 경제보복은 단순 무역분쟁 차원이 아니다. 삼성전자로 상징되는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발목잡는 데서 나아가 한국경제 어려움을 가중시켜 한국에 친일본 정권을 만들고 싶은 것에 더해 미국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의도까지 깔려있다”고 주장했다. “일본경제를 정상화하려는 돌파구로서 한반도와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대상 국가”이자 “동북아 맹주역할이라는 아베의 꿈이 트럼프 셈법과 문재인 정부 노력에 의해 무너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일본이 지난해 113억달러 무역적자를 냈다. 올해 5월까지 137억원으로 지난 1년치를 초과했다”며 “한국으로부터 무역 흑자를 지속하지 못하면 일본은 무역수지 측면에서 만성 적자국가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걸 고려해서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일부 언론에서 한국 기업의 피해만 과장하는데 너무 자해적 보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일 양국에 대한 양비론에도 그는 “구체적 대안은 있는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 같은 극우보수 언론 지적도 문제가 있다. 우리 정부도 대응이 잘못됐다는 식인데 결론에 대해선 얘기가 없다”고 주장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연합뉴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연합뉴스

그는 이어 “6자회담국에서 유일하게 배제·소외된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은) 분단 책임국가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한국이) 이기는 게임”이라며 “반도체 관련 산업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제재의 득을 보는 건 중국이다. 중국 굴기를 가장 싫어하는 게 미국 트럼프인데 역린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미국이 공조할 수 있는 공통적 이해관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다소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최 교수는 “트럼프를 지렛대로 국제 공조를 만들고 국민이 단합하고 아베정권을 일본 국민들로부터 분리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시민사회단체 연계가 필요하고, 재계는 비즈니스 계약의 지속성 요구하면서 아베정권의 극우세력을 가능한 한 일본 국내에서도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향후 전개 시나리오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며 “일본의 보복 확대 위협을 가볍게 보는 것은 금물”이라고 했다.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자민당이 크게 패배할 가능성이 높지 않으며, 일본 국민들의 한국 혐오 분위기에서 일본 정부도 양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지평 위원은 일본 정부가 90일의 수출규제에 이어 금융, 비자 등 다방면에서 대한국 제재를 추진할 가능성을 전했다. 한국 및 일본에서 상호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한국 젊은 층의 일본기업 취업제한을 비롯해 외교 분쟁 폐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일본계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공사에 제공한 여신 규모가 2018년 9월 기준 약 69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일본계 금융기관 뿐 아니라 일본과 협조(융자)하는 외국계 금융기관이 한국에 대해 여신을 제한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이 위원은 지적했다.

▲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일본 수출규제 진단과 향후 산업전략 모색'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일본 수출규제 진단과 향후 산업전략 모색'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첨단화학소재 등 부품·소재 국산화 필요…WTO 제소 승산 있지만 신중해야

이번 수출 규제를 계기로 불거진 일본 연계 산업 ‘국산화’는 효율적인 접근 필요성이 제기됐다. 조철 한국산업연구원(KIET) 산업통상연구본부장은 “지금까지 언론에서는 왜 (소재를) 국산화 안 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데 기술적 문제 때문은 아니다. 삼성이나 LG, SK하이닉스 등 입장에서 국산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부분도 있고 정책적 차원에서도 상당부분 관심을 받지 못한 부분도 있다”며 “앞으로는 일본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신호를 받았기 때문에 국산화가 가속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계에선 중장기 대책으로서 소재·부품 ‘독립운동’ 전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통상부장은 소재·부품 전문중소기업을 지정·육성하는 한편, 대·중소기업 간 협업체계를 구축해 개발된 부품·소재에 대한 납품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재다변화를 위해 필요한 예상기간으로는 중소기업 42%가 ‘1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전망(중소기업중앙회, 7월3일~5일, 일본 수출규제 관련 중소기업 269개사 대상)했다.

WTO 제소의 경우 승산이 없지 않지만, 조급해선 안 된다는 분석이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경제통상부 교수는 “통상 WTO 분쟁해결제도를 통한 분쟁사안에 대한 판정은 최소 12~15개월(상소 없을 시) 또는 15~18개월(상소 있을 시) 소요되므로 사안의 긴급성을 감안해 WTO 제소 실효성에 대한 의문 제기가 가능하며 WTO 분쟁의 승소 또한 보장할 수 없다”면서도 “국가안보 관련 사항으로 수출규제 조치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에 대한 국제법적 판결이 제공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안보와 통상 문제가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다자무역체제에서의 안정적·예측가능한 운영을 위한 의미있는 판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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